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맥베스 : 2011 게릴라 해외연출가 기획전
기간 : 2011년 2월 8일 ~ 3월 6일
장소 : 게릴라극장
원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연출 : 알렉산더 젤딘
출연 : 김소희, 윤정섭, 김철영, 서승현, 황혜림, 이동준, 천석기, 노심동, 한채경, 엄지환, 지민규
제작 : 연희단거리패
연희단거리패
한국 연극 계보를 잇는 3세대 연출가 이윤택 특유의 ‘서사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연희단거리패는 단연 가장 활발한 행적을 보여주는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극단이다. 열악한 연극계에서 우직한 연희단거리패의 행보가 반갑지만 워낙 색깔이 강한 그들이 연극 흐름을 너무 주도하는 게 아닌가 싶은 노파심이 들기도 하다. 아무려나, 연희단거리패가 만든 작품은 늘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통에 관객 입장에서 그 뒤를 따라다니지 않을 길이 없다.
한편으로 작년 11월 식민지시대 변방연극사를 재조명한 <경성스타>나 지난 1월 제1회 코미디 페스티벌 출품작으로 오영진의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는 각각 창작과 재현의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서도 정통 방식의 무대 재현으로 고루하고 지루한 친일 연극으로 치부된 근대 연극사와 시대화합을 끌어낸다. 원작과 다른 재해석으로 해외 무대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햄릿>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이다. 연희단거리패의 작품을 어느 한 특징으로 묶을 수 없으니, 단지 그 넓은 파장과 변신을 즐길 뿐이다.
다만 <수업>, <하녀> 등 등장인물을 소수로 제한해 배우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공연이 아닌 이상, <경성스타>, <이중생 각하> 등 500석 이상 중극장 규모 작품에서 극단 기량을 제대로 발휘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작년 2010 서울연극올림픽 초청작 <바보각시>는 427석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을 겨눈 탓도 있지만 100석 남짓한 게릴라극장 공연은 날개를 반쯤 접은 양 겹치는 동선에 답답하고 불안한 감을 받았다.
<맥베스>도 <바보각시>와 전체적으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제동이 잘 걸리지 않는 몰입에 능한 배우들에게 절제와 후회와 연민을 모르는 불같은 희곡 맥베스에서 뛰쳐나온 캐릭터를 덮어씌우니 무대를 한껏 늘린들 작품을 담기에 턱없이 좁아 보인다. 배경을 맥베스 저택 거실로 제한을 두면서 좁은 무대를 상쇄하는 듯하지만, 이 작품을 좀 더 넓은 무대에서 다시 올렸으면 하는 아쉬움과, 한편으로 기대가 남는다. (순도 높은 탐욕이 배양되는 공간인 이층 방을 넓은 무대 공중에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줄로 매단다면 거미줄 한 가운데 고치인 듯 작품 의도가 더 잘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게릴라 극장에서 보는 연희단거리패 공연의 즐거움은 연희단거리패의 가장 큰 장점인 배우진에 있다. 김소희, 이승헌 등 배우장을 맡은 노련한 배우들과 햄릿에 이어 맥베스를 도맡은 윤정섭, 2010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을 받은 배보람 등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끊어지기 직전까지 현을 당겨 조율한 악기처럼 팽팽하다.
게릴라극장이 대학로 연극 거리에서 떨어진 위치에 있는 데다, 홍보기획사를 통한다거나 자체 홍보를 과하게 하는 편이 아닌듯하지만, 객석 앞 마루까지 보조석을 늘리는 일이 종종 있다. 작은 극장 객석 규모를 감안해도 여타 소극장 공연에 비하면 연희단거리패 게릴라극장 공연은 늘 관객으로 북적이는 편이다. 객석을 둘러보니 연극 관련 학과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왔다.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 50% 할인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교수 등 전문가들 사이 입소문이 돈다는 의미일 게다. 유명 원작을 둔 작품이 아니어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햄릿>에 이어 연희단거리패의 우수 레퍼토리가 될지 모르는 <맥베스>라니, 더더욱 놓칠 수 없다.
