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임-언-아티스트
일시 : 2017년 1월 14일 ~ 18일
장소 : 만리동 예술인주택
공동창작
구성/연출 : 이은서
드라마터크 : 전강희
출연 : 구정연, 김수진, 김승언, 이선시, 이소영, 이은서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울시
아임 an 아티스트 : 나는 일개 예술가다.
아임 un 아티스트 : 나는 예술가가 아닌 것 같다.
아임 '언' 아티스트 : 나는 쫄아 있는 예술가다.
아임언아티스트는 극장이 아닌 서울 중구 만리동2가 만리동 예술인 협동조합 '막쿱'
(Mallidong Artists Cooperative, M.A.Coop)에서 거주민들이 올리는 공연인 만큼 장소특정형 (site-specific) 작품인 셈이다. 연극보다는 거리예술 영역에 가까운 편인데, 신진 연출가의 작품 개발부터 서울연극센터가 지원하는 NEWStage 선장작인 만큼 연극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4D영화가 흔한 시절에 극장에 연연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막쿱 가는 길, 만리동 고개 주변으로 만리동 아파트가 아닌 ‘서울역 센트럴 자이’ 아파트라고 이름 붙인 대규모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 옆으로 지은 지 3~40년은 된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따개비마냥 붙어 있다. 기사에 따르면 ‘8월에 입주하는 중구 만리동 ‘서울역 센트럴자이’의 전용 72㎡는 지난 12월에 7억2000만원에 거래되며 1억2260만원의 웃돈이 붙은 것으로 조사됐다‘(헤럴드경제, 2017-01-15)고 한다. 이 지역이 시청 업무권역(CBD)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인데, 자가용이 없는 이상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아파트에서 서울역에 이르는 동선이 용이하지는 않다. 부동산 불경기에도 웃돈이 붙는 고급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의류업체의 하청공장이 몰려있는 만리동 일대는 빠르게 바뀔 것이다. (만리동 고개 버스정류장에서 막쿱으로 걸어가는 와중(B코스)에도 건축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들이 자주 오갔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만리동 동네주민이기도 한 이은서 연출의 안내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아들 박지만을 위해 중고교평준화를 실시하고 만리동 고개 배문중학교에 보내면서 복잡한 시장 골목을 정비하고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가 뚫렸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길 위에 있던 집들이 쫓겨났다는 과거부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이사를 간다는 미장원과 품질이 좋아 아는 사람들만 찾는다는 양장점까지 해발104m 막쿱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눈 깜짝할 새에 달라지는 서울 풍경, 그 시공간 변화의 경계에 막쿱이 있다. SH공사로부터 예술가(?)로 공식 인정을 받았으나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예술가로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막쿱 1층 공용공간 '커뮤니티룸'에 도착하기까지 15분 내외 만리동 고갯길 투어는 프리퀼처럼 공연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여정이다.
고급 고층 아파트 단지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더 이상 이런 뷰는 가능하지 않다.
협동조합형 장기임대주택 '막쿱'에는 미술·설치·건축·영화·연극·음악 등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29가구가 여러 과정을 거쳐 1.5대1 경쟁을 뚫고 살고 있다. 예술을 한다면 20년까지 살 수 있는 예술가들이 사는 동네는 어떨까, 그곳에서 그들은 마음 놓고 예술을 하고 있을까. 여건을 보자면 산동네 장점인 서울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재미도 고층 아파트가 둘러싸면서 누리기 힘들다. 입주 예정인 1층 집에 들어가 보니 창문 배치에 따라 바로 옆 환인고등학교 교실에서 집안이 바로 내리 보이는 구조이다. 마을버스가 언덕 아래까지 다니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어다는 경로가 편하지는 않다. 장을 보거나 병원을 가거나 아이 등교를 위해서는 자가용이 필요하다. 임대주택인 이상 일정 부분 저소득층이어야 입주가 가능한데, 극중 대사에 따르면 가난하되 “보증금을 내고 매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낼 정도”는 필수 조건인데다, 자가용 한 대가 충분조건이면 더 좋다.
위치로 보면 주거공간에서 섬처럼 떨어진 곳에 있고 오르막 아이를 낳고 키우거나, 노약자가 지내기에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경제취약계층인 예술가 집단에서는 드물게 아이가 태어나고 있단다. 집값,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서울에서 또 부동산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서울에서 더욱이 외곽이 아닌 곳에서 웬만하면 20년을 살 수 있으니,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주거 걱정을 덜 수 있어 서민 입장에서 꽤 좋은 조건이다. 막상 보면 집이 좁은 편이라 작업공간을 따로 두기 어렵고, 예술가를 위한 배려 공간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커뮤니티룸’이 작은 공연이나 전시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예술가들을 모은 이상 주변 지역주민들이 찾을 수 있을 만한 전시, 연주,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거주 공간이라 한가한 평일 낮 공연만 점도 그러하다. 관객 역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가이거나 지인이거나 관련 종사자들이다. 작품은 막쿱에 살거나, 살지만 내가 예술가 맞나 싶거나, 늘 가난했지만 여전히 예술가이거나, 국제콩쿠르에서 상을 받았으나 하고 싶은 예술은 따로 있거나, 지원했다가 경쟁이 싫어 포기했던 일화가 연주, 무용, 연극, 요리(?)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공연장, 전시장, 음악당이 서울에 몰린 탓에 예술가 대부분이 서울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막쿱은 반가운 예술가 지원책이 맞긴 하지만 특혜라고 보기에는 민망한 단출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반인 입장에서 기묘하고 낯선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만리동 예술축제가 열린다면 제대로 된 지역축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무대 밖 예술가들의 진솔한 일상을 듣는 자리가 관객으로 드물기도 하여 흥미로웠으나 동네를 벗어났을 때 작품으로 생명력을 유지할지 고민스럽다.
버스정류장에서 이은서 연출이 관람객들에게 나눠준 핫팩의 열기가 오랫동안 식지 않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바쁘게 살면서 예술가로 정체성을 고민하는 구정연 배우가 공연장에서 만들준 주먹밥 역시 제법 든든하다. 커뮤니티룸 폴딩 도어 유리창 밖에서 킥보드를 타고 왔다갔다 하며 들여다보던 파마머리 꼬마가 누군가 했더니 구정연 배우 첫째아들 찬호(9)다. 공연 끝나자마자 구정연 배우가 지인인 듯싶은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찬호가 비집고 들어왔다. “엄마, 오늘 피아노 안 가되 돼?” 엄마 뒤에 붙어 계속 귀찮게 구니 손님 접대를 하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는 구정연 배우가 분명 골이 난 목소리로 허락을 한다.
분명 있다 두고 보자는 뉘앙스이고 녀석이 모를 리가 없을텐데 어쨌거나 땡땡이를 허락 받으니 찬호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공연 삼일 째, 여러모로 평상시와 달리 배우로 나선 엄마의 바뀐 상황과 무대에 선 심리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가능한 영리한 거래다. 또래 친구 한 명 보이지 않았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지도 않는데 엄마를 조르는 걸 보면 이모와 삼촌들과 있는 게 편하고 좋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막쿱과 같은 조직이 이곳저곳 생겨야 하는 여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영화로 치면 자막이 올라간 후에 놓칠 뻔한 쿠키 영상을 본 셈이다.*
사진출처 - 막쿱
왼쪽에서 첫 번째, 이은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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