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미시 프로젝트] 지금, 용서란 무엇인가?

구보씨 2011. 3. 5. 14:55

제목 : 아미시 프로젝트

기간 : 2011.03.05 ~ 2011.04.10

장소 : 신촌 The STAGE

배우 : 전정훈, 지현준, 구시연, 이은주, 정지은, 이두리

원작 : 제시카 딕키(Jessica Dickey)

연출 : 이현정


 

<아미시 프로젝트>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으로 어쩔 수 없이 담고 있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작품이라면, 그 안의 이해와 화해가 신의 자비로 가능한 이야기라면,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역으로 이 세상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악행이 얼마나 많은가, 때문이 아니라 결국 허구의 역할을 해내는 배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인간이 인간으로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사건을 인간적으로 인간답게 풀어냈을 때, ‘허구’의 덫, 꼭두각시의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으로 치부되는 것들이 품은 약점인데, 연극으로 풀어내는 종교적 감흥을 다룬 장치들은 결국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플라톤 주장대로 이데아를 상정한다면 연극이란 한 단계를 현실에서 한 번 더 모방을 하는 식의, 순도 낮은 결과물을 가져올 수밖에 없거나, 배우 등 중간자 스스로 어이없는 망상에 빠지기 쉽거나, 혹은 그렇게 연기를 하면서 대중을 호도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대한민국 목사들이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작년 연극 <뷰티퀸>을 기억한다면 극단 C바이러스의 작품을 예사로이 넘길 수가 없다. C바이러스가 좋은 해외 원작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좋은 배우들과 작업을 한다는 점은 대단한 이점이다. (치졸한 현실을 지독하게 파고들어 몸을 으슬으슬 떨리게 했던 <뷰티퀀>에 이어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니, 땅과 하늘의 극과 극이랄지, 넓은 스펙트럼이랄지 세 번째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아미시 프로젝트>도 좋은 배우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극단 서울공장 공연으로 눈에 익은 구시연, 이은주와 연희단거리패 출신 지현준이 눈에 익다.

 

자살한 에디 대신 그 죗값이랄지 그 무게를 고스란히 승계 받은 부인 캐롤 역의 구시연은 <두 메데아> 등에서 익히 연기 잘하는 배우로 기억하고 있었고, <논쟁>의 주인공 이은주의 아줌마로의 변신은 또 새롭다. 지현준은 캐릭터 자체가 아이들을 죽이고 죽은 실제 인물이라 해석의 여지가 조심스럽고, 또 연출의 판단이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또 전체 종교적인 메시지로 보면 그를 단죄할 수도 없는 구조여서 그럴 수밖에 없지만 다른 공연에서 본 모습에 비해 다소 흐릿하다.



 

아메리카 역 이재혜는 극 초반 다소 몰입이 덜되었나 싶었지만 곧 죽 끌어올리면서 당찬 연기를 선보이고, 전정훈은 침착하게 연기를 푼다. 이 연극이 무대 가운데를 파내어 공간/조명 구분을 하면서까지 연출한 천진난만한 아미시 마을 자매 안나와 벨다 역 정지은, 이두리는 프로필을 보면 신인으로 보이는데 사랑스러우면서도 둘 사이 언니와 동생으로 변별점을 정확히 나누어 연기를 선보인다.

 

안나와 벨다가 무대 가운데 구분한 공간에서 연기를 펼치는 성인 역을 맡은 5명 배우들은 250석 규모, 소극장 치고는 큰 편인 무대와 무대 뒤에서 부지런히 연기를 펼친다. (무대 뒤에서 연기를 한다는 의미는 문을 통해 등퇴장 뿐 아니라 늘 긴장감 있게 대기하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움직임과 오브제의 활용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변화되었으며 배우들의 움직임이 많은 만큼 뷰포인트 훈련을 받은 배우들로 캐스팅했다.’ 관련 기사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연기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원작의 영향인 듯 독백 형식 모노로그로 펼쳐지는 장면은 심심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약점을 다양하게 변주되는 의자 등 오브제를 사용하면서, 또 빠르면서도 동선을 제대로 지켜서 이끄는 과정으로 무대 가운데 고립된 아미시 마을과 차별화된 공간인 듯 바쁘고 어지러운 도시 일상을 표현한다. 벨다가 구획 밖으로 무심코 떨어뜨린 듯 보이는 꽃 한 송이가 에디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섬세한 연기를 보면 그들이 빈 무대를 충분히 장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아무려나 즉흥적인 복수와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손쉬운 보복이 판치는 세상에서 용서와 이해와 화해의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미덕일 수 있다.* 


사진출처 - 강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