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
기간 : 2014/08/06 ~ 2014/08/30
장소 : 명동예술극장
출연 : 김성녀, 이승주, 정운선, 심완준
대본 : 테네시 윌리암스Tennessee Williams
연출 : 한태숙
연주 : 최 영(첼로)
제작 : 명동예술극장
판단하길, 한태숙 연출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도살장의 시간>(2009.10.27 ~ 2009.11.08)이고, 대표작은 <오이디푸스>(2011.01.20 ~ 2011.02.13)이다. <오이디푸스>는 명동예술극장 제작 작품은 아니나, 명동예술극장 무대를 빛낸 작품 중 손에 꼽을 만하다. 요 몇 년 사이 국립극장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주로 활동하던 한태숙 연출이 전통 연극을 들고 명동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은 올 하반기 라인업 가운데 기대를 불러 일으킬만한 일이었다. 작년에 올린 대작 연극 <단테의 신곡>은 각별히 공을 들인 데에 비해 성공작이라 부르기가 망설여지기도 하여 더욱 그렇기도 했다.
미니멀. <유리동물원>을 올리면서 잡은 콘셉트일까. <단테의 신곡>이 영상, 무대, 의상, 분장 등등 과잉이다 싶은 부분이 있다면 <유리동물원>은 무대, 세트 등 작품 외적으로나 연기, 해석 등 내적으로도 한태숙 작품 중에 편하게 볼 수 있는 축이다. 스스로 말하길 “코믹센스가 부족한 연출이나 재밌는 부분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하듯 한태숙 작품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경우는 드문 경우라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허나 비유하자면 기대보다 좀 심심한 맛이다. 한태숙 보다는 김성녀에 의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좋은 재료 혹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작품이다. 김성녀 배우의 연기력이 출중하지만, 연기폭이 넓은 지는 좀 생각이 다르다. <벽 속의 요정>에서 1인 32역을 맡은 대배우가 들으면 기가 찰 수도 있지만, 개성이 강해서 그럴 수도 있고, 대중매체를 통해 밖으로 드러난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다.
<유리동물원> 아만다는 유리동물원 말떼 가운데 유니콘에 비유할 수 있다. 극중 뿔이 부러지면서 상상 속 동물이 흔한 말 한 마리로 탈바꿈하듯, 인기녀였던 젊은 시절 과거에 빠진 아만다의 실체란 게 결국 보잘 것 없는 신경성질환에 빠진 중늙은이라는 점에서 무척 연악하고 예민한 인물이다. 하지만 김성녀 배우가 그린 아만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활력에 차 있는, 자체로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유니콘 시절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삶의 의지를 강하게 가진, 활력이 넘치는 어머니이다. 무능한 아비 대신 가장 역할을 맡아야 했던 억척스런 한국의 어머니상, 한국식 해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테네시 윌리암스의 자서전 격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톰의 방황이나 일탈이 투정처럼 보인다. 딸 로라와 갈등도 대립각이 좀처럼 서지 않는다. 아만다의 말이나 행동거지를 보면서 관객들이 웃을 수 있다는 건 희곡만 읽거나, 그 안에서 해석하면 좀 드문 일이다. 관객들이 웃은 건 아만다보다 배우 김성녀가 보였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여러모로 장점일 수도 있는 바, 한태숙 연출이 힘을 많이 빼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해서 그런게 아닌가 짐작한다.
어쨌거나 아만다는 사연을 알고 보면 미움이 아닌 동정을 살만한 서글프고 불쌍한 삶을 산 여인이다. 극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사진으로 멀리 2층 객석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그녀의 남편은 아만다의 말에 따르면 유니콘을 말로 끌어내린 함정 같은 인물이다. 즉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남부 부잣집 도련님들 대신 선택한 결과치고는 혹독한 댓가를 치르는 식이다. 가족에게 말도 없이 도망친 남편을 아만다는, 딸 로라가 유니콘 인형의 부러진 뿔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듯, 언제고 핑계 삼을 수 있도록 벽에 못박아 박제를 해두었다.