맥베스들
연희단거리패의 <맥베스>가 올라가는 같은 시기, 대학로에는 또 한 편의 <맥베스>가 올랐다. 극단 코끼리만보의 <맥베스>다. 코끼리만보도 ‘2008 창작팩토리’ 우수연극 제작지원 부분 선정작이자 연극의 기본을 잘 보여준 작품 <그 샘에 고인 말> 제작 등 내공이 만만치 않은 극단이다. 또 며칠 전인 2월 6일까지 2010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출품작이면서 2010 동아연극제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아 앙코르 공연을 올린 극공작소 마방진의 <칼로막베스>가 대학로를 달궜다. 한 달 남짓 어느 한 작품 만만치 않은 <맥베스> 세 편이 연이어 올라가면서 같은 원작에서 나온 다른 결실을 비교하는 재미까지 더했다.
하이너 뮐러 각색, 슬로베니아 극단 미니 씨어터 <맥베스Macbeth After Shakespeare>나 극단 미추 <적도 아래의 맥베스> 등 2010서울연극올림픽 공식초청작 2편을 비롯해 작년 한 해 다양하게 변주한 맥베스가 무대에 올랐다. 그중 내가 본 작품만 해도 극단 죽죽 <맥베드>(2010.02), 극단 물리 <레이디 맥베스>(2010.06), 공연창작집단 뛰다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2010.10), 극단 초인 단체극 <궁극의 절정, 그 전율, 맥베스>(2010.06) 극단 초인 1인극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드라마, 맥베스>(2010.11) 등 5편에 이르니 올 2월까지 총 7편의 맥베스를 본 셈이다.
하나같이 정통극이 아닌 새롭게 각색하고 변용하고 차용한 작품들이다. 맥베스는 이른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짧고 극시 형태를 띠지만 시공간에 따라 재해석이 무궁무진하다. 맥베스는 틀에 박힌 영웅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의해 반영웅에 다다른 인물로 욕망이 극에 한계점에 달했다가 비참하게 추락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누구나 안에 품은 탐욕을 부화시키는 작품으로 내내 사랑을 받아왔지만, 시대에 따라 파시즘의 상징이자 대재앙을 몰고 온 히틀러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 두고 임이연 영남대 교수는 한국연극 2월호에서 “맥베스의 외적 행위와 내적 심리 중 어느 것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는 피에 젖은 파시스트가 되기도 하고 창백한 시인이 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극단 초인의 단체극과 일인극은 각각 군무로 표현한 민중의 시각으로 맥베스를 바라보거나, 단역배우의 내면에서 맥베스와의 조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양한 해석을 꾀한다.
집
연희단거리패 <맥베스>는 레이디 맥베스에 비중을 한껏 올렸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칼로막베스)가 아닌 거실은 아내가 주도하는 공간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공간이지만 던컨왕을 죽일 공간이라 맥베스에게는 더 큰 전쟁을 요구하는 곳이다. 더불어 그 공간을 지배하는 아내가 우군으로 나선 곳이다. 원작도 그렇지만 나약한 맥베스를 강하게 다그치는 건 아내의 몫이다.
검푸른 빛 조명이 떨어지는 무대에 이층방, 사각형 탁자, 장식장, 모니터 등 미니멀한 사각형으로 채운 공간은 따뜻함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TV는 아프리카 대초원 사자 사냥을 보여주면서 맥베스를 간략하게 요약한다. 사자 사냥이 암사자의 몫이라는 점은 거실에서 벌어지는 살인이 레이디 맥베스의 주도 아래 벌어진다는 암시일 수도 있다.
