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극단 작은신화 25주년 기념공연 - 황구도(2011)
일시 : 2011.07.15 ~ 2011.08.28
장소 : 대학로문화공간 필링2관
출연 : 오현우, 박상훈, 전유경, 안성헌, 최지훈, 강일, 서광일, 이은정, 박삼녕, 이지혜, 박지은, 방진영
희곡 : 조광화
연출 : 최용훈
제작 : 극단 작은신화, (주)이다 엔터테인먼트
희곡
개들의 사랑이다. 18년이 흘렀으나 작가 조광화가 스스로 20대 풋내가 나는 작품이라 부끄러웠다고 했다. 다시 손본 대본에 코엘료나 에밀리 브론테가 쓴 소설 일부를 그대로 삽입한 방식이 촌스럽다면 촌스러운 방식 그대로이다. 치기 어린 시절, 연애편지를 쓸 때 그랬듯이 말이다. 절절한 사랑 얘기가 모두 내 얘기로만 읽히고 들리는 경험이 (다행히) 나도 있었다.
늙은 조광화, 나름 성공한 작가/연출가로 성장한 조광화는 당시 질곡의 구렁텅이를 머리로는 알고 있되, 그 애절한 심정은 휘발해서 날아간 지 오래일 게다. 뭐, 다시 알고 싶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길을 걷다가, 아마 대로변이 아닌 자신의 꼬인 인생처럼 으슥한 작은 골목이라도 꺾어 들었다가 개들의 적나라한 사랑이라도 봤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이 맘에 든 건 그 낮은 데로 향한 시선이다. 의도적인 시선처리가 아니라 자연히 떨어진 고개, 구부러진 어깨, 풀리는 다리, 너덜거리는 팔이 향하는 그 곳에서 꼬질꼬질한 개들의 섹스를 봤나 모르겠다. 똥개로 태어나 보신탕 감이나 될 똥개를 낳을지 몰라도 사랑은 하고 마는 끈덕진 열기에 감탄사라도 흘렀을지 말이다.
연출
극단 작은 25주년 기념 공연 중에 신작 <매기의 추억>만 못 봤다. <돐날>, <가정식백반 맛있게 먹는 법>, <황구도>를 봤다. 앞선 두 편은 극단의 대표작이라고 보면 <황구도>가 새삼 꼽힌 이유가 뭘까. 연출 최용훈은 “‘우리연극만들기’라는 극단 프로그램에서 가장 먼저 인큐베이팅된 작품”이라는 데에 의미를 두었다. 극단 작은신화가 한국 연극에 미친 좋은 영향은, 혹은 그들의 존재 가치는 창작 희곡을 발굴하는 ‘우리연극만들기’를 꼽을 수 있다. 매해 프로그램을 진행한 건 아니나, 공공 지원이 아닌 사설 극단에서 2009년 8회까지 수십 편의 희곡을 발굴한 공로는 역시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올해 9회를 맞아 연말 공연 예정이다.
다작多作을 호로 붙여도 좋을 최용훈 연출의 힘은 다른 극단 대표들의 축하 글에서 보듯이 사람들과 연계를 맺는 능력일 것이다. 특출해야 할 것이나, 혼자 잘 났다고 올릴 수 있는 게 연극이 아니니, 수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는 인맥이야말로 연극의 힘이다. 그 오가는 과정이나 틀어지거나 욕하거나 빗대는 관계가 없지 않겠으나, 그야 세상살이가 그렇기도 하려니와, 그 과정까지 연극을 올리는 게 연출인 그들(불특정 + 대명사)의 속성이 아닐까.
다행이도 그리 덥지 않은 ‘말복’을 무사히 넘긴 황구도가 끝난 직후(8/28), 곧 이어(9/9) <햄릿 업데이트 - 두 번째> 공연을 올린다. ‘햄릿’을 공통 과제로 두고 6개 극단이 3팀씩 나눠 올리는 6인6색인데, 재밌는 건 <황구도> 축하 글을 남긴 연출가들이 그들이라는 점이다. 끈끈하달지, 왠지 글을 쓰라고 닦달하는 최용훈 연출의 얼굴이 보이는 듯도 하고 그렇다.
