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두 덩치_산티아고 순례 연극] 그 고단한 여정을 관객이 몰라줄지언정

구보씨 2014. 8. 14. 14:21

제목 : 두 덩치 – 산티아고 순례 연극

기간 : 2014/08/14 ~ 2014/08/31

장소 : 대학로 정보소극장

출연 : 이강우, 김이정, 이학주, 고영민, 이새롬, 박준성

작/연출 : 기매리

제작 : 자큰북스zaknbooks, 아해프로젝트



자큰북스는 “작지만 큰 책”을 만들겠다는 야심참 포부로 문을 연 희곡전문포켓북 출판사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고작 손바닥사이즈의 희곡이지만, 그 안에 담긴 크나큰 세상을 통해 극작가, 배우, 연출 등의 연극인들과 만나고 더 나아가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극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연극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을 고대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연극을 하며 배곯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 http://Blog.naver.com/zaknbooks 자큰북스 소개 중에서

 

작지만 큰 책. 이율배반적으로 들리지만 크지만 작은, 예를 들어 풀어보자면 양장판이지만 내용이 별 볼일 없는 책들이 범람하는 요즘 꽤 의미심장한 선언이다. 20세기 말, 한때 청소년들에게 마음의 양식이었던 문고판이 중고서점에서도 찾기 힘든 지금, 작고 가볍고 무엇보다 가격이 싼 작은 책을 만든다는 기획은 출판업계에서 보면 0점짜리 기획이다. 게다가 희곡이다. 주인공이 서넛만 넘어가면 도표를 그리지 않는 이상 배우들도 헷갈린다는 그 ‘희곡’을 출판하는 전문출판사라고 한다.

 

어찌 봐야 할까. 젊은 시절의 객기? 냉정하게 사회의 눈으로 보자면 그 정도 평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회사를 운영할 지속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으로나 질로나 경쟁업체가 거의 없다는 점과 틈새시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연을 좋아하는 기획자라면 도전해봄직한 분야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인터뷰 기사로 읽은 바 있어 내심 궁금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들이 무대에 연극을 올렸다. 희곡출판사가 연극을 올리는 게 왠지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듯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곧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공연 리뷰가 이러면 안되지만, 아무튼 기획의도를 보면 ‘젊은 연극인들의 희곡을 출판하고 낭독공연의 과정을 거쳐 무대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지원사업의 마지막 단계인 봄꽃무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란다. 그런데 이건 마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할 일이다. 비스무리한 기획이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하는 줄 알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이고 보면 그나마 몇 안 되나 데뷔 기회가 없는 희곡작가들에게는 천운을 만난 격이다.

 

하지만 세상에 성공을 예상하지 않은 기획이 없고, 또 제대로 성공한 기획이 드물 듯이 기획이 아무리 좋은들 성과물이 어떨지는 직접 독자로 관객으로 만나봐야 안다. 낯선 작가 겸 연출가(희곡작가들이 그렇기도 하지만)와 ‘두 덩치’라는 다소 모호한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무리다. 난 자큰북스라는 이름만 보고 공연을 본 경우이다.

 

제작비가 적을 텐데 소극장 안에 ‘10kg의 배낭을 메고 800km를 남들과 반대로 걷는’ 산티아고 여정을 어떻게 구현했을까. 배경을 따로 꾸미지 않고, 사다리와 시소 형식의 세트를 무대 삼면에 둘러서 채웠다. 시소의 반동은 오르막과 내리막 역할을 한다. 산티아고를 잘 모르는 이상, 이처럼 빈 여백으로 처리한 게 나을 수도 있다.

 

자신을 만나는 길, 찾아가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산티아고가 아니라도 좋을 수 있지만 꼭 이곳을 찾아야 한다면 절실함 때문일 것이다. 그 절실함이 무대에 잘 묻어났는가, 배우들은 삼면을 빙빙 돌면서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한다. 중간중간 현지인도 만나도 한국인도 만난다. 무대 중간에서는 그들이 내려놓고 싶은 한국에서의 사연이 펼쳐진다. 희곡을 중시한 프로젝트이고, 연출이 곧 작가인 만큼 캐릭터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상투적이지 않은 상황 혹은 다소 상징적이거나 은유법으로 표현한 방식은 영화에서 봄직한 방식이다. 이걸 두고 나쁘다고 할 수는 당연히 없다. 다만 호흡 조절이 아쉽다. 단락별로 매듭을 지어야 관객들이 이해하기도 편하고, 피로도도 낮다. 사건이 있어 기승전결로 풀어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하려는 이야기가 많아지니 집중하기가 좀 힘들다. 푸는 어법은 조심스러운데 하려는 말은 많으니 상대방이 다소 헷갈릴 여지가 있다. 이는 관객마다 다른 해석을 내리거나 느낌을 공유할 만한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묘하게, 관객의 입맛을 잘 아는 노련한 연출가가 만든 무대와는 뭔가 다른 만족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목적이 어디인가? 지속가능성 말고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시기가 또 젊은 연극인의 미덕이자 장점이고, 또 여정이기도 할 것이다. 작품 속 800km 여정을 걷지 않은 자가 사진이나 말만 듣고 상상할 수 있을까, 첫 무대에 <두 덩치>를 올린 자큰북스가 가려는 길이 이러하다면 가는 길 고비마다 고집스러우면서도 솔직하게 관객과 호흡하는 출판사 겸 기획사가 되길 바란다. 이들의 여정에 힘입어 누군가는 힘을 낼 것이기에 그렇다.*

 

* 이미지 출처 - 지큰북스 http://Blog.naver.com/zakn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