집은 가장 안전하고 안락한 믿을 만한 공간인 동시에 엄폐성이 주는 안락함은 곧 방심으로 이어지는 바,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살인이나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죽음의 공간이다. 한참 재밌게 TV를 보는 맥더프 아들과 한가로이 집안을 치우는 맥더프 부인을 몰살하는 장면은 집이 주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던 ‘뽀로로의 대모험’은 순간 자객들의 손속을 통해 맥베스의 잔인함을 극명하게 강조하는 이미지로 뒤바뀐다.
하지만 TV에서 보여주는 정보는 가상의 편집본일 뿐 실재가 아니다. 실재가 아니므로 주체인 나와 소통이 불가능하고, 또 너그러움이나 잔인함과 거리가 멀다. 그런 효과를 연출할 뿐이다. 연극 안에서 배우들(관객도 보지만)이 보는 화면은 곧 배우들 머리 위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관객들만 보는(본다는 설정인) 이층방 버티컬 화면으로 옮겨진다. 오이디푸스왕에 비해 신탁에 의한 휘둘림이 덜한 작품이나 맥베스는 세 마녀의 예언, 이 작품에서는 신도들의 예언에 따른다.
라틴어로 주문을 암송하며 등장하는 이들은 마녀에 비해 확실히 신의 대리인처럼 보인다. 신의 예언을 믿고 따랐으나 배신을 당하는, 혹은 말장난 비슷한 부추김에 욕망의 방아쇠를 당긴 맥베스는 하늘에 대고 울분을 토한다. 카메라는 위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신의 시선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조망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망할 수 있는 건 기술의 쓰임새 때문이다. 그럴싸한 효과만 살짝 낼뿐, 지금은 신과 더 이상 소통이 불가능한 단절의 시대이다.
TV에 전지전능한 역할을 내준 지 오래인 신은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인양, 혹은 표값을 치르고 앉은 관람객인양 방관자 역할로 치부한다. 사자사냥이 보여주는 약육강식의 처절함이 TV를 통해서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상황과 일치한다. 대신 “관객에게 보다 입체적인 연기를 즐기는 효과”를 제공한다는 취지에는 맞아떨어진다. 맥베스를 방치하고 리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카메라처럼 응시하는 시선은 맥베스의 잔인한 선택이 신과는 철저하게 무관한 내적 동기에 따른 비극이라고 본다. 세 마녀를 맥베스의 무의식이자 상상력의 소산으로 해석한 <셰익스피어 비극론> 저자 앤드류 브래들리의 주장과 일치한다.
장이 바뀔 때마다 분주히 옮기는 의자, 소파, 식탁에 비해 고정된 채로 무대 왼쪽을 차지한 3단 장식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이다. 선반 위에는 부엉이 박제가 있고 그 아래로 각 단마다 사슴 머리를 한 양주병, 콜드 권총, 뱀으로 담근 술이 있다. 전쟁과 사냥을 즐기는 맥베스의 취향을 드러내는 소품이자 각각 하늘과 땅과 땅 속까지 힘(권총)으로 ‘박제’해서 사유화하려는 권력욕을 드러낸다. 더불어 동시대에서 흔히 보는 소품이고 보면 현대인의 상징화된 폭력성을 꼬집는다. 박제 대신 흔히 트로피나 메달이 대신하지만 근저에 깔린 심리는 동일하다. 선반 위 극 내내 하늘거리는 작은 촛불은 양 날개를 펼치고 매섭게 노려보는 부엉이의 날갯짓에 당장이라도 꺼지기 직전이다. 대를 잇지 못하고 저주받은 맥베스 가문의 운명을 압축해서 보여주지만 부엉이를 그 앞에 끌어다 놓은 건, 역시 맥베스이다.
무대
인간의 운명으로 확장하는 대신 “사랑으로 파괴되어가는 연인”으로 압축한 연출의 해석도 흥미롭지만, 소극장의 한계에도 무대/의상 디자이너 사말 블랙이 꾸민 독창적인 무대 아이디어가 꽤나 돋보인다. 좁은 무대 탓도 있지만 객석 앞줄과 1m쯤 사이를 두고 앞에 서서, 많지 않은 좌석을 희생하면서까지 수평 조명을 달았다.
