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삼국유사 연극만발 -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
일시 : 2014/09/05 ~ 2014/09/21
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출연 : 김수현, 성노진, 김주완, 오민석, 장선우, 강현우, 정현철.
대본 : 김민정
연출 : 박혜선
제작 : (재)국립극단
삼국유사의 배경으로부터 1400년, 간극을 메우는 방식으로 ‘만파식적’은 비교적 쉬운 선택을 가능케 했다. 만파식적의 배경 설화가 어쨌건 악기인 피리 형태로 실제로 존재했거나 존재했으리라 짐작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형태나 연주 방식이 국악 안에서 이어져온 만큼 허구를 필요 이상 동원해야 하는 도구는 아닌 셈이다. 이 작품은 국악시립관현악단 피리연주가 길강이 ‘만파식적’이라 추정할 수 있는 당시 악기를 불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중구조의 이야기이다. 길강이 과거에서 벌이는 일화를 현실에서는 알 길이 없지만, 알고 보면 근간에 권력을 향한 강한 야욕이 있음을 차근차근 드러내는 방식이다.
만파식적 설화는 『삼국유사』 2권 기이(紀異) 만파식적조와 『삼국사기』 32권 잡지 제1 악조(樂條)에 실려 있다. ‘만파식적’은 신라 신문왕 2년에 용으로부터 대나무를 얻어 만들었다는 전설의 피리이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며 질병이 낫고 또 가뭄 때는 비가 내리며 장마 때에는 비가 그치는 등 바람을 재우고 파도를 가라앉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왕은 이 피리를 천존고에 모시고 그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여 국가의 보물로서 소중히 여겼다. 『삼국유사』에는 효소대왕 때 화랑 부례랑의 실종으로 ‘만파식적’을 도난당했고 이후 부례랑의 귀환으로 다시 찾게 되었지만 다음 원성왕 때까지 보관되었다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쓰여 있다.
- 내일뉴스 리뷰2014-09-02 중에서
왜 피리일까, 삼국사기 <온달설화>에 등장하는 북처럼 뭔가 웅장하고 널리 퍼질 수 있는 악기가 아닌 가냘픈 음을 내는 몇 사람 둘러앉은 실내악에서나 어울릴 만한 악기에 엄청난 힘을 부여한 걸까. 짐작하면 피리는 궁중악기로 당시 귀족들 사이 권력을 논하는 자리 이후 여흥에 어울릴 만한 악기이다. 즉, 빈민구제이든, 질병치료이든, 징병이든, 극적 타결을 이루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악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극 중 일화처럼 마을을 통째로 불을 질러 없애고, 그 원인을 병이나 외적의 탓으로 돌린 뒤 미화하는 도구였을 수도 있다. 근거 없는 짐작은 연극이 풍자 혹은 비난하는 권력욕에 초점을 맞추니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삼국유사 혹은 사기를 쓴 목적이 백성을 위한 글이 아니므로 설화로 받아들 수만은 없기도 하다.
아무려나 ‘만파식적’을 권력의 도구로 휘두르려는 과거 혹은 현재 사이에서 소시민 길강은 하릴없이 희생이 되고 마는데, 그 과정이 단선적이고 예상 가능해 다소 아쉽기는 하다. ‘피리가 가지고 있는 조화로운 소리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설화에 맞춰 길강 역 김주완이 피리를 연주하고, 무대 한쪽 벽면으로 국악연주단을 배치하는 등 만파식적을 비롯해 음악이 가진 감성적 연계를 풀어내려는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노고에 비해 극과 잘 어울렸는지는 모르겠다. 극 자체로 음악이 주요한 역할을 할 만한 대목이 드물기도 하였다. 앙상블들의 활극도 준비를 많이했지만 어쩔 수없이 합이 불안정하고, 연극 무대라 맛이 잘 살지 않는다. 제법 많은 시간을 들여 선보이는 만큼 연극 <됴화만발>처럼 뭔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천존고’라는 동일 장소에서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권력다툼이라는 배경은 1인2역 연극이 택할 수 있는 영민한 기획이지만 많은 걸 담으려고 하다 보니, 딱 부러지게 뭔가가 담기지 않았다. 캐릭터 설정 문제라고 보는데, 좀 더 고심해서 만든 인물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 주변에 있는 권력자들은 약점을 드러내기 전까지 매우 용의주도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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