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남산에서 길을 잃다_삼국유사 프로젝트 2] 남산은 경주에 있다

구보씨 2014. 9. 26. 14:29

제목 : 삼국유사 프로젝트 2 - 남산에서 길을 잃다

일시 : 2014/09/16 ~ 2014/09/28

장소 : 소극장 판

출연 : 하성광, 고수희, 최우성, 윤여진, 홍아론, 최아령, 박민지, 박인지, 김해나, 강희제, 정지영, 경지은

대본 : 백하룡

연출 : 김한내

제작 : (재)국립극단



삼국유사를 읽었던가…. 청소년이었을 때 요약본으로 나온 버전을 읽은 적이 있는 듯도 하나 정확하지 않다. 2010년에 이윤기 선생이 돌아가시고, 있는 줄도 몰랐던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를 책장에서 꺼내 쓰다듬은 적이 있다. 한번 정독을 해야지 했다만 생각뿐이었다. 책장을 보니 작은 소반만한 세계신화 양장본이 눈에 띈다. 이외에도 신화 관련 책들이 두서없이 서넛. 관심을 갖고 있는 건 같은데, 입시 공부할 때 말고 삼국유사 제대로 읽은 적도 관심도 없었다. 참으로 신묘하고 매력이 넘친다고들 있는데….

 

국립극단이 가을맞이 삼국유사 프로젝트를 내놨다. 2012년에 한 번하고 라인업을 바꿔 두 번째라는데, 첫 번째 기획은 모조리 놓쳤다. 소문으로 몇 작품이 볼 만하다고 했다. 나처럼 무심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격년씩 기획작이 올라오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내후년 후에 또 한다면 지금 올라오는 5편이 작품을 만들 작가나 연출에게 자극이 되기도 할 테다.


 

 

<남산에서 길을 잃다>를 보고 삼국유사가 생각할수록 풍성한 상상력을 품은 텍스트구나 감탄을 했다. 괜히 ‘지루할거야, 뻔할거야’ 지레짐작하고 삼국유사를 비롯한 조상들 얘기를 홀대하면서, 그간 수준 떨어지는 현대소설 나부랭이들을 읽어댔구나, 싶었다. 상상력을 제약하는 사각형 프레임 극장에 올리면서도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해 담을 수 있으니, 삼국유사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참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 고도 생각했다.

 

삼국유사 일화 중에, <남산이 길을 잃다>가 택한 성정이 여자 취향이었다던 혜공왕의 삶은 지금 봐도 드라마틱하다. 비단을 만지작거리는 혜공왕은 백하룡 작가의 머릿속에서 70년대 대구 봉제공장촌 순박한 미싱 보조 청년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말을 전하자면 이렇다. “누추한 공장의 불빛이 떠올랐고 그저 무기력하게 등 돌려 실을 잣는 한 남자가 떠올랐습니다. 그에게도 어떤 몸부림이 있었고 꿈이 있었을 것이지만 세상은 또 현실은 무참히 그것들을 부셔버렸을 겁니다.”




혜공왕(신라의 제36대 왕 / 재위 765∼780)은 8살에 왕위에 올라 24살에 반란군의 칼에 죽을 때까지 반란만 5번을 겪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경우는 역사에 드물지 않으나 얼추 주위 세력이 탄탄해 큰 탈이 없었던 반면, 혜공왕은 그렇지 않았다. 아비 경덕왕 때부터 전제왕권과 귀족들 사이 갈등이 심했고, 아이를 낳지 못한 첫째 부인 대신 혜공왕을 낳은 둘째 부인이 섭정을 했는데, 왕권이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겨루기 안에서 동서고금 꼭두각시인 어린 왕은 음주가무에 빠지기 마련이다.

 

삼국유사는 세계 어디나 비슷한 권력 암투를 탄생설화로 올라가 풀어냈다. 여자로 태어났어야 할 아이는, 대를 잇고자 하는 왕의 의지로 인해 후대에 큰 화를 입을 예언을 받을망정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여자들이 즐기는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였으니, 운명은 바꿀 수 없고 비극은 예견되었다는 식이다. 삼국유사의 서술은 생각할수록 놀랍기만 하다.



 

기획작 중 삼국유사와 ‘연결고리가 가장 느슨’한(팸플릿에 실린 강일중 칼럼 중) <남산에서 길을 잃다>는 앞서 작가의 말처럼 혜공왕의 이미지에 좀 더 천착한 면이 있다. 설화를 그대로 옮겨도 연극이 여러 편 나오고도 남을 터이나, 2014년 봉제공장 노동자 출신의 추레하게 늙은 사장으로 되살려냈다. 1200년 전 혜공왕은 요절했어도 후대에 수많은 이야기로 태어날만한 설화를 남겼다. 물론 자의는 아니고 후대에 맞게 각색을 했을 것이다.


