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5일 토요일 현재, 100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가 말해주듯 현실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이 글은 서울 150만 명, 전국 190만 명이 한 마음을 모은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 이후 쓴 글입니다. 3월, 행복한 봄 기대합니다.
“국민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잠잠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Inside Men>(2015)에서 유력 일간지 논설주간 이강희가 권력실세와 나누는 대사는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입을 통해 회자가 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현실이 영화를 이겨버린 셈이다. 허나 바보에게 바보라고 정곡을 찌르면 발끈하는 법, 불평하다가도 다른 호기심거리를 던지면 잠잠해지는 건 권력구조 상 하부구조에 속한 대중을 다루는 프로파간다의 기본 전략이다. 그러나 마치 영화처럼 40년을 숨어 지내던 권력 비리의 끝판왕이 등장하면서 국민들이 짖는 데시벨 소리가 만만치 않게 높다. 울림이 메아리가 되어 거리릍 타고 담장을 넘어 고막을 때리는 형국이라 사뭇 우리 국민들이 이런 기질이 있었나 감탄하는 와중이다.
연극 <햄릿아비>는 150만 중 한 명이 된 사내의 이야기이다. 2016년 대한민국 장삼이사의 대표격인 사내는 12세기 덴마크 왕가의 주인공 햄릿보다 해골을 발로 툭툭 차면서 무덤을 파는 단역 무덤지기 광대와 닮았다. 상조회사 영업직원인 사내는 사람이 죽어야 먹고 사는 아이러니한 처지라며 자신을 한탄하나, 5만 원짜리 유골함을 50만원에 속여 파는 처지이다. 적당히 파렴치하고 대충 눈치 보며 사는 소시민이다. 장례식장을 오가다 지하철 막차에서 잠에 곯아떨어지는 첫 장면은 마치 죽은 후 관에 누워, 그것도 대중교통이나 다름없는 저렴한 관에 누워 이승을 떠나는 소시민들의 삶과 닮았다.
자는 사내를 두고 젊고 가난한 연인이 여관대신 사랑을 나누다 급히 자리를 뜬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누군가는 생명을 잉태할 테지만 삶과 죽음 혹은 부비는 살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사내한테는 죽음의 망령이 찾아올 뿐이다. 현실에 햄릿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유치원 발표회에서나 볼법한 손 인형극이 등장하고, 곧이어 종이왕관을 쓴 어설픈 선왕 햄릿아비가 등장하는 장면은 2016 37회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 연기상 수상작으로 제3회 종로구우수연극전 선발작으로 재공연을 올리는 작품이라고 이해하기에는 다소 당황스럽다.
도입부에서 코미디극도 정극도 아닌 기이한 접근 방식은 사내가 아비와 만난 이후 현실로 넘어와 겪는 한국의 아픈 근현대사와 이 연극이 재공연을 반복할 동안 변하지 않은 세월호 비극을 작정을 하고 사실적으로 때로는 충격적으로 다루는 장면과 비교하면 긴장이나 몰입감이 전혀 다르다. 이런 변화는 만화, 동화, 상상으로 현실의 실상 혹은 속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 몸 건사하기 바빴던 현대인들이 점차 현실에 대한 자각을 해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배우들이 극 도중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동료와 사전 검열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극장 밖 현실에서 나, 배우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목 역시 극중 사내의 변화 과정과 같은 맥락으로 봐야할 것이다. 연극배우 10년 만에 주연을 맡았으나 하필 현실 풍자 연극이라 곤란한 이태형의 처지는 자신이 맡은 햄릿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작품 의도가 관객들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같이 공감하자는 취지일 터다.
속 시원하게 할 말을 하는 작품은 카타르시스를 관객과 공유하지만 직설법으로 풀어내는 현실의 몇몇 장면은 가슴 절절하게 아프게 다가와 파장을 길게 늘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뤘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작품 전반에 걸쳐 현대사를 햄릿에 빗대 풀어내는 은유적 구성이 맞는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기도 하다.
난데없이 햄릿으로 살아야 하는 사내는, 시절가는 대로 끌려 다니기만 하면서 막걸리 사발 앞에서야 잠시 짖을 줄만 알던 못난 아비에 의해 불려나온 불쌍한 햄릿은, 단지 못난 아비들의 가볍디가벼운 몸뚱이(재)를 담을 무덤(유골함)을 적당히 속여 팔았다는 이유로 현실을 맞닥뜨린 햄릿은 과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다시 풀자면 해방 이후 근현대사의 굴곡을 몸으로 받아낸 서민들의 수많은 아비의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무대 위에 선 이상 배우는 박수이자 만신이기도 하여 원혼을 풀기에 참 적당하다. 마지막 대목,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며 휴대전화로 유골함을 파는 일상으로 사내는 돌아왔다. 통화를 하면서 급히 서류봉투를 뒤지는데 난데없이 식칼이 나온다. 햄릿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삼촌 클로디어스를 찌른 비장미 넘치는 결투용 칼에 비하면 참으로 기운 빠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 칼은 세월호 팽목항을 떠나지 못한 한 어머니가 가을 배추를 썰어 전을 만들던 칼이다. 자식을 아직 진도 앞바다에 묻은 채로 1천일을 견딘 어머니의 손에 쥐인 칼은 먹고 살기 위해 든 칼이 아니다. 원한이 풀리는 그날까지 견디기 위해 역으로 편히 죽지 못해 죽었으나 살아야 하는 운명을 한탄하며 든 한이 서린 칼이다. 사내의 칼에 놀라 지하철 안 장삼이사들이 놀라 흩어진다. 방금 전까지 사내와 다르지 않았으나 무심했고 한 편이 아니었던 그들이다. 사내는 해프닝을 벌인 정신이상자로 지하철 순경에게 끌려 나갈 것인가? 현실이라며 그랬을 것이고 신문 가십 란에 실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대 위 햄릿이 치켜든 칼은 수직광을 받아 수천 자루 칼처럼 번쩍거렸다. 요즘 광장에서 보는 들불처럼 커지면서 빛을 발하는 촛불처럼 그러했다.
[사진: 서울연극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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