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무대치고 회전하는 무대를 선보인 작품은 이 작품 외에 본 적이 없습니다. 시도만으로도 전 박수를 보냅니다. 수동으로 움직이는 무대와 앞뒤 전환할 때 몇가지 보완할 부분이 있지만요. 무대를 세트로 만들어 좁아진 탓에 배우들 동선이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시도를 앞으로도 종종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작품은 제목도 그렇고, 입센의 <들오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후 극단 달나라의 공연을 본 적이 없군요. 두루 궁금합니다.
<오리사냥>은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러시아의 희곡작가 알렉산드르 밤삘로프(1937-1972) 작품으로, '제2의 체호프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르 밤삘로프의 작품 중 가장 비극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작가는 주인공 질로프를 통해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영혼 부재, 존재의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죽음, 비상과 추락을 이야기한다. 왜 밤삘로프의 작품이 지금껏 한국 무대에 오르지 않았을까 궁금할 정도다. 비로소 밤삘로프의 대표작 <오리사냥>이 무대에 올랐다.
익숙하지 않은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처음 선보이는 공연을 보는 기분이란, 새삼 떨렸고, 기대가 컸다. 기대에 걸맞게 창작집단 달나라는 <오리사냥>(연출 장원진)을 올리면서 소극장 공연치고는 드물게 무대장치부터 많은 힘을 쏟았다. 두개의 커다란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는 회전식 무대와 배경으로 약간 삐딱하게 자리 잡은 거대한 시계는 새삼 ‘연극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얽매여서 늘 들여다보는 시계야말로 작은 무대가 아닌가 말이다. 질로프의 지난 삶을 회고식으로 돌아보면서 아파트, 직장, 카페 ‘물망초’로 회전하면서 바뀌고 또 반복되는 무대는 이 연극이 일상의 무의미한 반복에 대한 강한 반발, 쳇바퀴처럼 회전하는 무대와 돌아가는 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질로프의 일탈을 잘 보여준다.
구소련 시대의 절망을 다룬, 다시 말해 관객들에게 단순히 적대국일 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지나간 구소련 체제의 상실을 다룬 작품이다보니 아무래도 무대로 올리기에는 꽤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낯선 희곡의 무대로 올리는 과정에서 ‘스펙터클’하다는 점은 꽤 유효한 장점이다.
다만, 소극장의 좁은 무대가 가진 한계일 수도 있는데, 무대를 좌우에서 양분하면서 회전하는 무대이고, 회전하는 특성상 뒤로 돌아가는 무대 뒤쪽을 포기하다보니 배우들의 동선에 제한을 주지 않았나 싶다. 이제 막 극을 올렸고, 프리뷰 기간이긴 하지만 양쪽 회전무대가 맞물리는 위치가 익숙치 않은 탓에,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보였다. 그러다보니 암전마다 무대 이동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소품 이동도 다소 불안했다.
무엇보다 의도하지 않게 종종 열리거나 반대로 잘 열리지 않는 문은 지적할만한 사안이다. 이런 지적은, 꽤 진지하게 고려해야할 부분인데, 일정하게 반복되면서 나를 점점 옥죄는 상황에 대한 일탈이 되려면 이처럼 의도치 않은 돌발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차라리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이 암전 시에 음악을 보다 많이 삽입하여 무대 회전 시의 삐걱대는 소리를 상쇄시키거나 관객의 분위기를 전환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초반에 질로프가 무대의 전환 상황에서도 계속 연기를 펼쳤듯이 그 상황을 죽 이어가면 어떨까 싶다. 객석 기준으로 무대 오른쪽 질로프가 깨어난 위치는 질로프를 위한 자리이고, 또 그 극 전개상 극 중반 이상을 침대 위에서 질로프가 돌이키는 과거라는 점에서, 배우에게 부담스러운 요구지만 ‘과거’ 회상이니 만큼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이고, 무대 전환이나 준비에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문에 대한 의문은, 후반부에서는 문을 통과하지 않고 그 옆으로 등퇴장하는 질로프의 행동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 역시도 문이 헐거운 상황 못지않게 주의할 부분이다. 질로프와 아내 사이의 문이 아내와의 이별에서 넘을 수 없는 막, 일리나의 착각, 그리고 질로프의 오리사냥에 대한 중요한 독백이 등장하는 만큼, 어쨌거나 암전이 아닌 명전 시에 문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확실히 여타 소극장 공연과 구별되는 무대장치는 <오리사냥>의 장점이지만 익숙지 않은 지금은 양날의 검으로 보인다.
소소한 부분이지만 팜플렛에 친절하게 소개된 윈체스터 M1873는, 총신을 질로프의 자살을 지연하기 위해 늘린 테가 약간 난다는 점과 오리사냥용으로 적합한 총인가라는 점, 시대 상황으로 볼 때 미국제라는 점도, 꽤 진짜 같은 총임에도 좀 아쉽다. (물론 총신이 긴 소련제 저격용 총 모형을 구한다는 게 정말 쉽지는 않겠지만 오리사냥에 대한 질로프의 갈망을 드러내는 중요한 소품이다 보니.)
몇 가지 소소한 부분을 제외하면 좋은 배우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 <오리사냥>은 소극장 공연임을 감안할 때 갖은 어려움과 제약과 현실을 고려하면 분명 관객의 입장에서는 즐겁고도 고마운 일이다. 더군다나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열의가 넘칠 때 관객들은 덩달아 들뜬다. 무대가 점차 손발처럼 익을수록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더욱 빛나리라라고 본다. (이날 등장하지 않은 더블 캐스팅을 맡은 갈리나 역의 오재은 씨가 직접 입장하는 관객들의 표를 끊어주고, 안내를 하는 등 왠지 팀워크가 좋은 한 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밤삘로프의 한국 관객과의 첫 만남, 그리고 장원진의 첫 연출을 다시 한 번 축하하고, 박수를 보낸다. 어찌보면 창작극보다 더 위험부담이 큰 시도가 부담스럽고, 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연극을 한다는 자체가, 그러고 보면 참 무모한 도전이고 질로프처럼 잡히지 않은 뭔가를 쫒는 일일 것이다. 앞으로의 건투를 바라고, 한 달간의 긴 사냥 여정을 무사히 끝마치길 바란다.
밤삘로프가 이 작품을 쓸 당시의 구소련의 상황이 곧이 곧대로 와닿지는 않지만 요즘 독재시대로의 회귀 운운하는 분위기와 넘쳐나는 비정규직 등 상황을 보면 그 시절과 교집합이 생기는 건 확실하다. 극에서 유일하게 냉정함을 유지하는 지마의 “오리가 살아 있는 건 그럴 만한 사람한테나 그렇지. 어떤 사람한테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 질로프처럼 나에게도 모든 걸 다 떨쳐버리고 나설 만한 무언가가 있는가? 그 오리는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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