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두산아트랩_디지털 네이션
일시 : 2016.03.03 ~ 2016.03.05
장소 : 스페이스111
연출/미술 : 정동욱
드라마터그 : 노효경
음악 : 정진욱
영상 : 김민수
제작 : 두산아트센터
*본 공연은 360°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 유투브를 통해 생중계됩니다.
얼굴 노출을 원하지 않는 분들은 사전에 나눠 드리는 가면을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유튜브 360° 생중계 시청 안내 안드로이드 앱 sphereplay / iOS 앱 homido player
앱 설치 후, 생중계 URL 입력 (매일 공연 2시간 전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내 공지)
3/4(금) 생중계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kSyraq_-Jxk
극장으로 들어서자 연출가 정동욱이 내 손에 들린 들고 있는 프로그램 위에 ‘디지털 이주민’ 도장을 찍었다. 이주민은 극장 안을 좀 더 돌아가야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구조이다.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 구분이라면 구분이고, 차별이라면 차별이다.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태어나면서부터 사용함으로써 디지털적인 습성과 사고를 지닌 세대로,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 1990년대 휴대전화ㆍ인터넷 확산에 따른 디지털혁명이 탄생시킨 신인류를 지칭한다. 미국의 교육전문가 마크 프렌스키가 200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과거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젊은 세대를 뜻하며, 디지털키즈(kids)ㆍ키보드세대ㆍ밀레니얼(millennial)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아무리 노력해도 원주민의 억양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주민들처럼 아날로그적 취향이 배어 있는 1980년대 이전 출생한 30대 이상의 기성세대를 '디지털이주민(digital immigrant)'이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디지털원주민 [digital native]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마크 씨 논문에 근거해 이주민과 원주민 구분을 관객 나이에 따라 했다고 연출이 밝혔다. 관객과 대화 중에 아주머니 한 분이 나이에 따라 이주민으로 구분하는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휴대전화나 인터넷 보급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1980년생으로 가름은 의미가 없다. 디지털 관련 제품의 소비의 중요 타깃이 30~40대니 아주머니 말도 일리가 있다. 그리고 15년 전, 새 밀레니엄의 열기 식지 않았던 2001년 논문이 기준이라면 개념을 따올 수 있지만 구분 정의는 달라질 수도 있다. (2001년이면 요즘‘보니하니’로 초딩들의 여신이라 불리는 연예인 이수민 양이 태어난 해다.)
두산아트랩은 지원분야나 체계가 다르지만, 국공립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은 세금으로 운영하는바 지키거나 보존해야 한다는 개념이 바탕에 있다.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둔 무대예술은 여러모로 아날로그하다. 10분 설명, 15분 카드 게임이 주 내용이고 관객과 대화를 한 <디지털 네이션>을 보고 난 후에 든 감상이자 궁금증은 극장, 카드게임, 가면, 게임 참여 등 매우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구성을 (일부러) 하고 (역으로) 디지털에 대한 디지털 개념을 설명(하려는)한다는 점이다.
디지털에 대한 기본 개념을 카드 게임으로 녹여 소통/소외, 투시/감시, 몰입/중독, 정의의사도/키보드워리어, 시공간초월/궤도이탈, 상징/모호 외에 초기화, 개인정보유출, 빅데이터 등 양날의 검이자 심각한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임 방식은 좋지만 초등학생 수준에 맞춘 놀이 방식-남녀노소 참여할 수 있으므로 좋은 게임-이 디지털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거나,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어떤 시너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극장은 특정 인원의 특정 관심을 가진 관객을 대상으로, 자리 이동이나 화장실을 가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는 매우 강제성을 띤 일종의 자발적 억압 공간이므로 디지털 공간, 예컨대 작품 안에서 유투브로 생중계를 하는 공간과는 정반대의 세상인 셈이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중계라니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가면을 준비했을 것이나, 정작 생중계 정보는 관객이 아니면 알 수 없다. 게임에 참여하거나 게임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사이, 얼굴이 가렸으니 나이에 따른 이주민, 원주민 구분은 더 의미가 없어졌다.
애써 관객을 구분해 게임을 통해 소통이 일어나야 하나, 게임에 참여한 4명(1명은 주최 측) 그룹 외에 게임에 참여한 그룹들 사이, 그룹을 오가는 방청객 사이 어중간하게 뭉개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소통이 그리 쉽게 될 수 있다면 정치인들이 그리 열불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 그룹 주변에서 떨어져 방청객 입장에서 눈앞의 상황을 무대 막이나 휴대폰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울 수도 있다만, 거기까지다.
사실 속내로는 카드 게임 와중에 누군가 버럭 화를 내면서 돌발행동을 한다거나, 그의 돌발행동으로 중계 자체가 멈추면서 극장이 암흑 공간에 빠진다거나, 휴대폰 중계를 누군가 해킹을 해 IS나 북한추종 방송을 내보낸다거나 하는 극적 상황이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극장 문을 열어놓고 로비에 따로 공간을 마련해 이원 중계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풀었으면 좀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을 카드가 시중에 파는 제품인가 싶을 정도였다. 기호를 활용한 세대 별 특성을 잘 포착한 이모티콘을 비롯해 이주민, 원주민 도장도 꽤 정교하고 세심하다. 여러모로 공을 많이 들이고 준비한 무대라고 생각한다. 알기로 앞서 5월에 국립극장에서 관람료를 받는 정식 공연으로 초연을 올린 적이 있다. 다시 실험을 택했을 때에는 혹은 기회가 닿아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여러 통로를 통해 많은 얘기를 듣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주민과 원주민 구분보다 우선 ‘소통’이 필요한 작품이다.
정리하자면 21세기 대한민국 현실 혹은 봉건 이슬람국가를 기치로 내건 IS가 유투브로 홍보를 하는 시대에 디지털네이션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고, 원주민과 이주민의 구분 역시 관객을 충분히 납득을 시키지 못한다면 이 작품이 극장으로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는 데에 힘들 수 수밖에 없고, 작품 자체로도 흥미로운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무대의 기본 형태인 프로시니엄 무대가 떠오른다. 내 방과 내 손에 극장이 있는데, 사람들은 진짜 극장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연출가의 글에 실린 문장이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 연연하지 말고, 유투브 중계를 통해 전 세계인이 어디에서나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발전하면 좋겠다 싶지만, 연출가가 극장을 선택한다면 관객들이 무엇을 기대할지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했으면 한다.*
사진출처 - 두산아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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