맥베스 윤정섭은 여기서 쏘는 빛을 받아 명암대비를 강하게 두고는 맥베스 특유의 고뇌를 담은 독백을 친다. 연기가 좀 과잉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도 그대로 연기로 밀고 나가서 품는다. 수평 조명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이 많은 작품을 보완하고, 격정이 극에 달해 식탁을 뒤엎고 난장판으로 변한 무대(영국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지만, 부부싸움 할 때마다 밥상을 뒤엎는 일이 다반사인 한국에서는 완벽하게 세팅한 식탁을 뒤엎는 장면이 의도했던 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품으로 쓰는 플라스틱 유리잔을 의도하지 않게 밟을 때마다 부셔지는 소리는 긴장을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맥베스 앞에 놓인 가시밭길을 상상하게 한다)를 피해 객석 코앞까지 나온 맥베스의 격정을 불어오는 거센 바람처럼 휘몰아치면서 끌어올린다.
관객과 마주보는 정면 벽에 매달아 붙인 밀폐형 사각형 이층방 앞면 전체에 드리운 버티컬은 살짝살짝 은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무대를 위에서 비추는 영상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겸한다. 소극장 벽에 계단이 달린 또 하나의 공간으로 이층 방은 게릴라 극장이 소극장이나 지하가 아닌 지상에 극장을 만들면서 무대 높이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아이디어이다. (게릴라 극장 객석은 좌우는 무난하지만 단 차이가 커서 앞뒤를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빼서 넋 놓고 봐도 되는 몇 안 되는 극장이다.)
하얀 방, 흰색 가운, 하얀 속옷 등 순결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살인죄를 부인하는 맥베스 부부의 거짓 결백을 뒷받침하지만 피가 튀거나 묻은 붉은 얼룩이 도드라지면서 대비 효과를 이룬다. 이층 방이 피로 얼룩진 손을 씻고 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는 공간으로 부부의 은밀한 탐욕을 욕정으로 풀어내는 공간이자 증거가 은폐되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두 라인을 따로 달린 조명은 종종 배우들 머리 바로 위까지 낙하시키면서 공간을 압축시키고 조명 영역을 각각 인물에게 집중하면서 빛과 물리적인 오브제로 활용한다. 머리 바로 위에서 떨어질 듯 매달린 조명은 인물의 생사 운명을 시험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그들의 검은 속내를 여기저기 드러낸다. 공중에 매단 카메라, 떨어지는 조명, 받치는 기둥 없이 벽에 매달린 이층방, 목을 매단 맥베스 부인 등 무대를 지배하는 추락의 불안은 절벽으로 곤두박질을 치는 맥베스 일가를 표현한다.
레이디 맥베스
권력의 노예가 되어 불안에 떠는 나약한 현대인의 초상으로 맥베스를 보면 아내인 동시에 어머니 역할에 충실했던 레이디 맥베스의 자살로 인해 점차 격렬해지는 트라우마가 읽힌다. 연극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살인의 공범이자 정욕에 빠진 아내이면서 맥베스를 어르고 달래다가 다그치는 냉정한 어머니(혹은 아버지) 역할을 맡는다. 이성과 본능, 냉정과 열정 사이의 경계를 연기하기에 맥베스 역 윤정섭보다 나이가 많은 김소희의 부인 역은 잘 어울린다. 연희단거리패 대표이자 대표 배우인 김소희는 어느 배역을 맡든 놀라운 무대 장악력을 보여주는 배우(당연한 얘기지만 배보람 등 연희단거리패 젊은 여배우들의 연기에서 문득문득 김소희가 엿보인다)로 한정된 이미지에 굳어버린 TV/영화 여배우들과 사뭇 다르다. 자원이 한정된 극단 시스템에 기인한 부분도 있지만, 작년 한 해만 해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갈매기> 니나부터 <바보 각시>의 늙은 맹인까지 변신이 다채롭다.
