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멜리에스 일루션 - 에피소드 Melies Illusion-Episode
일시 : 2016.03.25 ~ 2016.04.02
장소 : 스페이스111
구성/연출 : EG
기획 및 제작 : 두산아트센터, 페스티벌 봄
두산아트센터가 2016인문극장 ‘모험’을 시작했다. 첫 번째 마련한 자리로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를 봤다. 한국사회에서 중년이 가까운 남자가 모험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해봤다. 20년 정도 다닌 직장을 나와 자영업을 하는 정도? 매년 자영영자 90만 명이 창업을 하고 80만 곳이 폐업을 한다는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이란, 모험 같은 일이다. 주위에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런 모험은 떠밀리듯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식이다. 아니 이런 건 어린 시절 내가 떠올렸던 모험이 아니다. 천박한 시대에 휘둘리다보니 모험이 뭔지 잊고 주입식으로 사고하고 만다.
나이 들어 건강을 위해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한다던 A가 프랜차이즈 닭집을 하면서 성공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게 당연하듯 이유식처럼 돈을 지불하고 선택하면 그만인 것들이 모험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모험이란 뭔가? 온라인서점 창을 띄우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책 광고 팝업창이 뜬다. 계속 움직인다고 여겼는데, 어디로든 또 가야한다는 위기의식이 든다.
모험이 사유나 성찰보다 경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와 잘 어울린다. 모험의 결과로 보물을 떠올리듯 통상 모험을 떠난 개척자의 목적이나 결과가 그러했다. 정말 모험이란 그러한가?
두산인문극장의 요지는‘모험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현실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진단에 기인한다. 수많은 결에 의해 목적이나 의미가 구조를 알 수 없게 된 개인이 자본주의의 비피엠이 점차 올라가는 순환 구조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극에 달할 때 내릴 수 있는 처방전 같은 것일까. 2016년이니 모험을 나서라고 3개월에 걸쳐 상반기 내내 공연, 전시, 강연, 상영을 한다. 이 프로그램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앞서 몇 년에 걸쳐 던진 주제에 비해 가볍고 해석의 여지가 많다.
각박한 현실이 가상이었으면 한낱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꿈꾸는 가상이 현실이길 바란다고들 한다. 인류 최초 가상과 현실이 겹치는 순간을 미디어로 구현한‘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는 모험을 떠나기에 앞서 진단 혹은 배경 설명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의 개막작이기도 한데, 장르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맞는 선택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과거 외국의 엇비슷한 마술 콘셉트를 따와서 자본 논리에 충실하게 제작비 상승과 작업 결과가 비례하는 작업방식인 마술쇼를 모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종의 신기루, 잠시 사람들을 홀리는 환각이 모험이란 말인가.
하지만 가상현실 구현의 혁명이랄 수 있는 시네마가 막 등장한 시기에 마술을 접목한 영화감독이자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상(가상) 작업물을 다시 무대(현실)에 풀어내 구현하는 작업은 인문극장과 페스티벌 봄의 시발점으로 의미가 있다. 모험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준비과정에 있을 텐데, 각 분야에서 해부하고 해석하고 분석해 작업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첫걸음으로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다. 3D 가상현실이 중심 키워드로 등장하나 싶은데,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으로 아예 인간(실체)의 부재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 구현이 가능한 시대가 왔음을 시사했다. 하루 128만 번의 자체 바둑 대국을 두는 게 가능한 인공지능 앞에서 1년에 천 번 정도를 두는 게 고작인 인간의‘경험’을 인류의 자산이라고 하는 프레임이 통할 수 있을 것인가.
필름의 등장은 현장의 불완전성을 극복했다. 멜리에스 영상 작업은 마술의 신기원이라는 의미보다 단순 반복 작업의 지루한 시간을 극복해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불완전체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하지만 다 알 듯 경계 방식의 허물음은 곧 지루해진다. 마술의 비법이 이미 인터넷에 공개가 된 마당에 무대로 회귀는 멜리에스의 작업 방식을 설계도처럼 펼쳐 보여주고 낱낱이 해체하는 식이다.
관객을 앞에 두고 제작 과정의 재현은 마술의 암묵적 금기라는 점에서 모험이라면 모험일까만은, 색다른 선택이라고 평가하겠다. 프로마술가이자 대중작가답게 공연은 재밌고, 유쾌하다. 관객과 현장성을 누구보다 노련하게 활용하는 데에 더 나아가 TV에서 알지 못했고, 가상에서 비친 모습만으로는 그다지 호감이 아니었던 마술사의, 예술가로 고민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해외에서 비슷한 작업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최초의 시도라고 본다면 역사적인 의미에 더해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흥미롭기도 했지만 의미 부여로도 여는 공연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앞으로 남은 3개월 동안 모험을 두고 어떤 식의 전개가 펼쳐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평탄치 않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면 모험으로 극복해볼 수 있을 여지가 있을 것이다. 다만 사어(死語)처럼 굳은 21세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험이 아닌 활어(活魚)처럼 전 방위로 뛰어다니는 모험일 때 가능한 일이다.*
사진출처 -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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