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반검열] 검열의 시대, 집요하게 파고드는 모니터링 보고서

구보씨 2017. 4. 8. 23:43

제목 : 2017 이반검열

일시 : 2017/04/06 ~ 2017/04/16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구성/연출 : 이연주

출연 : 조아라, 우범진, 엄태준, 박수진, 양정윤, 이세영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주관 : 서울문화재단,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이반(二般 또는 異般)은 ‘일반(一般)’에 대한 상대적 명칭으로 주로 동성애자를 이르는 말로 쓰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불온한 대상으로 낙인 찍혀 검열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이연주 연출은 지난 해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에서 <이반검열>을 선보였다. 혜화동 뒤편의 작은 극장에서 짧은 나흘의 시간 동안 성소수자, 세월호 생존학생 및 형제자매들의 말을 통해 사회적 기준에 길들여진 개인이 소수자에게 가하는 차별과 폭력을 그려낸 이 작품은, 일상을 파고드는 검열, 더 나아가 검열을 조장하는 국가에 문제를 제기했다.

 

남산예술센터는 소극장에 올린 4일짜리 2016년 8월 초연작을 다음 해인 올해 4월 2017 남산 무대로 옮겼다. 기간이 짧긴 해도 화제를 모은 작품이라고 하나, 빠른 선택과 결정과 기획이 아니라면 7개월 만에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획에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지만 박근혜 정권의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4월이 아닌 정권교체가 거의 확실한 채 30일 밖에 남지 않은 5월 9일 대선 이후였다면 어땠을까. 긴장감이나 몰입도, 화제성에서 지금 이 시점보다 원하는 만큼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

 

남산예술센터 역시 연간 계획에 맞춘 올해 공연 리스트가 있지만, ‘이반검열’의 경우 4월에 올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분명하다. 단적인 예로 차별, 검열의 사례로 성소수자 정책에 관한 대선후보들의 입장을 편집해 영상으로 띄운다.

 



대선주자 문재인이 여성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한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는, 문재인이 이틀 전 보수기독교계가 모인 자리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으며 차별금지법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발언한 것을 비판하며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받으로 나눌수 있습니까”라고 외쳤다. 그에 대해 문재인은 침묵했고, (…) 또 한 번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현재진행중인 이반검열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2017 이반검열, 제작과정’(조연출 현예솔) 중에서

 

다른 대선 후보들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만, 영상 없이 책상만 놓인 무대 위에 오디오로 들리는 성소주자의 절박한 외침은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구호에 정권 교체에만 관심을 쏟는 대중(관객)에게 적폐를 청산한 위에 무엇을 쌓을 것인가, 를 두고 새로운 논제를 던진다.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참사 7시간의 공백을 대통령 파면 사유로 삼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탁핵소추 사유에 포함되지 못했고, 그와 관련 있는 문체부 장·차관 임명, 해임, 전보 등의 직업공무원제도 또한 파면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반검열, 민주공화국을 향해 던지는 숙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동석) 중에서


기어코 세월호가 올라왔다. 왜 이리 시간을 끌었나 싶어 누구라도 허탈했다. ‘이반검열’은 2016년 초연 기준-2017버전을 준비할 당시만 해도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므로-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형제자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우연이라고 해도 때를 잘 맞췄다. 녹취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현실을 연극으로 올린 무대를 보면서, 극장 밖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를 본다. 우리는 극장에서 과거이되 과거가 아닌 현실의 목소리를 듣고, 뉴스를 통해 인양을 통해 과거를 되짚어 올라가야할 과정이 남은 현실의 과제를 본다.

 



작품은 세월호에 국한하지 않는다. 성소수자 의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한편으로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로 돌아가 ‘편견은 차별을 낳고, 폭력행위로 이어지며, 가작 극단적인 수위에 이르게 되면 집단학살(5.18)로 나타난다’(법학자 홍성수)는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이 작품이 시의적절하게 무대에 올랐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 쓰다, 문득 차별의 역사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달리할 뿐 일관되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고로 2018 혹은 2019 ‘이반검열’ 은 숫자를 바꿔가며 무대에 오를 이유가, 안타깝지만, 있을 것이다. 상상을 배제한 채 현실 그대로 대선주자들의 유세 코멘트를 재빠르게 삽입시킬 정도로, 생생한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연출의 의도를 이해한다. 하지만 배우가 6명 등장하나, 굳이 5명 혹은 7명이어도 상관없다고 하면 다듬을 필요가 있다. 작품 의도가 극장 규모에 맞춘 게 아닌, 소극장이든 강의실이든 교실이든 초연처럼 4명이어도 큰 지장이 없어도 어디든 올릴 수 있는 게릴라와 같은 낭독극 형식이라 중극장 규모인 남산예술센터 무대와 짝 달라붙지는 않는다.


소극장 형식을 크게 바꾸지 않고 가져온 방식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일 수 있다. 성소수자 인권 관련해 사회가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 바  문제 제기 정도만 해도 널리 알리려는 의도가 유효하나, 세월호 참사는 인양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온 국민의 관심사다. 세월호 생존 학생 혹은 형제 자매의 인터뷰 역시 책상과 의자를 놓고 돌아가며 한 마디씩 나누는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관련 내용은 익히 알려지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연극 무대에서 환기를 했던 바이다. 예를 들면 극단 놀땅의 '오이디푸스 - 알려고 하는 자'(2016.11)는 단원고 추모 교실 이전을 두고 학부모들 사이 절절한 대치 상황을 절묘하게 다룬 수작이었다. 




이연주 연출의 장점은 역시 자신의 신념을 분명히 세워 확고하게 밀어부치는 힘에 있다. 가녀리고 차분해 보이는 인상-이런 외모평가 역시 편견 혹은 차별에 해당할 것이다-과 다르게, 절제하거나 정교하게 다듬기보다 전달하려는 목적을 위해 다소 거칠더라도 에두르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연주 연출이 각색하고 연출한 '삼풍백화점'에서 '기억하는 자가 바로 당사자다'라고 대사를 통해 선언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올해 초 극단 이름이기도 한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화벨이 울린다] 낯선 전화를 받지 않는 시대 http://blog.daum.net/gruru/2004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고 가치의 경중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이슈를 양산하면서 불통을 당연히 여기는 시대이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자 어느새 가해자들이 피해자로 둔갑한다. 태극기 뿐 아니라 운동권이 저항의 상징처럼 쓴 '혹한도 막지 못하는 봄', '어둠을 여는 새벽', '거짓이 막지 못하는 진실' 등 구호를 누구랄 것없이 특히 며칠 전까지 지독한 가해자였던 이들이 갖다붙인다. 그래서 이연주는 날것 그대로, 현실 그대로 구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집요하다. 


마지막으로 연극 '혈우'에서의리로 똘똘 뭉친 상남자, 무신 송길유 역을 맡았던 우범진 배우가 게이 역할을 맡았다. 무협 사극에서  칼부림을 벌이던 그의 넓은 연기 폭이 놀랍다. 그 외에도 좋은 젊은 배우들이 함께 했다.*


사진출처 - 남산예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