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오네스코 탄생 100주년 기념 페스티발’ 이후 2010년 '장주네 탄생 100주년 기념 페스티발'에 이어 2011년 '사무엘베케트 작가전'으로 현대극 페스티벌이 3회를 개최했습니다. 이후 잠잠했는데요. 4회째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하지만 위원회 페이스북을 보면 올해 9월에 개최 예정이었다는 공지가 보이나, 정작 공연 소식은 들리지 않네요. 당장은 개최가 어렵지 않나 조심스럽게 짐작합니다.
작은 극단과 무용단이 함께 소극장(대극장 공연도 있었지만) 위주의 공연을 했던 기획이 인상이 남는데요. 나라에서 운영하는 중극장마다 자체 제작 공연이 늘면서 예산 배정이 쉽지 않고, 갈수록 소극장 공연이 외면을 받는 현실이라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극단 TNT를 비롯해 좀 더 도발적이면서, 쉬이 보지 못했던 공연이 올라왔던 기억이 납니다. 8월 말인데요. 빠른 시일 내에 4회 현대극페스티벌이 열리길, 기대하겠습니다. [2013.08.30]
제목 : 2010 현대극페스티벌 <장 주네 탄생 100주년 기념> 빠뺑자매는 왜?(원제 : My Sister in This House)
기간 : 2013/07/19 ~ 2013/09/08
장소 : 우석래퍼토리극장
출연 : 정연숙, 윤미경, 공승아, 김주경, 김용태, 정상근, 김종석, 이전현, 조윤경
원작 : 웬디 케쓸먼
번역/연출 : 이지훈
제작 : 극단TNT
주최 : 현대극페스티벌위원회, (사)한국현대무용협회
장 주네 탄생 100주년 기념 2010현대극 페스티발이 한창이다. 9곳 연극단과 9곳 무용단이 이번 페스티발에 참여한다. 장 주네는, 작년에 탄생 100주년 기념을 맞이해 페스티발이 열렸던 이오네스코와 더불어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이다. <하녀들>(극단 푸른달의 하녀들 리뷰 극단 푸른달의 [하녀들] 지독한, 그래서 꼭 봐야하는 http://blog.daum.net/gruru/65 극단 성북동비둘기 하녀들 리뷰 [하녀들Les Bonnes - apply to a play]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망치를 들고 http://blog.daum.net/gruru/1933 는 장 주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이 품고 있는 함의란 대단하다고 할 밖에 없다. 단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하나 각자가 품은 인간상이란 마치 인간사 이면의 삼위일체처럼 사회의 어두움 혹은 각자 내면의 심연을 통틀어 대표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세상의 반골이었던 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1947년 교도소에서 집필한 100여 쪽짜리 얇은 이 작품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뜨거운 이슈를 부르는 작품이다. 이미 유명 극단에서 수 없이 공연되었고, 이번 페스티발에서도 극단 1곳과 무용단 2곳이 같은 작품을 두고 참여한다. 또 페스티발이 아니어도 종종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극단 TNT의 <빠뺑 자매는 왜?>는 장 주네를 비롯해 당시 철학자, 문학가 등 수많은 이들이 주목한 1933년에 벌어진 6~7년 간 잘 지내던 주인 모녀를 하녀로 있던 자매가 잔인하게 살해하고 실제 사건을, 장 주네라는 거대한 장치를 거르기 전의 본질에 보다 근접 접근을 시도한 미국 여성작가 웬디 케쓸먼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올라간 우석레퍼토리 극장은 일반 건물을 극장으로 변형한 소극장으로 무대 높이나 넓이에서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다. 대자본을 투자한 대중적인 작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대극장에서 실제 크기의 집 구조 내 구조가 주인공의 심리를 잘 드러냈던 <가을 소나타>가 떠오르다보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 작품도 거의 2인극에 가깝다.)
