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물의 안타까움성
기간 : 2014/07/10 ~ 2014/07/20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전운종, 김수아, 김보경, 윤정로, 송철호, 장 율, 고영민
원작 : 디미트리 베르휠스트(Dimitri Verhulst)
각색/연출 : 쯔카구치 토모
주최 : 토모즈 팩토리
주관 : 컬처버스CultureBus
한예종 출신 연출가와 배우들 작품이 등장했다. 일본 기시와다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를 졸업한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는 졸업작을 들고, 대학로 기성무대에 나왔다. 성과는? 학교에서 한 번, 대학로에서 두 번을 더해 2014년에만 도합 세 번을 올렸으니 괜찮은 성적표다. 그렇게 <사물의 안타까움성>은 다소 알쏭달쏭한 제목(‘사물의 안타까운 성’으로 읽을 여지가 다분하다)과 다르게 극단 토모의 공장(TOMO’S FACTORY)은 좋은 출발을 했다.
잠깐 올해 초, 1월 23일(목) 한예종 연극원 지하 실험극장으로 돌아가 보면, 이곳은 태릉선수촌 태권도장에 비유할 수 있다. 국내 예선 통과가 국제 경기보다 더 어려운 곳인 셈이다. 못해도 평작은 하는, 그러니까 360도 돌아 뒤후리기 정도는 몸풀기로 구사하는 국가대표급들이 보여주는 공연은 여느 연기과 학생들 과제발표작과 다르게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에 나가면 약간 사기 비슷한 뭔가가 되는 것이다. 매년 5~6월과 9~10월에 한예종 기말 발표작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볼 때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대학로는 케이지, 그러니까 UFC경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보호대도 없고, 어지간한 규칙은 무시해도 좋은 공간이다.
<사물의 안타까움성>은 일본 연출가가 벨기에 작가가 쓴 벨기에 시골마을 얘기를 한국 배우들과 함께 연극으로 바꿔 올린 작품이다. 뭔가 변칙을 구사하기에 조건은 갖춘 셈이다. 굳이 한국 파이터(?)들과 견주어 한국식으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게다. ‘매 공연마다 20여병의 맥주가 소비되는 연극. 병나발을 부는 배우들이 서 있는 무대 위로 맥주 거품이 흩뿌려진다. 여덟 명의 배우들은 난장(亂場)에서 마시고, 웃고, 춤추고, 운다!’는 작품 소개를 보면 난장판 만들기가 그럴 것이다.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도 좋고, 노련한 베테랑 같은 닳고 닳은 관객들과 붙어 승산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설픈 변칙은 뼈아픈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토모네 공장 직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배우들이 맥주병을 테이블에 퍽퍽 칠 때마다 아까운 맥주가 거품이 되어 사방으로 튄다. 객석 앞줄은 거품 맞을 각오를 좀 해야 한다. 맥주하면 독일을 떠올리지만 맥주 브랜드가 5,000개가 넘고, 13살 정도이면 클럽을 다니는 나라가 벨기에이다. 입으로 반쯤 바닥에 반쯤 사방으로 맥주를 뿜어댄다.
차가운 맥주 한 잔은 엄청난 마력으로 정신을 빼놓지만 한 잔으로 끝날 리 없으나 결국 숙취와 다소의 후회를 안고 변기 위에서 비루한 자신을 돌아보며 설사를 해대기 마련이다. 공연 중에 바닥 닦을 새가 없으니, 무대 바닥은 눌어붙은 맥주 자국으로 지저분하다. 하지만 끈적끈적 얼룩진 맥주의 흔적은 벨기에식 노스탤지어를 표현하기에 적격이기도 하다.
무지렁이 술주정꾼 연기가 쉬운 듯하나 그렇지도 않은 게 당장 형제 4명이 비슷한 듯 또 다르다. 고만고만한 연기로는 맥주가 튀는 코 앞자리에 앉은 관객들의 매서운 눈초리, 아무래도 맥주 세례를 맡고난 뒤 더욱 날카로운 차가운 시선을 견딜 재간이 없다. 그러나 연기는 거친 듯 정교하다. 안주를 먹을 때나 즉흥 연기를 보일 때 마임 연기가 섬세하다. 이른바 내공이라는 건데, 어설프게 허세나 떨 줄 알았더니 생각지 않은 기교에 자신감이 넘친다.
아버지와 아들, 주인공 역할을 제외하고 5명 배우가 1인 다역을 소화한다. 캐릭터마다 특징을 잘 살려 전체적으로 떠들썩한 분위기에도 특징을 잘 살렸다. 김수아 배우는 80대 노모에서 40대 섹시녀와 20대 술주정꾼까지 팔색조 연기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 외 김보경, 윤정로 등 다른 배우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월드컵 축구를 보면 불세출 스타가 없어도 선수층이 두터운 독일이 우승을 하듯 말이다. 아무리 취해도 좋은 맥주를 마시면 대번에 알듯 기본기가 좋은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술자리 후일담 같은 주정꾼들 얘기에서 점차 진한 맛을 끌어낸다.
세트나 큰 대도구 없이도 연기가 좋으니 각각 에피소드가 다 재미있다. 하지만 전체로 조망하면 아버지를 애도하는 심정이 잘 드러났는지 고민할 부분이다. 부자 관계를 보여줄 때 둘 사이를 주목하기보다 주변부 에피소드에 치중하다보니 뼈대가 좀 약하다. 마지막 ‘술꾼의 노래’를 채록하면서 아버지를 떠올리는 대목은 푸는 방식이 좀 구닥다리이다.
아무려나 이 작품이 공장보다는 협동조합에 가까운 ‘토모네 공장’의 데뷔작이라고 한다면 놀랍다.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이 이끄는 극단 달나라동백꽃에 이어 연극계에 점차 한예종 시대가 오는 건 아닌가 싶다. 제작극작 열풍에 침체에 빠진 극단 문화에 시원한 새바람을 불어넣을지, 무더운 여름밤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사진출처 - 극단 토모즈 팩토리, 컬처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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