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면 어김없이 '피'를 보자고 죽자고 찾아오는 건 모기만은 아니지요. 예. 공포물이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 연극까지 장르도 다양하지요. 오늘 열대야를 이길 방법으로 추천하는 장르는 공포 연극입니다. 무대를 비롯해 제약이 많은 연극이 영화만큼 무서울 수 있을까요? 우선은 4D로 엄청나게 썰어대는 슬러시, 아니 슬래시 영화를 보고 튀고, 튀어나오고 흔들어대는 통에 혼이 나갔다 왔다는 얘기를 듣고 보면 아무래도 연극이 공포물로는 약간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슬러시 한 잔도 한 여름 더위를 이기는데 참 좋지요.)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혹은 내내 자느라 늦게까지 혼자 학교에 남았다가 깨서 의도치 않게 학교를 돌아다녀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지요. 익숙한 공간이 낯선 공간으로 변했을 때, 공포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걸 말이지요. 전 대학에서 혼자 작업한답시고, 과에 남아 자다가 혹은 친구랑 술마시다가 혼자 남아 학교를 돌아다녀본 경험이 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교정은 정말이지 딱 영화 <클로버 필드> 배경이지 싶습니다.
극장이 종종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귀신이 장기임대계약을 하고 주구장창 눌러앉아 산다는 얘기를 들은 참에 불 꺼진 극장, 특히 통로가 하나뿐인 지하에 있는 극장을 가보시면 기분이 정말 삼삼합니다. 그 뒤에 소품실에 가보면 특히 그렇지요. 전 한밤중에 희번덕한 변기가 왜 이렇게 무섭던지, 꼭 볼 일을 보는 귀신을 본 양, 매우 당황해서 황급하게 자리를 빠져나온 적이 있습니다.
객석은 또 어떤가요. 왠지 F열 14번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는 듯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암만 그래도 나이 들고 귀신보다 더 무서운 세상사에 쫓겨 이리뒹굴 저리뒹굴 살다보면 귀신 따위, 아니 귀신 얘기 따위는 좀 우습습니다. 우연히 공포연극을 봤습니다. 위에 포스팅한 <괴담>을 본 건 아니고, <우먼인블랙>이라는 작품인데요. 관객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정말 으스스하더란 말이죠. 사실 어느 정도 짐작할만한 내용이라 감안하는 범위 안에 있다 싶었는데도 말입니다.
뻔히 인형이라는 걸 아는데도 비명이 절로 터져나왔습니다. 스크린 가상이 아니라, 4D해봐야 그게 그거지만 소극장 안이라 공포가 바로 피부로 와닿았다고나 할까요. 짜릿짜릿햇습니다. 그 뒤로 공포연극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되겠구나 싶더란 말이죠. 이 무서운 연극을 매번 해내는 배우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연습 때는 관객도 없을텐데, 무섭지도 않은지 기회가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괴담>은 '목,금 오후 10시 10분 / 토요일 오후 9시 30분'에 시작한답니다. 말 그대로 열대야와 한판 제대로 승부를 해보겠다는 의미겠지요. 비명과 비명 사이 연극이 끝나고 무사히 살아나오면 무더위가 덜한 자정 쯤이 되겠지요? 그러다가 막차가 끊어질 걸 아는 순간, 정말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 연애 초보 시절에는 연인들에게 이때가 좋은 기회이기도 하겠습니다. 미필적고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공포를 이기는 건 역시 혼자가 아닌 여럿일 때이겠지요. 연인끼리 단둘이면 더욱 좋겠구요.
두루 열대야도 이기고, 멋진 추억도 만들고, 그러다가 애가 생기면 뭐, 허니문 베이비는 아니라도 스릴러 베이비라 나름 강한 아이가 태어나지 않겠습니까? 공포는 흥분과도 연결되는 교감신경을 자극해기 마련입니다. 암튼 공포연극이 제철인 요즘, 한 번쯤 꼭 보시길 바랍니다. 귀신도 살리고 연극인도 살리는 좋은 추억이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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