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올해 2월에만 해도 2010년 히서연극상의 '기대되는 연극인상'과 대한민국 연극대상의 '남자신인연기상', 동아연극상의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면서 연극계의 완소배우로 인정받은 배우 박완규(가수가 아닙니다) 주연의 극단 백수광부 <안티고네>가 재공연을 하기도 했지요. 이 외에도 <뉴욕 안티고네>(2009.02),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2011.09) 등 좋은 극단에서 만든 화제작들이 꽤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본 작품은 극단 노릇바치의 <안티고네>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네 작품 제목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백수광부의 <안티고네> 외에 다른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각색하거나 변형한 작품들입니다. 극단 노릇바치의 작품도 장 아누이(Jean Anouilh, 1910∼1987가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원작과 차이를 보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신의 법과 인간의 법의 대립'을 주 테마로 삼은데 비해 장 아루이의 작품은 '순수함과 자유와 절대적 행복'이 주 테마라고 합니다.
장 아누이의 안티고네 Antigone http://zmanzclassics.blogspot.com/2011/09/antigone.html
제목 : 안티고네
기간 : 2009.10.28 ~ 2009.11.11
장소 : 성북구 아리랑 아트홀
출연 : 송인성, 김인수, 이훈재, 윤보아, 김선화, 한관희, 이석문, 신소현
원작 : 장 아누이
대본 : 루이스 갈란티어
번역 : 최상희
연출 : 이기호
제작 : 극단 노릇바치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장 아누이의 <안티고네>, 브레이트의 <안티고네>, 버지니아 울프의 <안티고네>... 자연의 법(안티고네)과 인간의 법(크레온)을 대치, 인간 욕망의 대치, 권력에 대한 반발, 여성성의 발현 등. 안티고네는 시대마다 새로운 해석을 둘 만큼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극단 노릇바치의 안티고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을 당한 현실을 두고, 장 아누이가 새롭게 각색한 안티고네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입니다.당시 상황으로 볼 때, 크레온과 안티고네가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하도 교묘해서 겹층으로 둘러싸인 시대에는 무엇과 무엇이 대립을 하고, 또 나를 억악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지요. 용산참사로 불리는 '용산4구역 철거 현장 화재 사고'의 비극은 국가의 법 앞에 살 권리를 주장한 데에서 비롯되었는데, 비극을 겪은 안티고네들만 있지, 크레온은 법전 뒤에 숨어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벌어지는 사태를 보건대, 지금 이 시대에 안티고네가 다시 무대 위에 올라가는 이유는 자명해 보입니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하면 억압 기제는 항상 느긋하게 숨어 있지요. 그리고 그 기제는 어느 순간 우리 안으로 들어와 나를 잡아먹고, 내 안에서 통제 기제 웅크리고 앉아 나를 그저 얌전히 말 잘 듣는 로봇으로 만들고 맙니다. 무서운 건 서서히 끓은 물의 온도를 올리면 눈치채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우리 스스로는 그런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원작의 무게에, 한국에서도 수없이 올라간 안티고네를 다시 올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으리라고 봅니다. 열악한 연극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분명 제한이 따라올 어디어디 재단, 무슨무슨 위원회 후원 한 곳 없이, '내 안에서부터의 저항'을 외치며 극단 노릇바치가 자유롭게 올린 안티고네는 닫힌 생각의 틈을 벌려주기에 나쁘지 않은 작품입니다.
아리랑아트홀의 무대는 대학로에서 떨어져 있고, 또 한적한 곳에 있기도 합니다만, 극장 내부 환경은 소극장치고 좋은 편입니다. 무대 형상화에도 공을 들인 데다, 배우들의 최선을 다하는 연기도 보기 좋습니다. 전 초연을 보았는데요. 사소한 실수가 좀 있었지만, 그쯤은 얼마든지 감내할 만한 했습니다. 또 지금쯤 손발이 유기적으로 맞아 들어가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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