연극

[쉬어 매드니스] 인생이 어떻게 풀릴지 누가 알겠어

구보씨 2009. 6. 28. 11:03

연극 <쉬어 매드니스>를 보면 배우들 머릿리결이 좋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배경이 미용실이다보니 배우들이 머리를 자주 감습니다. 실제로 머리를 감을 수 있도록 수도를 끌어왔지요. 극장 자체로 미용실을 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벤트로 관객 머리를 감아줘도 재밌지 않을까요? 하루 두 번 공연이면, 두 번 머리를 감는 셈이니, 너무 자주 감는다 싶기도 합니다. 코믹추리극으로 재밌게 본 작품입니다. 전 2009년예술마당 2관에서 봤는데요. 2006년 이후 올해 초까지도 공연을 올라갔습니다. 스테디셀러라고 볼 수 있지요.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미용실이 등장하는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만든 신동일 감독은 말하길, "미용사 앞에는 대통령이나 재벌, 노숙자 누구나 평등하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직업인 반면 미용사가 독기를 품으면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반대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효자동 이발사>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스위니 토드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래저래 매력적인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살인사건의 배경으로 다루기에는 더욱.

 

미용실이 원체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곳이다 보니,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러다보면 하지 말아야 할 얘기가 나오고, 또 듣는 입장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또 잘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다툼도 일어나기 마련.‘완전 또라이’의 비속어 쯤 된다는 <쉬어 매드니스(Shear(=Sheer) Madness)> 미용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했는데, 돌연 배우가 등장해서 오디오 음악을 틀고 나간다. 뭐지? 싶은데, 곧 이어 손님이 등장한다. 무대 옆 출입구는 여전히 열린 상태이고, 들어오는 관객들 역시 다소 당황스럽다. 객석에서는 무대에 걸린 시계를 통해서 시간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미용실 영업을 시작한 것인데, 공연 시간 전에 벌이는 미용실에서의 소소한 일상은 아직 중요한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관객들의 참여도가 연극의 내용과 완성도를 좌우하는 만큼 높은 작은 몸짓 하나도 놓치지 말라는 집중도를 의도적으로 요구하는 셈이다. 관객은 앞으로 일어날 살인 사건의 용의자들을 형사들과 함께 직접 심문하고, 참여를 해야만 한다. 

 


 

고정된 무대인 미용실을 정말 그럴싸하게 꾸민데다(실제로 머리를 감을 수 있고, 또 미용기구로 직접 세팅을 한다), 배우들은 물 흐르듯이 연기가 하고, 암전이나 조명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동일 시간대의 이야기라서 더욱 몰입도가 높다.

정확하게 시계가 4시를 가리키고 공연이 시작되면 자연스러운 미용실의 일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배우들은 제각각 미심쩍은 행동을 한다. 이는 관객들에게 차츰차츰 의구심을 품게 한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형사역을 맡은 배우가 본격적으로 용의자들을 심문하면서 관객들에게 ‘수사 협조’를 구한다.

 

그때부터 관객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격인 배우들의 동작 하나, 소품 한 가지, 말 한 마디, 눈짓을 돌이키게 되고, 이후로도 마치 탐정이 된 듯 샅샅이 살피게 된다. 인터미션에는 아예 무대를 벗어나 밖에서 다양한 단서를 달라고 요구를 하고, 또 그동안 배우들은 나름 연기를 펼친다. 이때에도 자리에 남은 관객들은 계속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게 된다. 그렇게 4명의 용의자를 두고 관객들은 실시간으로 심리 게임을 펼친다.

 


 

관객들의 다소 엉뚱한 대답이나 낮은 참여도에 무엇보다 배우들은 잘 훈련이 되어 있어서 색다른 재미를 있다. 마치 자유도 높은 1인칭 PC게임을 즐기는 기분이다. 정작 누구라도 범인이 될 수 있다. 좀 허무한 감이 없지 않지만 마지막에 관객들의 투표, 즉 가장 범인에 가깝다고 생각한 인물이 살인범으로 밝혀진다.

 

4명의 용의자 중에서 범인 1면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수상쩍은 행동이 단순히 관객의 시선을 분산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관객들에게 흘리는 정보들은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상’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렇듯이 뭔가 변화의 조짐은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 그 숨겨진 의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단지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해서 그럴 뿐이지….

 

‘1980년 보스턴에서 초연 이후,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공연되는 연극 (미국 기네스북 기준)일뿐더러 전 세계 22개 도시의 공연장에서 매일 공연되어 미국 연극의 교과서로 신뢰받고 있다’는 <쉬어 매드니스> 미용실의 재미있는 롱런을 기대하는 바이다. 평일 낮 공연을 펼칠만큼 자신감이 충만한 공연이다.*

 



사진 출처 / 쉬어 매드니스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