박제된 사진 속 아버지는 아들 톰에게는 현재 자신의 처지(아버지 사진은 아들 역 이승주 배우와 동일인으로 보인다)와 동일한 상태를 암시함과 동시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 있는 도망친 아버지는 근미래의 자신의 모습이다. 이 작품이 작품 배경보다 먼 훗날 집을 떠올리는 아들 톰의 회고담으로, 현실에서 집에서 벗어나 작가로 성공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반영된 이상 집을 떠나는 선택은 어머니 아만다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러나 과연 작가라는 타이틀로 상쇄될만한 가치가 있는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자식을 방치해 죽인 사건사고가 하루걸러 가십에 오르내리는 2014년 여름, 1930년대 어머니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과한 듯 해도 오히려 부러운 애정처럼 보인다.아이러니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 연극을 본 후 가족의 미래가 그닥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 만큼 2014년이 독한 시절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은 그래서 위안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김성녀 배우 탓(?)이다.
집밖 좁고 더러운 골목에서 첼로를 켜는 거리의 악사는, 액자형식 작품으로 치면 톰이 불러와 가족을 위로를 해주려는 마음씀씀이로 읽을 수 있다. 창문이 가끔 열려 있지만 대부분 문이 닫힌 집안 분위기에 맞춰 빼어난 연주를 하는 악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톰의 머릿속이라면 가능하다. 첼로 한 대라 단출하지만 사람 목소리를 닮은 악기는 분명 작은 위로를 준다.
지하, 무대, 2층 무대까지 총 3층 무대를 쌓은 점은 세로 구조 무대를 잘 활용하는 한태숙 연출답다는 생각을 했다. <오이디푸스>도 벽을 쌓아 올렸지만 <도살장의 시간>에서 비슷한 형식을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작품 성격은 극과극이라 세월에 따라 연출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객석 보는 기준으로 무대 오른편에 3층 무대를 구성했다면 왼편 무대는 폐허가 배의 간판처럼 여기저기 싱크홀이 생겼다. 배가 점차 허물어가는 형국이다. 해체되는 아만다 가족을 형상화한 무대는 2층에서 보면 마치 침몰 직전 배를 보는 듯도 하다. 한편으로 판자를 덧댄 바닥이 꺼진 부분은 조명이 가 닿지 않지만 경계비나 보호막이 없어 배우들 연기가 절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절름발이로 동선이 적은 딸 로라의 작은 공간이 맞붙어 있는데, 객석에서 볼 때도 꽤 불안하니 배우들 동선이 연기의도도 그렇겠지만, 본능에 의해 불안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극 초반, 벽쪽으로 난 2층 문에서 서서 반대편 바닥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위태위태한 곳에 앉아 유리 장난감에 빠진 누나를 바라보는 톰의 모습이 보인다. 그 외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않는 문이라 거의 유일하게 인상이 남은 장면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짐의 등장은 톰이 집을 나가는 계기이다. 톰과 누나 사이 작은 실랑이 이후 아끼는 장난감 유니콘 뿔이 부러지듯 앞으로 짐과 사길 가능성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톰은 따로 약혼녀가 있기도 하다. 이 일화는 아만다의 과거와 일정부분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계획이 틀어졌으니 앞으로 더욱 히스테리를 부릴 일만 남았다. 가족을 버리고 아버지의 길을 택한 톰의 마음을 이해한다. 극장이 아니더라도 골방에는 로라가, 길에는 톰과 같은 처지인 이들로 넘쳐난다.*
사진출처 - 명동예술극장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_삼국유사 연극만발] 악기에 앞서 좋은 곡이 있어야 (0) | 2014.09.05 |
|---|---|
| [두 덩치_산티아고 순례 연극] 그 고단한 여정을 관객이 몰라줄지언정 (0) | 2014.08.14 |
| [분노의 포도_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 신 포도로 가득한 서부를 횡단하는 웨스턴 연극 (0) | 2014.07.18 |
|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 오마주가 뭔지 보여주는 작품 (0) | 2014.07.12 |
| [사물의 안타까움성] 한예종에서부터 불어오는 새바람 (0) | 2014.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