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반신 Half Gods
장소 : 명동예술극장
일시 : 2014.09.20~2014.10.05
배우 : 오용, 주인영, 전성민, 이형훈, 서주희, 박윤희 외
원작 : 하기오 모토 (극본ㅣ 하기오 모토, 노다 히데키)
연출 : 노다 히데키
주최 : 명동예술극장
제작 : 명동예술극장, 도쿄예술극장
드디어 <반신> 한국 초연이 무대에 올랐다. 명동예술극장이 2년 여, 오랫동안 공을 들여 올리는 작품이나, 공연을 앞두고 주연 배우가 입원해 공연이 일주일 정도 미뤄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국내 공연 이후 일본 공연 스케줄이 있어 정한 일정대로 움직이는 스케줄이라 관객에게 선보일 기간이 짧아진 점은 여러모로 아쉽다. 그래도 관객 입장에서 위안을 찾자면, 다층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은 작품을 배우들이 이해하고 해석할 시간을 벌었다고 볼 수도 있다. 맹장염으로 입원한 주인영 배우는 극중 말미에 샴쌍둥이를 분리 수술하는 만큼, 살을 도려내는 아픔, 복잡한 심정 등 그 과정이 극에 간접경험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례를 보면 일본 제작진과 한국 배우들의 만남은 종종 높은 시너지를 냈다. 대체로 제작진 등 공연 여건은 일본이 좋지만, 배우 수준이 한국이 좀 더 낫다고들 하는데, 반대 환경으로 올린 작품을 본 적은 없어 확언은 못하나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한국에서 관객 반응이 어쨌건 이번 제작 틀 그대로 일본 공연을 떠나야 한다.
연출가 노다 히데키 野田秀樹의 인지도는 양국이 공유하지만-공연 제작진 인지도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여류 만화가 하기오 모토나 원작 단편 만화에 대한 익숙함은 그렇지 않다. 원작자와 새롭게 각색하는 방식 혹은 결과물은 보편적인 정서나 상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극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명동예술극장 20140925_반신 교육자료 20140925.pdf 참조) 즉 ‘벤젠세계-스핑크스, 하피, 유니콘, 머메이드, 가브리엘, 게리온과 같은 요괴들의 세계. C6H6벤젠이라는 물질의 분자가 완전한 육각형인데서 착안, 수라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나선형 방정식, 호로비츠, 입체안경에 대한 평가(n+1)’나 극중 ‘고독한 소리’ 설정을 착안한 브래드 버리의 단편소설 <무적신호(안개나팔)>의 구절“ 등대의 고동 소리를 듣고 깊은 바다 밑에서 올라오는 이 세상에 단 한 마리 살아남은 공룡” 등은 극중 힌트를 주지 않고는 좀처럼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나마 ‘이성과 몰이성의 상태는 두 줄로 꼬아진 하나의 밧줄처럼 공존하는데, 이는 나선형 방정식, 나선형 계단으로 상징’한다는 무대 세트 정도가 DNA와 연계해 유추가 가능하다. 허나 ‘장치 전체를 가로지르는 하얀색 띠는 인간의 내장을 상징한다. 이는 내장을 공유하고 있는 샴쌍둥이의 신체적 상황을 암시’한다는 의도를 들으면 또 의문부호가 떠오른다.
만화적 상상력이 노다 히데키의 특징이고, 작년 명동예술극장에 올린 연극 <The BEE> 역시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으나 호평을 끌어냈다는 데에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여러모로 ‘관념을 녹인 정신없는 극중극’은 특색 있지만 예상치 못한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명동극장 무대에 오른 <길 떠나는 가족>, <유리동물원>이 대중극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찌를 듯한 세트는 객석 2~3층에서 사각이 생길 테고, ‘원형무대 위 소용돌이무늬가 욕조 구멍으로 빨려 내려가는 회전력을 표현하면서, 극 후반 마리아와 가정교사가 요괴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입구에 있는 소용돌이, 즉 ‘멜스트림’을 의미‘하는 도는 무대는 객석 자체가 반원구조인 남산예술극장이 적격이지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극장과는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첫날 공연이니, 이후 연기가 자연스러워질 테지만 좋은 배우들임에도 빠른 전개와 난이도 높은 대사와 갑작스런 상황 변화(연극을 준비하는 극단의 리허설이라는 현실로 종종 다시 돌아오는)에 몸에 덜 배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객석 반응이 물음표가 가득하니, 배우들도 이 분위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극중극 형태는 이 작품이 절대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상상력의 세계라는 점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같은 대사이나 리허설 초반부와 후반부 사이 대사가 입에 붇는 과정은 이 작품이 리허설 무대 위에서 연기자와 관객이 함께 완성해가는 혹은 새로운 의미망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이다.
앞서 새로 창작하다시피 한 벤젠세계나 호로비츠 등이 그렇지만, 살찐 중년의 좌숙이 고모(서주희 배우)가 요괴 중 남자를 유혹하는 머메이드 역을 맡는다거나, 네모진 얼굴에 전체적으로 굵직굵직하고 작지만 단단한, 전형적인 동양인 외모인 우숙이 고모(이수미 배우)가 팔다리 긴 금발 모델로 착각하고 살았던 천사 가브리엘 역을 맡는 등 작품은 의도적으로 관객의 감정 몰입을 방해한다. 이들 배역은 카드뽑기를 통해 우발적 선택으로 정한다. 극중 반신으로 벤젠세계의 마지막 열쇠인 샴쌍둥이가 인간들 사이 출현하는 등 극 전체에서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이를 해석하려는 이성의 노력은 헛되고도 헛되다는 조롱이 깔려 있는 듯도 하다. 반신은 수술을 통해 한쪽을 죽이고, 수라가 원하는 진정한 고독을 차지한 인간이 되어 소원풀이를 하나, 고독은 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절망 속에 몰아넣고, 죽음으로 인도했는가 말이다.
따로 힌트 혹은 의도를 풀이한 교육 자료를 극장 홈페이지에 올릴 만큼 의도보다 관객들의 반응이 의문부호라, 극장 입장에서도 심정이 복잡할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반응이 노다 히데키가 노린 숨은 의도일지도 모른다. (사실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특유의 언어적 상상력이 살지 않았다는데, 이른바 전문가 평가는 일본어를 모르는데 그럼 어쩌란 말이냐며 성질을 낼 수도 있다. 언어적 유희를 드러내는 방식은 연출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겠는가, 라고 의심을 할 만하다.
작품이 다양한 시도를 한 만큼, 그 취지나 성격이나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주로 하는 남산예술극장에서 올리면 관객 입장에서도 보다 열린 시선으로 볼 여지가 있었다. 나선형 구조의 무대 설정도 반타원 극장인 남산예술센터와 잘 어울린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의미가 없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기간이라 해외작이 몰려오는 시즌과 겹쳐 외국 연출가 제작 공연이 다소 희석되긴 했지만 한일 양국을 오가며 관객을 만나는 시도는 국내에서 명동예술극장이 아니면 이뤄내기 힘들다. 상품이 아닌 예술적 관점에서 휘발성 예술인 연극이 어떤 반향을 불러온다 한들, 쑤군거리는 얘기는 호사가들의 평이지 길게 가기 힘들다. 관객은 연속으로 올리는 작품들을 보고 명동예술극장의 제작 방식을 두고 판단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고, 다만 작품이 예상과 달랐다면 좀 더 주도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진출처 -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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