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수업] 블랙팀의 열연 그러나

구보씨 2009. 7. 17. 13:09

2009년에 이 작품을 보고 2010년 봄에 '혜화동1번지 동인페스티벌 - 수업'을 봤습니다.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이 소극장이긴 하나, 시설이며 무대가 좋은 편이지요. 그에 반해 혜화동1번지는 아는 분들은 아시지만, 정말 작은 소극장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제약도 많구요. 그런데, 연희단거리패가 만들었으니.. 굳이 비교를 하자면 좀 달랐습니다. 


휴먼컴퍼니(이후 극단 노을에서 2011년에 재공연을 올렸습니다)가 만든 <수업>은 당시 대학로, 홍대, 국립극장까지 팀을 나눠서 공연을 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는데요. 간결하지만 잘 만든 무대가 생각나긴 하나, 작가나 페스티벌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인지 살짝 기대보다는 못했지 싶었습니다. 연희단거리패의 <수업>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극장장인 이승헌 배우의 올누드를 감행할 정도로 광기어린 공연이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긴 이유도 있구요. 또 조역이지만 제가 주목하는 배우 최현미 씨가 나오기도 했고.. 아무튼 극단 노을의 <수업>은 2011년 공연을 보지 못했으나, 분명 발전된 모습이었으리라 봅니다. [2012.07.06]

 

제목 : 2009국립극장 페스티벌 참가작 - 수업

기간 : 2009/07/17 ~ 2009/08/30

장소 :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출연 : 김정호, 강선희, 이윤정, 이동현, 문병주, 윤미경, 김민희

작가 : 외젠 이오네스코

연출 : 이신영

주최/주관 : 국립극장

기획 : 휴먼컴퍼니


 

<수업>이 <대머리 여가수>, <코뿔소>로 유명한 외젠 이오네스코의 원작을 기반으로 두었다고 하니 놓칠 수 없는 공연이다. 2009 이오네스코 100주년 페스티벌(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76스튜디오) 전회 매진, 2009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국내우수작 초청, 2009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이라는 데야 더 할 말이 없다.

 

극장으로 들어서면 상징으로 처리해 비어 있으나 '종합 박사'라는 천재 교수의 서재답게 수많은 책이 꽂혀 있을 법한 책장, 숨은 광기를 드러내는 듯한 거친 문양의 벽면, 그리고 책상 하나와 의자 두개로 구성한 심플한 소품이 눈에 띤다. 마치 단두대를 연상시키는 단상으로 변하는 책상과 무대 언저리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높고 낮은 의자는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의 밀접성과 파탄의 심리적 거리를 드러내는 뼈대로 사용된다.

 

이성을 대변하는 ‘수학’과 ‘실체’를 근거인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 있어서, 언어와 관련하여 한국어의 근원을 밟아가는, 그 부질없음을 역설하는 과정으로의 원작과의 다른 변화 등은 이오네스코의 프랑스 연극을 한국식으로 바꾸는 일에 꽤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무대가 간소하고 배우들, 특히 교수와 학생의 비중이 1인극만큼이나 높은 만큼, 배우들은 열연을 펼친다. 교수 역의 김정호는 속에 차가운 광기를 숨긴 어수룩한 천재 교수의 양면 연기를 아주 빼어나게 표현한다.



 

이오네스코라는 거대한 산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작품 이전에 커다란 고민일 수밖에 없다. 연출 이신영이 밝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관객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최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의 생각을 뒤흔들어놓기 위해 해석 및 표현 방법에 있어 최선을 다한다”라는 의지가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개인적으로는 좀 의문이다.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간소화했는데, 과감한 생략과 변형이 나름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역시 밋밋하다는 인상을 준다.

 

배우들로만 구성한 블랙팀과는 달리 대학로 <가자> 2관에서 동시 공연중인 블루팀 <수업>에서는 떼아트르 현대 무용단원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연기상 수상 경력이 빛나는 블랙팀이 나름 열연을 보여주었다지만 역시나 1시간 15분 남짓한 짧은 공연 시간도 그렇고, 좀 아쉽다. 무대를 간소화한 이유 중의 한 가지는 분명 무용단의 동선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조리는 때로는 말보다는 몸짓으로 더 잘 드러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이번 극단 노을의 공연이 올해 초, 연희단 패거리의 공연과 차별되는 가장 큰 지점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고괴담 식의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포스터와 부조리극인 연극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극에서 의미하는 수많은 여학생들의 죽음은 사고思考의 부재 혹은 죽음이지 실제로 죽고사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사진출처 - 휴먼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