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New Wave 공연예술축제 Festival 場[장] : 원 <一, one> _ 블루엘리펀트
일시 : 2010년 9월 9일(목) ~ 2010년 9월 11일(토)
장르 : 영상+춤+동해안별신굿
작․안무 : 전인정
미디어아트 : 박미향
출연 : 동해안별신굿 - 김용택, 김정희, 조종훈 / 대금 - 성민우 / 퍼포먼스 - 김기훈, 전수진, 전인정
장소 : 원더스페이스 세모극장
주최 : 서울문화재단
제작 : 남산예술센터, 원더스페이스
홀림
페스티벌 장을 여는 첫 무대, 원<一, one>을 보고 이어 영화 한 편을 봤다. 하루에 두 편 정도는 중독처럼 보고는 한다. 좋은 영화였다. 하지만 내내 졸고 말았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나, 원<一, one>을 보고 ‘홀렸다’는 게 가장 맞는 말 같다. 편안한 객석에 시원한 냉방이 돌아가는 영화관은 잠자기 딱 좋기도 했다. 비좁은 의자, 뿌옇게 서린 안경알을 계속 닦아야 했던 후덥지근한 습기로 가득 찬 원<一, one>을 공연한 소극장에 비하면 말이다.
페스티벌 장을 여는 학술행사 <공연 예술, 미디어를 만나다>에서 서현석 교수는 연극학자 한스 티에스 레만 교수의 입을 빌어 ‘현대 미술에서 연극성은 미개하고 나태한 “노골적인 적”이 아닌 개념미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선도자’라고 일컫는다. 매체가 아닌 장치로의 전환, 미학적 행위와 그 수용 행위가 ‘지금’ ‘여기’서 실재적 발생하는 연극성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배우, 텍스트, 조명, 의상, 몸짓, 극장, 관객까지 하나같이 이성적 틀로 묶을 수 없는 불완전 요소들로 가득 찬 연극은 3D시대에 의자에 앉아 만들고 의자에 앉아 즐기다가 고혈압, 고지혈증, 심근경색으로 죽어가는 ‘몸’의 본래 가치 즉 장치로의 전환을 일깨우기에 유용한 장르이다. 원<一, one>은 그 정점을 겨냥한다. 한 마디로 미칠 지경으로 몰아치는 카타르시스 폭발이다. 왜 원<一, one>이 장르적 결합을 올해 주제로 삼은 페스티벌 장을 여는 작품인지 충분히 그 의미와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항아리
추석도 머지않았는데, 우기처럼 지독스레 쏟아지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대를 들고 들어간 소극장, 에어컨을 켜지 않았는지 후덥지근한 열기 뿐, 무대는 방석 몇 개와 벽에 붙은 요상한 풍선 한 개 말고는 검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텅 비었다. 전통 공연예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공연 혹은 그 근원을 찾는 공연, 시작하기 전부터 생각이 많아진다. 자리를 찾아 앉으니 먼저 와서 부채질을 하던 아주머니가 노골적으로 안쪽으로 피한다.
에어컨이 망가진 게 아니라면 적어도 관객을 위한 배려는 아니다. 뜨거워질 무대를 위한 예열이다. 객석의 구분 따위가 없고 일종의 항아리 혹은 상자 안에 들어왔다고 보면 될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자율신경계에 따라 불쾌지수가 올라간 나도 알아서 최대한 멀찌감치 자리를 잡는다. 들어서는 순간 공연 시작인 셈인가. 시작부터 이 지경이라니 대단한 자신감이다. 이윽고 동네 마실 나온 아저씨처럼 반팔티를 걸쳐 입은 중늙은이 둘이 쑥스러운 듯 등장한다. 동해안별신굿 무형문화재 김용택과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조교 김정희(사진)다.