<빠뺑 자매는 왜?>는 작은 소극장을 나름 좌우로 나누고 최대한 분할하여 자매만의 방, 실제로는 음습하고 춥고 어두운 다락방을 묘사한다. 이 방으로 가는 길은 무대 내에서 최대한 돌아가는 구조로 형성하여 심리적 방어기제의 역할을 한다. 무대가 좁다보니 상대적으로 화려한 나머지 공간, 실제로는 다락방을 제외한 나머지 거대한 공간이었을 저택과 구분을 하기 위해, 자매들이 가는 길을 따라 집중 조명을 하나씩 밝히고 끄며 마치 횃불을 들고 동굴을 탐험하는 듯한 구조를 연상하도록 한다.
하지만 하녀에게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마담의 태도로 보아, 그런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줄 무대, 즉 다락방 이외의 공간이 모두 마담의 제3의 눈처럼 자매의 억압 기제를 표현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소극장 특성상 그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영상을 투영하기 위한 스크린이 등장한다. 하지만 관객에게 보충 설명을 위한 장치로 쓰이다 보니, 극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다소 투박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영사기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의도하지 않게 새로운 의미로 작용한다! 왜곡된 거울 이미지이다.
진정한 샴쌍둥이의 영혼, 영구적 자폐세계, 서로를 비추는 거울 이미지. 이것이 빠뺑 자매의 세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저지른 살인행위는 어쩌면 하나가 된 이들을 다시 둘로 떼어내는 잔혹한 분리 수술일 수도 있습니다. 자매가 살해한 사람은 그들의 착취자와 어머니였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샴쌍둥이로서만 비쳐볼 수 있었던 거울을 미친 듯이 파괴해 버린 행위였습니다. 빠뺑 자매는 바로 그들 서로를 살해 했다고 볼 수 있지요. -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라깡
이 작품은 실제 사건 당시를 조명하는 의미가 있겠으나 라깡의 해석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여성작가인 케시는 계급적 대립과 더불어 성적 대립과 사회적 성 구분인 젠더적 대립 구조를 세웠다. 6살 차이가 나는 자매는 처음에는 모녀 사이로, 이후에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서로 원하는 모습을 보는 장면인데, 이는 왜곡된 거울 이미지이다. 서로 보고 싶은 모습만 투사하는 모습에서 차츰 ‘영구적 자폐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팽팽한 대립각에서 자폐세계가 깨지는 순간이 비극이 벌어진 계기라고 보여준다.
그러니까 극에서 직접 드러난 계기인 동생 레아 빠뺑이 마담의 옷을 다림질하다가 태우는 장면은 불꽃이 일어난 사소한 계기였을 뿐, 이미 극장 안에는 유증기로 가득 찬 상태였다는 것이다.
얌전하고 일을 잘했으며 복종적이었던 빠뺑 자매는, 이른바 계급적 갈등을 깨나갈 만한 민중의식이라든가, 사회의식을 깨우칠 만한 계기가 (적어도 연극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자매는 극중에서는 일요일마다 교회를 찾는 일과는 유일한 즐거움이나 다름없다. 그러다보니 독실한 신자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안에 살인 동기가 불분명한 해석 불가의 잔인한 난도질을 벌어진 이 사건은 그래서 무의식의 발로라는 점에서 더욱 두려운 사건이다.
물론 작품 중간중간 사진사와의 대화나 빠뺑 자매의 불우한 어린 시절, 무정한 어머니와의 갈등이 몇 가지 장치로 등장하지만, 이 작품이 주목하는 건 고갈될 수밖에 없는 자매 사이의 내적 붕괴이다. 왜곡된 거울은 실제로 동성애 관계이든 아니든, 서로를 보고 싶은 부분에만 주목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실체가 아닌 허위의 모습을 보여주는 스크린인 것이다. 극단 TNT의 작품은 제작 여건의 부조리성(?)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지만, 연극이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지, 세상의 진실을 가리는 스크린, 허위와 가상을 뒤집어쓴 욕망의 사탕발림이어서는 안 된다는 부조리극의 본질을 드러낸다.
극단TNT는 경남 창원, 마산, 진해 등 지역을 활동 무대로 삼는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실정을 생각하면 이들의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극이란 영화, 드라마와 달리 시대를 온전히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익히 시대가 심히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 꺾이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놀라운 활약을 기대한다.*
사진출처 - 극단T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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