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손님들
일시 : 2017년 1월 12일 ~ 15일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
희곡 : 고연옥
연출 : 김 정
출연 : 김정화, 심완준, 이진경, 문영동, 박종태, 최순진, 오남영
스텝 : 무대디자인 김은진, 조명디자인 신동선, 의상디자인 김우성, 분장디자인 백지영, 음향디자인 지미 세르, 움직임 권령은, 사진 박태준, 드로잉 이상홍, 조연출 박정호, 기획 조하나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울시
경찰청에 따르면 존속범죄는 2012년 402건, 2013년 377건, 2014년 390건, 2015년 470건에 이어 지난해에도 464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 2006∼2013년 발생한 381건의 존속살해 사건 가운데 범행동기가 ‘정신질환’인 경우는 130건(34.1%)에 달했다. 이는 ‘가정불화’(188건·49.3%)에 이어 2위로, ‘경제문제’(58건·15.2%)보다도 정신질환으로 인한 존속살해 사건이 더 많았다. - 정신질환 자녀들, 부모 상해·살해 年 수백 건 / 문화일보 2017-01-06 11:42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존속살해는 더 이상 희랍극에서나 볼 법한 특이한 비극이 아니다. 2017년, 아무도 그 아이들을 오이디푸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패륜아로 사회로부터 가능한 한 길게 격리하거나, 요주의 치료 대상인 정신질환자로 분류해 관리 감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안심을 한다. 역으로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는 어떠한가. 남편 이아손을 향한 복수로 두 아들을 죽이는 메데이아의 복수극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이슈가 아니다.
이은석(1976년 ~ 경기도 과천시)은 부모를 토막살해한 대한민국의 살인자이다. 그러나 부모의‘가부적 양육태도’에 의한 아동학대의 희생양으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으며[1][2] 이 사건은 가정환경의 중요성과 극단적인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알렸다. (...) 이은석의 형은 이은석의 범행을 전해 듣고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동생을 이해한다."라며 이은석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공범 의혹이 일었지만 공범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법정 진술에서 이은석의 형은 동생이 물론 용납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부모가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갖는 만큼의 애정만 우리에게 줬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이은석에 대해 변론하였다. 이은석의 형은 일찍부터 이은석과는 달리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독립해 집을 나가버린 상태였고, 어려서부터 자신의 부모와 가정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으며 부모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에 계속해 반항하고 싸우는 등, 이은석과는 반대되는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알려졌다. [위키백과 발췌]
연극 <손님들>은 2005년 5월 24일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연극에서 형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으나 이후 검색했을 때, 순종하지 않는 반항아였기 때문에 비극에서 빗겨갈 수 있었던 형의 말은, 10년 뒤 세월호 침몰과 겹치면서 가슴이 시리다.
연극 <손님들>의 주인공 고등학생 소년은 으슥한 골목, 초등학교 운동장, 폐허가 된 무덤가를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와 부모의 변사체를 마주한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사회부적응자에 외톨이인가 싶지만 첫 장면에서 소년은 오랜 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들 떠 있다. 손님들이 달갑지 않은 부모 영혼을 다독여 식탁에 앉히고 냉랭한 둘 사이를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성적도 좋고 성격도 좋아 보이는 소년은 막 사귄지 시작한 여자 친구도 있다. 이제 다른 집처럼 평범한 가정을 꾸린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아루 오랜만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부모 사회성을 깨워줄 것이다.
그러나 살해한 부모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소년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분류에 따르면 중증 정신질환자이다. 연극은 신문 기사가 전하는 현실을 정반대로, 여전히 슬프고 우울한 정서가 밑바탕에 있으나, 방향을 뒤집어 해석했다. 작가 고연옥은 ‘어린 시절 받은 학대와 인생 실패를 자식으로부터 보상받으려는 부모의 비극’이라는 전형성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고 한다. 노련한 작가답게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으므로 짐작 가능한 방식으로 흐를 여지가 있는 서사에 얽매이지 않는다.
객석을 보는 소년의 독백으로부터 시작해 등을 돌렸던 부모가 마주보고, 길고양이, 동상, 무덤 속 시체가 등장하면서 소년이 내면으로 침잠하는 여정에 피로도가 높아질 무렵, 현실 속 여자친구를 등장시켜 균형을 맞춘다. 소년의 하루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각각 독특한 캐릭터들로 결이 다르지 않은 연출을 통해 과거와 상상과 현실 이질적이지 않게 섞인다. 한다. 김 정의 연출과 배우들의 역량이 받침이 되니, 분위기 전반에 걸쳐 반대로 휘어지는 듯 돌아 결론으로 짓는 과정에서 생기는 반탄력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
의인화한 손님들이 등장하고, 아이처럼 떼를 쓰는 부모를 보면 분위기나 배경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닮았다. 허나 꿈에서 깨면 편안한 침대로 돌아오는 동화와 달리, 소년은 싸늘한 시체를 마주해야 한다. 이 연극이 잔인한 이유는, 죽었으므로 변할 리 없는 과거의 부모를 결국 죽일 수밖에 없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있다. 연극은 소년이 자수를 하거나 시체를 묻으면서 반성하는 식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시체를 썩는 집이니 인간을 손님을 받을 수도 없다.
작품 시작과 끝, 무한 반복은 매일 배우가 같은 시각에 같은 작품을 올려야 하는 연극성, 속성과 일치하고, 서사나 주제에 굳이 집착하지 않는 구성은 매일 새 관객이 극장을 채우지만, 연극 한 편으로 관객의 인식이 쉬이 바뀔 리 없는 냉정한 현실과도 일치한다. 허나 부모를 제외하고 소년을 둘러싼 인물들이 희망의 여지를 두고 있다. 소년이 택한 손님들은 마치 황량하기만 소년의 마음처럼 외롭고 쓸쓸한 무엇들이나, 가족이 아닌 잠시 들르는 손님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초대에 응하고 기쁘게 와서 주인이 여는 파티를 즐기면 된다. 소년이 원하는 건 간섭이 아니므로 그러하다. (다만 굳이 고양이, 동상, 시체인 이유가 불분명하다. 버려진 무엇으로 손님이 더 존재해도 그만, 셋 중 하나가 없어도 그만이다. 그리고 손님들이 소년의 가족과 벌이는 일화가 딱히 없이 회고하는 수준이 그치는 점은 아쉽다.)
극중 유일한 인간인 소녀와 또래 아이들이 할 법한 사춘기 시절 풋풋한 첫사랑이 소년이 무너지지 않도록, 소년이 자포자기 자살을 하거나 어쩌면 연쇄살인마와 같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잡아 주고 있다. 이른바 학교 기준으로 문제아인 소녀 입장에서도 소년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일지 모를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방황을 멈추려고 한다. 그러나 소녀가 손님으로 찾아오는 순간 소년과 소녀의 행복은 깨져버리고 만다. 이 둘의 사랑은 집 밖으로 떠돌 수밖에 없기도 하여, 소년이 원하는 가정과 거리가 멀다.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잔인한 비극을 소재로 삼았으나, 그럼에도 청소년극으로 올려도 좋을 작품이다.*
김 정 연출, 왼쪽에서 세 번째
사진출처 - 서울연극센터, 조선일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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