마스터
별신굿에 반해 7년을 한국 별신굿 명인을 찾아 쫓아다녔다는 호주 음악인 사이먼 바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웹에 쌓인 흔적이 클릭 몇 번으로 ‘프로파일링’이 되는 웹2.0시대에, 태평양을 넘나든 그의 아날로그적 행태는 ‘별스런 외국인’에서 별신굿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퓨전 음악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여정이 다큐멘터리 <땡큐, 마스터 킴(Intangible Asset Number 82)>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태평양을 향해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의미이고 보면, 그 가락이 파도를 타고 호주까지 가 닿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군탐지기가 굿판을 대신한 지 오래, 오랜만에 대풍(大豊)이다. 다만 굿이란 물고기를 홀리는 게 아니라 한을 풀어주고 달래주는 치유의 힘이고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한다. 원<一, one>은 그런 점에서 굿판의 에너지 뿐 아니라 과정과 역할에서 공연 예술과의 접점을 찾는다.
사물놀이처럼 관객을 향해서도, 궁중음악처럼 왕을 향해서도 앉지 않는다. 객석과 니은 자를 취해 앉고는 장구채, 징채를 잡는다. 염원, 넋, 신, 뭐라 부르든 별신굿은 빈 무대 위를 채울 것들을 위한 자리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날 하루 푼어리장단, 동살풀이장단, 휘모리장단, 드렁갱이장단, 어청보장단 등 동해안별신굿의 다섯 장단을 열었다는데, 귀가 호주 백인보다 어두운 난 뭐가 뭔지 구분을 못한다. 그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쩌렁쩌렁 파고드는 장구 장단과 그 구슬픈 듯 위로하는 듯한 구음에 깜짝 놀라고 호흡을 고르기를 반복하기 바빴다.
블루엘리펀트
젊은 남녀 무용수 둘이 나와 머리를 거꾸로 박고 서고 태평소 날카로운 소리가 근처 잡신들, 이를 테면 관객들 이목을 불러 모은다. 무용수들의 자세란 넓게는 세상을 거꾸로 보기 혹은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풍자, 좁게는 관객과의 소통을 배제한 채 개념으로 완성하는 현대 예술에 대한 조소, 무용수들에게는 뇌에 맑은 피와 산소 공급, 관객에게는 굿판에 박힌 음과 양의 칼날이 바닥에 박혔다가 뽑힐 때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대한 기대였다.
‘마을제사는 주민대표들만 참가한 가운데 성황지신․후토지신․동해지신 세 신위를 모시는 제사가 행해진다.’ 몸피가 작은 전인정이 객석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무대로 오르니 별신굿 소개처럼 빗속을 뚫고 찾아온 관객들을 놓고 무용수 셋이 채우면서 굿판의 기본 틀을 형상화한다. 이윽고 열기도 슬슬 오르겠다, 접신이라도 일어날까 싶지만 삼일 째 마지막 공연이라 그런지, 이미 넋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을 무용단의 몸짓이 가볍지 않다. 비가 오는 찌뿌드드한 날씨에 후덥지근한 공연장이니 몸 상태가 좋을 리가 없다. 굿판 벌이는 날치고 길일은 아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부터 김용택 어른도 벗겨진 이마를 슬슬 손수건을 훔쳐냈다.
공연장 열기는 의도된 바, 장르가 섞이는 마당에 무대와 객석 구분은 애초 의미가 없다. 객석에서 부채질이 점점 빨라지고 무용수의 옷이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된다. 범벅이 된 윗도리를 벗어 던지니 끈끈하니 벽에 척하고 달라붙는다. 천으로 달랑 가슴만 싸매고 팥죽땀을 흘리면서 춤으로 쏟아내지만 현대무용으로 풀어내는 별신굿이라 영 쉽지 않아 보인다. 이를 두고 ‘이질적 만남’이라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전인정의 입이 터졌다. “답답해, 말해.” 무용수를 향한 힐난은 이리저리 누구랄 것도 없이 겨냥해 터진다.
