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연극하면 '돈키호테' 혹은 '피의 결혼' 정도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것은 그동안 스페인 희곡작품의 국내소개가 활발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하다. 하지만 최근 그동안 막혀있던 교류의 통로가 활짝 열린듯하다. 2007년 초연되었던 극단 주변인들의 최종면접(조르디 갈세란 작)이 2008년과 2009년 초 앵콜에 앵콜을 거듭했고, 극단 숲은 작년 후엔떼 오베후나(펠릭스 로페 데 베가)에 이어 올해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을 공연했고 또한, 서울시극단이 다윈의 거북이(후안 마요르가 작)를 공연중이다.'
2010년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을 앞두고 기념 공연으로 올라간 작품입니다. 후원을 보면 지금까지 대학로 소극장 연극 중에 가장 많은 단체명을 올리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후원했는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연극 소개가 잘 되어 있어서 옮겨왔는데요. 스페인 연극 붐이라고 후기에 적었는데요. 그리 신빙성 없는 얘기를 왜 했었나 했더니, 당시 우연히 앙코르공연으로 올라간 <스페인 연극>을 같이 봤서 그랬지 싶습니다. 이때 이후 스페인 연극을 본 기억이 없군요. 이때 스페인 영화도 제법 봤지 싶은데, 이 역시도 수교 60주년의 영향이었구나 생각합니다. 참고로 작품 원제 <Morir>는 스페인어로 죽다라는 의미입니다.
제목 : 죽음(혹은 아님)
기간 : 2009/10/30 ~ 2009/11/29
장소 :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
출연 : 정일균, 백현주, 강선희, 김정은, 김성진, 조성호, 홍성기, 안영주, 이새별, 최민경
원작 : 세르지 벨벨(Sergi Belbel)
번역 : 김선옥
연출 : 서충식, 김유경
제작 : 극단 주변인들
대학로에서 스페인 연극 붐이 불고 있다? 다소 과장이긴 하지만 실제로 <스페인 연극>을 제목으로 단 공연과, 실제 스페인 작가가 쓴 <죽음 (혹은 아님)>이라는 작품이 동시에 대학로에 올라왔으니, 붐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스페인(관련) 연극을 동시에 만나는 행운이 있는 시기이긴 하다. <스페인 연극>은 <아트>, <대학살의 신>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가 스페인을 배경으로 쓴 작품으로, 엄밀히 말하면 스페인 연극은 아니다.
두 작품 중에 스페인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주는 작품은 <스페인 연극>이지 싶다. <죽음 (혹은 아님)>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삼지 않더라도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곱 명의 죽음 혹은 아닌 상황을 그린 이 작품은 스페인 대사관, 스페인 문화부, 한국-스페인 문화교류센터가 후원으로 나설 만큼 스페인 극작가 세르지 벨벨의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공연 시간이 120분인 작품은 극단 주변인들의 뚝심이 아니면 구현하기 힘들 터였다. (소극장 공연에서 인터미션은 처음 경험한다. - 이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상황도 사연도 제각각인 일곱 명의 급작스런 죽음을 그린 1막 일곱 가지 에피소드는, 하나같이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는 존재들로 그들에게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 그리고 급작스런 죽음 외에는 이렇다할 고리가 없다.
그러나 1막의 마지막이 2막에서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되면서 일곱 가지 에피소드는 도미노처럼 하나의 커다란 사건으로 차례차례 연결고리를 엮는다. 죽음이 죽음이 아닐 수 있는 상황으로의 전환이다. 2막을 통해 1막의 상황이 전환되는 상황은 이해하기도 쉽고, 또 짜임새 넘치는 재미있는 구성을 선보인다. 이 작품의 장점은 무엇보다 매우 연극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전개 방식이 드물지는 않지만, 소극장 무대극으로 군더더기 없는 구성과 연출이 돋보인다. 그리고 쉬운 듯한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1막의 마지막 상황, 킬러는 상대방 여자의 의뢰로 바람둥이 남자를 죽이러 왔다. 4분의 시간 동안 참회하거나 신의 목소리로 자신을 막아보라고 한다. 1막의 마지막과 2막의 처음은 그 두 가지 선상에 있다. 그러나 남자나 죽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상황은 그 남자의 참회와는 별개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회개가 다른 동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1막의 처음과 2막의 마지막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작가의 상황은 1막과 2막이 큰 차이가 없다.
마냥 해피엔딩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를 넘긴 사람들의 상황은 하나같이 우연의 결과일 뿐, 스스로가 왜 살아났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들의 삶은 여전히 습관의 관성에 따라 흘러간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은 지금 타자를 치고 있는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엄중하게 말한다면, 되살아나지 못하는 작가의 상황도 현실인 동시에, 순간순간 죽음의 위기를 넘기는 상황도 현실인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돌진하는 차를 피한다고 해서 죽음의 경계가 멀리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연극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살아 있는 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 각자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반성을 할 것을 요구한다. 작가의 죽음은 바뀌지 않으나 죽기 전 작가의 상황이나 삶에 대한 깨우침은 1막과 2막이 전혀 다른다. 그러니까 2막에서 작가는 삶의 의미를 되새길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리고 2막 마지막에 살아난 남자의 상황은 오로지 킬러의 선택에 달린 문제로, 그의 선행 혹은 반성과는 다른 부분이다. 킬러도 작가와 마찬가지, 죽이거나 말거나를 떠나서 자기 삶의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다고 볼 수 있다.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죽음 (혹은 아님)>은 재미와 더불어 삶에 대한, 이를테면 스페인 방식의, 새로운 의미를 던진다. 앞으로도 이 같이 좋은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출처 - 극단 주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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