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예술비평아카데미를 수강하는 동안 2016선유도거리예술마켓을 다녀온 풍경을 적은 글입니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쓰다만 글이지 싶지만... 남기지 않으면 없어지지 싶어 말이지요. 한겨울 거리예술을 하던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봄을 기다리며 열심히 작품을 만들거나 휴식을 즐기고 있겠지요. 내년 봄은 2016년 봄보다 황사가 심할 지도 모르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나 마음만은 바뀐 세상에서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설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거리예술가들이 덩달아 기운나는 2017년이길 바랍니다. [2016.12.26]
9월 3일 첫 주말, 선유도 공원에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코스프레 분장을 한 젊은이들이 팀을 이뤄 여기저기 계단을 차지하고 만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가 하면, 그 옆으로 소박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어린 신부와 신랑이 지나간다. 한편으로 졸업사진을 찍으러 왔나 싶지만, 신인 걸그룹 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남긴 아이돌 복장의 여학생들 역시 카메라 앞에서 대열을 갖춰 자세를 취한다.
하나같이, 앙증맞은 일탈이다.
양화대교 한가운데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들어오는 길, 공원 이전 선유도는 취수장이었던바 접근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다리를 통해 넘어오는 동선은 다리 수명이 그렇듯 임시방편이다. 양화대교는 한강다리 가운데 통행량이 많기로 손꼽힌다. 다리는 늦추거나 머무르려는 의도로 지어진 게 아니다. 갈 길 바쁜 사람들로 무한통행이 이뤄져야 한다.
성수대교 붕괴 트라우마가 있기도 하거니와 다리 위는 어떤 이유에서건 빨리 벗어나야할 이유가 있다. 걸어서 접근이 불가능하지 않으나 차들 옆으로 걷는 내내 사파리 투어를 당하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걷다보면 아치 위에서 벌이는 시위나 투신자살을 막기 위한 오름 방지 시설이 보인다.
차를 타, 라고 다리는 말한다.
다리는 불편하고 불길하며 빨리 벗어나야 하는 곳이다. 역설적으로 다리가 갖는 아슬아슬한 고립과 단절이라는 비접근성이, 더불어 잡다한 영업지역이 들어설 곳이 없는 격리가 조용한 안식처를 만든다. 가을 하늘 아래 누군가 뛰어내리는 광경(2015 한강투신자 구조인원 543명, 서울소방재난본부)을 보게 될지 모르지만 선유도 공원은 이러나저러나 서울에서 꼽는 휴식처이다.
선유도에서 ‘2016거리예술마켓_선유도’가 열렸다. 공원 이곳저곳 유쾌한 묘기(크로키키 브러더스, 바가&본드)가 유쾌한 공연으로 시민들의 시선을 끌지만 지하 공간에서‘한국거리예술(가) 생존기’라는 주제로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버텨왔는지 소회를 나누는 자리가 열렸다. 작품 유통을 도모하는 아트마켓 포럼 주제가 ‘생존’일 수밖에 없다니 절박하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예술가들의 생존기는 듣건대 절절한 구석이 없지 않으나 10년 내내 동어반복의 연속일 테다. 앞으로 뚜렷한 대책이 있지 않을 것임으로 아는 얼굴끼리 나누는 현실 인식은 뒤풀이 때 나누는 속풀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각개전투로 지역에서 버틴다고 하지만 그 영역마저도 거리예술가들 만을 영역은 아니고, 연속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버티어야한다면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 고민의 결과물이 지상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다고 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러한가.
‘거리예술마켓_선유도’는 세심하고 정성이 엿보이는 좋은 기획이다. 허나 작품-전체를 보지 못해 조심스럽지만-을 놓고 말하자면 개별 작품 완성도를 평가하기 전에 전반적으로 공공지원 안에서 서울시 주최를 달고 유통할 수 있는 작품의 범위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생존기를 들어보면 잡초인데, 팔려고 선보인 작품이 온실에서 키운 화초처럼 무던한지 이해가 간다. 축제나 행사를 통해 관객을 만나려면 남녀노소 누구 봐도 재밌고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이어야 한다.
선유도 공원에서 나와 버스를 타려고 참에 내 옆에서 같이 여유롭게 박수를 쳤을 누군가가 몸을 밀치고 들어왔다. 좁은 버스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와 부딪히며 이는 짜증을 참는 내내 당산역까지 한 정거장 1킬로미터 남짓 가는데 10분가량 걸렸고, 체감시간은 훨씬 길었다. 선유도에서 즐긴 반나절의 여유는 5분 이내 휘발한다. 버스에서 내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길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선유도 공원 안에서 작품을 향한 사람들의 호의는 꽤 너그러웠으나 이곳에서도 그럴지 장담할 수 없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보수적이고, 현실을 직시하거나 사실을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비평이나 비판에 익숙하지 않다. 서울의 거리는 어떠한가. 다소곳하고 단정해야 하며 무색무취 특징이 없고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점점 느는 시위 혹은 자살 투신 시도에 차량통행을 방해해 수 만 명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꾸짖으면서 오름 방지 시설 운운하는 뉴스를 보고 있자면, 대도시 서울의 거리는 삶의 현장으로 기능이 멈춘 곳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편한 극장을 두고 한계나 제한이 가득한 거리에서 버티는 예술가들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 마켓에 내놓은 작품이라 그중 대표작일 것이나 축제나 행사 기획자 혹은 행정가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했던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포럼 때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온 ‘삶으로 거리를 포착하는’게 거리예술이라면, 법적 관습적 심리적 통제에도 일어나는 불화의 현장인 거리의 다른 이면을 드러내는 작업에 매진해주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사진출처 - 서울거리예술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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