그러자 암팡진 생김새가 무당에 적격일 듯싶은 전수일이 내내 참았다는 듯이 입에서 욕이 따발총처럼 한바가지 쏟아낸다. 객석을 향해 던지는 가지가지 욕은, 가끔 나와도 눈이 마주쳐서, 왜 그러고들 얌전빼고 앉아 있느냐는 힐난처럼 들린다. 욕에 격이 있다는 말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말이지만 대본(?)에 따른 말이라 믿고 싶은 토속적인 욕말은 한편으로 후련하다.
미디어 붓다
거들먹거리는 격식 형식 파괴, 직접적인 관객과의 소통, 전인정 말대로 하자면 ‘더하기가 아닌 빼기 철학’ 식은 별신굿을 만나니 용을 탄 격이다. 내내 절정으로 치달을 수도 없고, 지쳐서 무대 아래로 혹은 뒤로 한둘 지쳐 나갈 즈음, 악사들도 달아오른 악기를 잠시 내려놓는다. 혼자 남은 김기훈이 땀에 전 옷을 찾아서는 두 눈을 질끈 둘러매 가린다. 땀이 말 그대로 배설이고 옷이 허위나 격식이니, 걸치고 쏟은 그 둘을 벗어 던지고 몸뚱이로 나섰으나 참선하는 선승도 아니고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무위라도 해도 좋을 듯, 악사들이 악기 대신 휘파람으로 부는 새소리를 찾아 헤매다가 어른 팔로 한 아름이 넘는 하얀 풍선을 잡는다.
어둠 속에서 손을 근접 촬영하여 부처님의 손 모양을 뜻하는 수인(手印)을 교차, 반복하는 박미향의 영상은 밋밋한 뒷벽에 투사되다가 김기훈이 하얀 풍선을 들고 막을 대신하는 순간, 3차원적 영상으로 미디어와 몸짓이 분리되지 않고, 원, 하나로 겹친다. 풍선을 프로젝터 쪽으로 향하고 다가오자 뒷벽에는 거대한 제3의 눈, 두정안(頭頂眼)이 되었다가, 검은자가 흰자를 뒤덮으면 달이 태양의 중앙부를 가리고 테두리만 빛나는 일식, 금환식(金環蝕)이 벌어진다. 또 만화경처럼 사방으로 펼쳐지는 수인은 프로젝터와 풍선 사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불룩한 풍성 위에 또렷해지는 동시에 연꽃의 풍만하고도 둥근 자태가 실제처럼 묘사된다.
길지 않았으나, 영상이 다양한 장르와 만났을 때 그 가능성을 관객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놀랍게 발산하는 순간이다. 작품 자체에 따로 내러티브가 있지 않지만 영상이 따로 놀지 않고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하지만 풍선이 바람이 빠지고 나면 한낱 허위이듯, 허상처럼 미디어 붓다가 사라지만 알처럼 품었던 풍선은 곧 어둠 속에서 검은 천으로 온통 가린 무용수들의 발에 이리저리 차이다가 객석으로도 넘어온다.
오감, 그리고 난장
객석에 가만히 앉아서도 하나가 되는 경이는 어둠이 내리고, 시각 이미지를 모조리 차단한 상태에서 벌어진다. 별신굿 가락이 신명나게 울리니 감각의 대부분을 독차지했던 눈에게 내어줬던 나머지 몸뚱이 감각이 살아난다. 귀와 벌린 입을 통해 속에서 울리고 드러난 팔뚝 위에서도 부들부들 치고 들어온다. 시각을 닫으니 나머지 청각, 미각, 촉각으로 공연을 즐기는 셈이다.
긴 여정 끝, 무용수들이 갑작스레 서럽다는 듯이 울음을 터트리고 악사들은 세상 억울함을 대신하려는 그들을 부추기면서 달랜다. 전 대목에서 접신하듯이 팽이 돌듯 몸을 공중에서 휘돌리다가 떨어지는 대목에서도 전수진의 몸이 도는 속도가 빨라 아슬아슬했고, 무대 양편을 오가면서 바닥에 몸을 던지는 대목에서도 살이 쓸리는 소리가 가장 아찔아찔했는데, 이 대목에서도 우는 게 제대로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악이 바칠수록 악기와 하나가 되어 점점 치달을수록 역으로 보는 내 속은 씻기는 듯 시원하다. 사이먼 바커가 취한 한국 전통식 카타르시스란 게 이런 것인가 싶다.
