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손을 들면 반드시 [타임택시]가 선다

구보씨 2009. 4. 30. 14:22

 

 

기간 : 2009년 4월 30일 ~ 2009년 5월 17일(추후 대학로 연장 공연 예정)

장소 : 대학로 스타시티 2관  

시간 : 평일 8시 / 토 4시, 7시 30분 / 일 4시

극단 : 극발전소301

 

극발전소301(이하 301)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즐거운 여행 되세요>를 보러간 날, 낯익은 얼굴들이 어깨에 뭔가를 하나씩 들쳐 메고 극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윤광희, 김영진, 박복안, 백선우 등등이었는데, 이들은 301의 배우들이다. 잠시 후 그들이 나오면서 하는 말이 “우리 소품이 너무 적은 거 아냐?”하더란 말이다. 301과 관련이 없지 않은 <즐거운 여행 되세요>에 이어 같은 소극장에서 <타임택시> 공연이 이어지는 바를 모르지 않았던 터라 사뭇 궁금증이 일었다. 버스를 어떻게 택시로 개조했을까? <타임택시>이전에 <타임버스>였다는 걸 알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데….

 

기다리면 반드시 <버스가 온다>

작년 12월, 대학로 극장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대학로에서 좀 떨어진 한갓진 곳에 위치한 작은 소극장에 막 움을 틔운 신생 극단의 공연 포스터가 걸렸다. 그렇다. 그때 301의 창단 공연인 <타임버스>(작, 연출 정범철), <정류장>(작, 연출 최재성), <Here Comes The Sun>(작, 연출 황선영) 세 작품을 묶은 옴니버스 연극 <버스가 온다>의 첫날 첫 공연에서 시작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셈이다. 첫 공연의 갖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으나 15명의 배우들이 등장해 버글버글 재미있게, 혹은 진지하게 버스를 몰았던 그들의 열연에 박수를 보낸 기억이 난다.

 

‘기름값도 오르고 길은 막히고 택시와 경쟁 노선은 점점 느는데다 올 경기 한파는 지독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 아니 이런 사태(?)에서 301이 과감하게 버스 시동을 걸었다. 왜? 그들이 보는 건 현실이 아니다. 미래이다.’ 그때 쓴 글을 보면 공연 제목에 빗대, 301의 건투를 빌었고, 그들이 모는 301번 버스는 쌩쌩 달리면서 관객들에게 진지한 고민과 즐거움을 나눠주고 있다.  <버스가 온다> 이후로 올 상반기 동안 그들이 기획했거나, 혹은 참여했던 연극 <개>, <즐거운 여행 되세요>를 보고, <타임택시>까지 보게 된 셈이니 대략 그들의 이후 행보에 빠짐없이 참여한 ‘승객’이 되었다.

 

버스기사에서 택시기사로

취향 문제인데, <버스가 온다>의 세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Here Comes The Sun>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 지난하고 또 구질구질한 삶에 대한 얘기가 연극에서도 많이 다뤄왔던 주제이나 어디를 가든 종점으로 회차를 하는 버스의 속성과 사회 기준으로 가족의 범위를 일탈한 가족 아닌 ‘가족’의 방황과 상처와 회복을 다룬 주제가 잘 맞물린 작품이었다. 반면, <타임버스>는 정해진 구역을 도는 버스라기보다는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택시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작품 정도였다. <타임택시>는 아무래도 묵직한 버스를 털고 가볍게 갈아탔다지만 대략적인 내용을 아는 마당이고, 주연급 배우들은 거의 버스였을 때와 동일하기도 했으니.

 

‘시간을 달리는 버스 <타임버스>를 타고 현재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향하는 윤택경. 그러나 일이 생각만큼 만만치는 않다. 과거를 꼭 바꿔야 할 사람과 또 다른 생각을 하는 한 사람 그리고 그 곁에 여러 인물들과의 좌충우돌 SF코미디’라는 <타임버스>의 얼개는 <타임택시>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좌충우돌의 강도가 버스비와 택시비 차이만큼이나, 것도 모범택시 정도 벌어졌달까. 같은 대중교통이라도 버스와 모범택시 사이의 천양지차만큼이나 특별한 타임택시로 탈바꿈하면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았다는 게 옳다. 기사의 입담이 손님과 친밀감과 유대를 끌어내듯이 버스가 갖지 못한 택시만의 장점이 물이 올랐다. SF시추에이션 미래극이라는 설정은 배우들이 나르면서 푸념을 했던 소박한 소품이 아닌 고삐가 풀린 아이디어의 범람에서 그 장점이 최고조에 달했다.

 

SF영화에서 늘 봤음직한 각종 클리쉐가 총동원되는 내내, 벌거숭이 임금님의 재단사처럼 “이게 안 보여?”라고 엉뚱한 소품을 대놓고 들이대면서 공연 지하 소극장에서 버무려지자, 다들 터지는 웃음을 멈출 사이가 없다. 타임택시가 시간을 가지고 2억 년 전 쥐라기 시대부터 황진이, 이순신, 안중근을 거쳐 2039년까지 종횡무진 왔다리갔다리 주물럭거리듯이 1시간 30분 남짓한 공연 시간 내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과거에 따른 미래는 바뀔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아이디어가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가다 보니 좀비처럼 생뚱맞은 구석도 있고, 공연을 보고 나서 나중에 곰곰이 따져보면 구성상 말이 좀 안 맞는 구석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름 평행우주설을 기본 뼈대로 삼았고, 무엇보다 보는 내내 능청맞은 연기를 흠뻑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황당무계하고 가벼운 코미디와는 확실히 다른 구분점을 찍는다. 더욱이 연극판에서는 드물디드물게 SF장르를 투자대비 최고의 효과로 소화하지 않았는가!

 

301의 새로운 행보가 궁금하기도 하여

역시나 신생 극단인 이들의 장점이라면 기존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젊음의 신선한 동력을 마구 퍼다 나르겠습니다’라는 극단 소개답게 젊은 기획자와 젊은 배우들이 주축을 이룬 만큼 무게를 잡는 대신 상상력과 에너지가 차고 넘친다.  이후 행보를 봐야겠지만, 어쩌다 301의 행보를 명승지 유람단처럼 따라다니다 보니 궁금한 부분이 생기긴 한다. 첫 공연인 <버스가 온다>로 묶인 세 작품을 놓고 비교할 때 <타임버스>의 연장선에 있는 <타임택시>의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301 대표 정범철의 스타일이 나머지 두 작품의 스타일이 많이 달랐고, 301의 틀로 묶을 수 있을까 싶긴 한데, 서울예전 창작 워크샵 지원 작품인 사회고발성 연극인 <개>와 단절과 격리된 인간의 내면을 새롭게 다룬 <즐거운 여행 되세요>와도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허나 1년도 되지 않았으니 규정을 짓는 자체가 의미가 없지 싶다. 다만 지방 공연에 이어 대학로 연장 공연을 준비 중인 <타임택시>의 좋은 출발이 <정류장>이나 <Here Comes The Sun>의 새로운 고민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같이 안고 가길 바란다. 하여, 창단1주년을 기념하는 올 12월 예정 공연 옴니버스 창작극 <삼겹살 먹을 만한 이야기>라는, 제목만으로는 당최 감이 오지 않는 작품이 어떤 녀석으로 태어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참이다.*

 

 

사진 출처 - 극발전소301 club.cyworld.com/playunit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