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란이모
기간 : 22013/09/06 ~ 2013/09/15
장소 : 예술공간 서울
출연 : 모란 역-윤영민, 서정 역-이지해, 미소 역-김나미, 성수 역-백성철, 형주 역- 하준호, 은수 역-최희원
희곡 : 이유진
연출 : 이종성
제작 : 극단 이진 , 극단 주변인들
사전 정보를 알지 못하고 극장을 찾았다.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홍보마케팅에 투자하는 영화와 뮤지컬과 다르게 대부분의 연극은 그럴 수가 없다. 아무려나 공연을 올리기 위한 극장 지원을 받기도 힘든 판이니 그러하다. 홍보를 맘껏 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모란이모>는 연출, 작가도 그렇고, 극단도 생소하다. 내가 극단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극단 이진, 주변인들 필모그래피를 보니 만난 적이 없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서 원석과 같은 작품을 보고 연극을 좋아하게 된 주제에, 그럼에도 난 여전히 입맛에 맞는 정보를 찾는지 모르겠다. 나름 좋은 극단 정도는 알만큼 안다는 식의 자만이다.
시선을 잡아 발길을 이끈 이유는 극장‘예술공간 서울’이었다. 얼마 전까지 극단 마방진이 전용 극장으로 썼고, 이후 서울연극협회가 맡아 운영하는 곳이다. 극장이 생긴 이유를 두고, ‘오락물이 아닌 진득한 작품을 선택’한다는 취지나 ‘신진 예술가들의 재능을 발견하길 기대’한다는 목적도 맘에 들었다.
두어 주전 쯤 이곳에서 앞서 예시로 든 원석이라고 표현한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신작 <성북동 갈매기>를 봤다. 4년 전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리고 같이 공연을 봤던 동행인의 불만과 소수의 관객에도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김현탁의 햄릿>와 첫 만남, 연극을 보는 시선을 일깨워진 그때 우연을 생각하면 기대할 만한 우연을 믿고 싶었다.
<모란이모> 배우 가운데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고2 미소 역 김나미 배우는 독특한 발성과 개성 있는 연기로 후배가 좋아한다. 주인공 모란 역 윤영민 배우는 주연답게 고뇌하는 예술가이자 노처녀 연기에 능숙하다. 미소의 엄마이자 모란의 언니 서정 역의 이지해 배우는,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생김새나 풍기는 이미지와 다르게 중년 역할을 주로 맡는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지해 배우는 윤영민 배우와 동갑-프로필을 보면 이지해 배우가 한 달 어리다-이고, 동안이라 언니 역보다는 모란 역을 맡기거나 두 배우가 두 역을 교차하면서 주조연을 고루 맡아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 대사 가운데, 모란의 푸념 가운데 가슴에 관한 대사가 잠깐 나오는데, 이지해 배우가 글래머라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중성적이고 도도한 역할에 윤영민 배우가 어울린다고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미지도 그렇지만 이지해 배우는 연기하는 동안 여자 둘이 있는 방이라는 설정에서 관객 시선을 의식해 앉을 때마다 치마 앞섶을 내리고 가리기 바빴다.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의상을 바꾸던지, 연출이 조율을 해야 한다. 백성수역 백성철은 허무에 빠진 돈 많은 갑부 혹은 변태 연기가 몸에 익지 않았고, 배우 연기에 앞서 역할 자체가 극에 필요한 지 생각해볼 부분이다. 형주 역 하준호나 은수 역 최희원은 튀는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 역할에 잘 어울린다.
지엽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고, 전개가 다소 어색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 아래 갈등의 한 부분으로 중년에 가까운 예술가로 모란을 두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있는 소재이다. 작품과 처녀성을 같이 팔려고 나서는 모란의 사회 적응기는 납득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점차 보태는 식으로 끌고 가니 점차 내용이 지루하고, 인물 사이 연계성을 잃고 점차 독백극이 되고 만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으나 에피소드를 다 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연출이 이 역할을 하거나 누구든 객관적 시각을 가진 드라마투르그를 두고 조율했어야 했다.
아무려나 작품은 뭐든 ‘돈’으로 환산하는 시대에 대한 풍자극이다. ‘모란 이모’라는 왠지 푸근한 제목은 반어법으로 쓰였다. 모란은 처녀성을 파는 대신 언니로부터 독립해 자발적인 삶을 찾아 떠나지만 그 역정을 쉽지 않을 테다. 극 말미 고2 미소가 말하는 자기계발서쯤 나오는 세상사는 법칙이 더 유효하게 들리는 세상이다.
결론을 보면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뀐 듯한데, 생각해보면 모란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 모든 어른이 미소와 동일한 입장이다. 암묵적으로 모란의 역할을 하는 극단이 있기 때문에 극중 어른들과 다르지 않은 관객들이 생각할 여지,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과 관객 사이, 앞으로 기성세대가 될 똑똑한 미소가 희망으로 선택하는 변호사 혹은 검사가 세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정도로 성숙한 사회 분위기가 된다면, 미소가 결국 모란 이모의 삶을 동의하지 못해도 서서히 이해하듯이 각박한 세상에서 연극을 비롯한 예술이 더 필요하다는 데에는 다들 동의를 할 것이다. <모란이모>는 아무려나 '무엇을'보다는 '어떻게'를 풀어내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소의 대사처럼 작품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다시 다듬어보길 바란다.
애초 극중 모란이모가 바라는 예술가로 언니집에서 독립해 살 정도의 성공은 어쩌면 언니를 비롯한 모두의 지향성과 교집합이 제법 큰 편이다. 모란의 삶을 함부로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작품 속에서 다뤄진 방식은 그렇다. 다시 말해 한 몸에 머리 두 개가 싸우는 식이 되면서 극이 좀 싱거워진 게 아닌가 싶다.*
사진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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