굿을 벌이기 위한 길일이나 서낭당 등 신기가 서린 장소, 즉 자연과 합일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아닌 닫힌 공간, 제한된 공간에서 벌이는 굿판, 연출된 상황에 따라 연기를 해야 하는 굿판이 과연 볼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겠는가, 혹은 외피로만 ‘박제’된다면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작품 전체가 굿판을 큰 틀로 삼은 만큼 이런 우려는 잦아들었지만 악사들이 참여는 최소한 그들의 틀을 깨지 않는 수준에서 벌어지는 이상, 그 틀에 퍼포먼스와 미디어를 맞춘 이상 동등한 배정을 할 수도 없고, 영상과 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효과를 발휘하는 지도 다소 의문이다. 별신굿 자체는 음반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으나, 춤과 영상을 각각 별개로 본다면 다른 해석, 다른 작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념적인 예술을 파괴하는 신명 나는 놀이’라고 이 작품을 정의한다면 여전히 별신굿의 힘이 크다.
그래도 무대 위에서 벌이지는 공연예술의 본질이란 건 또 다르다. 인위적이라고 하나, 암전과 플래시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관객들에게도 본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낮과 밤, 천둥과 번개 등 삼라만상의 조화를 보기 좋게 연출했다. 원<一, one>의 완성도를 어디까지라고 정해놓을 수는 없겠지만 동해안별신굿 만으로는 분명 성취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여흥이 남아 두서없이 풀어놨는데, 직접 볼 기회가 있다면 꼭 봐야할 공연이지만 3일 짧게 공연이 끝났다. 별신굿은 자체로 규모가 커서 시장이 아니더라도 경우에 따라 임시장인 난장을 트기도 한다고 한다. 원<一, one>이 딱 그 역할이다. 이 작품이 앞으로 남은 페스티벌 장의 작품들을 향하는 관객몰이의 물꼬가 되길 희망한다. 개인적으로 작년에도 그랬거니와, 앞으로 남은 페스티벌이 기대가 된다.*
사진출처 - 페스티벌 장
New Wave 공연예술축제 Festival 場[장]
장소 |
작품명 |
일정 |
공연단체 |
장르 | |
남산 |
죽음에 이르는 병 |
9.11~12 8PM |
사무소 |
문학+연극+설치미술 | |
The Wall |
Remixed Conventions |
9.16~17 8PM |
Nebular Factory |
미디어+ | |
Blended Eyes 2 |
9.18 6PM | ||||
찰나가 부르는 시간 |
9.23~24 8PM |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
설치미술+음악+미디어+무용 | ||
원더 |
원 <一, one> |
9.9~10 8PM |
블루엘리펀트 |
영상+무용+동해안별신굿 | |
LOVE ver.2010 |
9.17 8PM |
키라리☆후지미 극장& |
연극+사운드+영상 | ||
문래 |
Private Collection |
9.13~15 8PM |
최찬숙, 극단 몸꼴, 엘리어스 코헨 |
미디어+신체극+설치미술 |
'다원 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Upside Down_제6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그로테스크하면서 귀여운 빡빡이 삼남매 (0) | 2011.06.28 |
---|---|
[죽음에 이르는 병_NEWWAVE 공연예술 축제 페스티벌 場 2010] 하이힐, 선풍기, 옷걸이, 그리고 나 (0) | 2010.09.09 |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잡고] 가봤던 그 곳 (0) | 2010.06.25 |
[뛰다 튀다 타다] 협업 이전에 중요한 점은 (0) | 2010.04.17 |
[시르크넛Cirque Nut]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르는 서커스와 발레의 멋진 콜라주 (0) | 2009.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