2014년 혜공왕의 분신 김승렬은 본래 살아야 나이의 2배가 넘도록 살았지만 신문 한 줄 실릴까말까, ‘중년 남성 보험금 자살’이라는 흔하디흔한 일상의 고리에 묻혀서 사라졌다. 빚보증, 중소기업 파산, 보험, 화재, 자살, 50대….



 

백하룡 작가가 마흔 쯤 됐다. 이 나이가 되면 사는 게 뭔지, 정말 문득 들고, 관성으로 살면서 잡고 있는 미싱이든 식칼이든 운전대든 내 삶이 참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에 빠지면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는 처지에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를 사방팔방에서 찾기 시작한다. 


마흔쯤 승렬(혹은 작가)에게는 미싱 보조 시절, 어린 시다들의 파업을 지지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성공해 꼭 찾아가리라, 그때 약속처럼 진숙이에게 내 손으로 예쁜 블라우스 한 벌 해서 입히리라, 하는 약속의 되새김이었을 것이다.

 

얘기가 여기서 그치면 좋았을 걸. 대충 IMF도 겪고, 불황도 겪고, 의류산업 대부분은 중국 하청으로 처리하는 각박한 현실의 파도를 맞았으나, 그래도 부자는 아니더라도 소시민으로 그럭저럭 자식 낳아 키우고 제 명대로 살다 죽었다고 치면 될 것을, 이 작품은 후일담을 집요하게 파든다.



 

연극에서 20년 세월의 흐름 쯤 보통 교체 없이 1명의 배우가 도맡는다. 진숙 역 고수희나 순애 역 박인희가 그렇다. 그러나 승렬만은 젊은 홍아론에서 하성광으로 바뀌었다. 설화 속 아름다운 비극은 하성광에 다다르며 삶에 찌든 선도 악도 젊음도 늙음도 노동자도 사장도 아닌 현실 속 구부정한 대한민국의 장삼이사들을 끌어들인다.

 

이러저러하여 중국 하청으로 의류산업 하청이 넘어가면서 대구 봉제공단은 파리만 날리고, 흔히 그러듯 건물 담보로 보증을 서다 독박을 쓴다. 늙어 전에 다니던 유흥업소 주방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진숙은 다단계로 재봉틀을 팔다 다니는 교회에서도 욕을 먹는다. 이러면 정말 보는 관객도 곤란해진다. ‘이 따위 신파극이라니, 혜공왕을 빗대 이미지만 차용한 극 주제에’ 그런데 눈물이 눈가에 촉촉하다. 마흔쯤 되면 더불어 눈물을 비롯해 몸에서 습기가 많아진다.  



 

패션쇼 런 어웨이 현장을 빗대 만든 무대 위에 선 하성광은 좌우로 갈려 앉은 관객들의 앞에 발가벗겨진 듯 서 있다. 공장에 불을 질러 삶 자체를 부정하는 그의 모습은 ‘왕을 위해 누에를 치고 잠실을 잣는 두 소녀를 보듬은 채로 칼을 맞아 죽었다’는 여린 혜공왕이 왜 죽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죽은 일화와 겹친다. 당시 왕으로 24살이면 권력관계를 모를 리 없지만, 티비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나올 법한 50살 먹은 재단사가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서 자살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안다고 하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얽히고 얽힌 권력이고 돈의 흐름이다.

 

좋은 배우들의 연기, 특히 젊은 앙상블 배우들이 무대 구조를 비롯해 아크로바틱을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연기를 잘 소화했다. 에밀레종에 얽힌 이야기 역시 연극의 한 축인데, 극중 에밀레종은 아이 둘의 목숨값으로 소리를 냈다는 전설처럼 극중 13살 동갑내기 진숙과 순애의 봉제공장 일화로 빗대 드러난다. ‘타이밍’이라는 잠 쫓는 약을 먹으면서 밤새 야근을 하거나, 먼지구덩이에서 폐병으로 객사한 일은 산업역군이라는 타이틀 아래 묻혀버렸다.


 

 

뜨거운 쇳물이 아이들을 흔적 없이 삼키는 속성은 작가가 화두로 삼은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경계를 드러내는데 은유로 쓰이면서 파업 진압 당시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시간이 멈춘 순애와 우여곡절 끝에 승렬과 만나나 자신이 당한 그 속성을 그대로 닮아버린 진숙 사이 거리두기는 정교한 장치이자, 꿈 혹은 환상 혹은 환각이 아니면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의 굴레를 상징하기도 한다.

 

김한내 연출은 나름 젊은 감각을 극중 작품에 더했지만 희곡으로부터 기인한 큰 틀을 쉬이 건드리고자하는 조급함을 잘 참아냈다. 극중 당사자들인 386세대나 조로早老한 20대에게 유효한 작품이다. 레퍼토리 공연을 해도 좋다. 배우의 힘도 힘이지만 소극장 공연으로 드물게 나온 수작이다.*




사진출처 - 국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