객석과 무대가 맞닿은 소극장은 CG, 포토샵, 조명, 화장으로 속일 수 있는 화면과 다르게 엄정한 곳이다. 관객이 매료되는 부분은 나이에 비해 동안이긴 하지만 외모에 있지 않다. 김소희는 희곡 속 가상 인물 니나의 혼이라도 업은 듯이 연기를 한다. 주위 평을 옮기면 접신 들렸다고 하는데, 풀이하면 그녀 안에 잘 갖춰진 연극 무대가 있어서 그 위에서 배역이 맘껏 놀도록 두는 셈이다. 김소희는 불같은 레이디 맥베스 역할에서 활활 타오른다. 젊은 연출가전 타이틀을 달고, 젊은 배우들에게 기회를 준만큼 베테랑으로 그녀가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하지만 그녀의 참여는 양날의 검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그녀의 <하녀들> 마담 역에 매료된 뒤로 그 여운이 여전한 이유일 수 있지만 레이디 맥베스에서 마담이 겹쳐 보인다. 한편으로 그녀의 연기를 볼 기회가 적은 젊은 외국연출가 젤딘이 보기에 김소희 특유의 강렬한 연기에서 조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 다소 아쉽다. 김소희에게 시선을 빼앗긴 뒤라면 원작 자체가 안은 약점이기도 한 레이디 맥베스의 양심의 가책, 후회, 정신이상, 자살 등 갑작스런 돌변이 더욱 도드라진다.
극단 물리 <레이디 맥베스>는 아예 그 의문에 천착하여 물체극과 구음 연주로 레이디 맥베스의 죄의식을 바닥까지 훑어내고, 극단 초인 <궁극의 절정, 그 전율, 맥베스>는 레이디 맥베스를 자살이 아닌 광기에 서린 맥베스의 손에 교살당하는 장면으로 교체한다. 활극 <칼로막베스>는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등장하면서 코믹한 레이디 맥베스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여성성을 가장한 폭력성, 혹은 아예 남근화된 권력욕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맥베스 부부가 무대를 비우는 4막과 5장 사이, 젊은 배우들이 무대를 이끌면서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등 절정을 앞두고 긴장을 늦추고 환기를 하는 역할을 한다. 배우에게 메소드 연기를 강력하게 주문하는 연희단거리패 공연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라 나름 흥미로웠지만 밀도 차가 날 수밖에 없다.
물론 김철영, 서승현 등 좋은 조연들이 있는 데다, 연기력에 앞서 젊은 배우들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 던컨왕 역 노심동은 자객 역을 동시에 맡았다. 초반에 죽는 던컨왕 역할과 앙상블을 동시에 맡는 경우는 <칼로막베스>도 그렇고 드물지 않지만 노심동은 자객으로 후드티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던컨왕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다. 연희단거리패 <맥베스>가 던컨왕 비중을 축약하면서 던컨왕의 이렇다 할 속성을 드러내지 않지만 노심동의 단련되고 건장한 체격과 자객으로 잔인하고 냉정한 놀림에서 역으로 던컨왕의 폭력성, 혹은 그의 과거를 되짚어 짐작하게 한다.
말콤 역의 천석기는 맥더프를 만나 아버지의 복수와 궐기를 다짐하는 장면에서 부러 나태와 방종을 드러내기 위해 반라로 연기를 한다. 하지만 둥글둥글한 몸매가 복수심으로 이를 가는 빠진 도망친 왕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익히 앞서 이미지의 허구를 이야기한 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맥베스 첩자들의 눈을 속이려면 밖으로 드러난 이미지가 속내와 정반대라는 건 당연해 보인다.*
사진출처 - 게릴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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