배우
작은 신화 25주년 기념 공연들을 보면서 느낀 소회는 배우의 힘이다. 나이든 배우들이 초연 당시 올렸던 감흥으로 다시 뭉친 공연은 참 보기 좋았다. 주름살을 지울 수 없으나 연기는 참 일품이다. 이제는 끝나버린 <돐날> 초연 버전 관람은 다시 생각해도 행운이다. 지금 작은 신화 단원이 90명이 넘는다는데, 그 사이 수많은 이들이 때로 좌절을 하면서 떠났을 것이나 극단이 멈추지 않고 달리니 좋은 배우들이 늘 가뭄에 찌든 연극계에 좋은 재목으로 자라지 싶다. 또 떠난 이들에게도 이번 기념 공연은 젊은 날 추억을 되살리는 족족, 아쉬움이 남을 지라도 뭔 일을 하건 힘을 북돋을 격려가 되어줄 것이다.
<황구도>는 작은 신화로 대표되는 한국 연극의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 자리로 의미가 있다. 5년 차 안쪽 배우들로 구성한 더블캐스팅 가운데 난 박상훈, 전유경이 주인공을 맡고, 안성헌이 거칠이를 맡고, 강일과 방진영이 인간 역을 맡은 상구도 팀 공연으로 봤다. 이전 공연에서 눈에 띄었던 배우들이라 개 가죽, 개 옷을 입고 우화를 진지하게 연기한다는 게 자칫 허무맹랑한 코미디가 될 만하지만 결을 놓치지 않고 잘 끌고 간다.
2011년 버전으로 보강한 늙은 떠돌이 개 로망과 터프의 완벽한 3일의 짧은 사랑과 이어진 로드킬Road kill은 코엘료의 감수성 넘치는 문장에도 역경을 이겨낸 사랑이라기보다는 안타깝고 비참하다. 벤츠와 노숙견의 대립 구도는 큰 틀에서 자본 대 생명, 산업 대 환경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코엘료 소설의 모티브와 틀을 따온 작품은 억압을 이겨내는 힘이 어디에 있을지 구구절절 얘기가 많겠으나, 로드킬을 사랑이 완성되는 역설로 풀어낸 대목은 각각의 몫으로 과하게 남겨뒀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 논문이 아니듯이 연극이 뉴스는 아니라고 한다면 동의를 하겠지만 말이다.
황구도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을 하성옥 무대 디자이너는 각종 아이콘으로 꾸몄고, 의상은 욕망을 모조리 몸 밖으로 투사한 듯 어릿광대처럼 보인다. 재밌는 점은 기호로 꾸민 인간 세상에서 정작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녀 역할을 한 두 배우의 개성은, 어릿광대로 분장한 배우들이 그렇듯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배경, 의상이 만화영화나 아동극 속성이 비슷해 이질적인 해석을 두고 흥미롭기도 했지만, 아이의 순수한 시선과 개의 시선을 똑같은 눈높이에서 봤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똥개 아담의 수난사와 마지막에 가서 결국 개 취급을 당하는 스피츠 캐시와 거칠이가 보여준 개 같은 인생사는 극단 작은 신화의 지난 25주년 세월을 보여주는 은유로도 읽힌다. 연극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은유로 풀어낸 작품은 대형기획 공연이라고 한들 결국 같은 처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눈이 먼 거칠이는 자본의 화려함에 현혹된 몇몇 제작사들의 풍토일지도, 본능에 따라 사랑을 배신(?)한 캐시의 태도 역시 돈에 끌려 옮겨 다니는 연극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사진출처 - 극단 작은신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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