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홍어] 썩어서까지 몸을 내주고마는 속절없는 운명

구보씨 2009. 11. 4. 15:09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창작희곡을 공모하고 그 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말 그대로 창작희곡활성화사업인 <창작예찬>은 2010년 3회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대신 2010년 한국공연예술센터 설립 이후 2011년부터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을 지원하는 <봄 작가 겨울 무대>가 생기기는 했지요. <홍어>는 2009년 <창작예찬II>에서 만난 작품입니다.2008년 창작희곡활성화지원사업 작품으로 선정되고, 1년 반의 준비기간이랄지, 대기 시간이랄지를 마치고 무대에 올라왔지요. 


<창작예찬>에서 소개된 뒤로 2010년에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으로 정식 공연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뭐랄까요. 나름 엘리트 지원 코스를 밟아왔다고 해야할까요? 그만큼 대본이나 연출, 연기, 무대 등 모든 면에서 탄탄하다는 의미라고 이해합니다. 전 재정비한 2010년 대극장 공연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소극장 안으로 가득 콕! 쏘는 삭힌 홍어 냄새가 대극장 1층 뒤자리나 2층에서는 제대로 느끼기 힘들지 싶었습니다. 


제목 : 홍어

기간 : 2009년 11월 4일 ~ 11월 8일(6회 공연)

장소 :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출연 : 강선숙, 전국향, 신현종, 주수정, 이윤선, 문경민, 이승기, 조주경, 김태경, 추은경, 신은채, 정의순

희곡 : 정진경

연출 : 김성노

공연 : 극단 은행나무



2007년부터 시작된 ‘창작예찬’이 왜 중요한지, 올해 창작예찬 시즌2 첫 번째 작품 <수인의 몸 이야기>를 보면서 새삼 많이 느꼈다. 우선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은 중극장 규모라 무대 시설이 좋은 편이다. 작가의 생각을 옮겨 담을 그릇이 그만큼 크니 연출, 무대, 배우들이 보다 풍성하게 꾸밀 여지가 넉넉하다. 관객 입장에서도 저렴한 공연비도 그렇지만 객석, 부대 시설 등 만족스럽다.


<수인의 몸 이야기>의 작가 김윤미도 그랬지만 <홍어> 작가 정경진 역시 진득하게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공감할 만하게 풀어 놓았다. 그녀들이 전에도 좋은 작품을 선보인 바, 자극적이지도 정신없이 웃기지도 뮤지컬도 아닌 드라마에 집중한 희곡인 바, 작품성이나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해도 흥행에 성공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보면 이번 창작예찬 지원은 그녀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무대일 것이다. 


창작예찬2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작품은 여성의 몸을 중심에 놓고 다룬다. 증상이 없는 고통(수인의 몸 이야기) 후각 시각을 강조한 식욕(홍어)은 아내, 어미, 며느리 등 사회 굴레에 망각했던 여성의 본질, 즉 내면의 절규인 셈이다. 여성 작가들이 가진 특유의 장점일 수도 있으나, 글을 쓰는 일이 사회에 촉수를 내뻗고 사회의 보이지 않는 뒷면, 가라앉은 이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업인 바, 단순히 그녀들 자신들만의 귀착으로만 결론짓기는 힘들다. 




공연을 보러간 날은 비가 슬슬 내리는 듯 마는듯 우산을 펴기는 귀찮고, 안 쓰자니 번거로운 날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넷 중 하나 정도만 우산을 펴들 만큼 비가 내렸다. 습한 날씨는 후각을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만든다. 저녁 7시 공연, 극장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래 전에 변두리 삼류극장 구석진  자리에서 썩고 있던 쥐가 떠올랐다. 


곧 <홍어>를 보러온 참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자리에 일찍 앉은 편인데,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인상을 찌푸리거나, 주인공 연순의 남편 철규처럼 “이게 뭔 냄새야?”하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아직 작품 시작 전이니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연순은 자살을 했으나, 그 억울함에 혼령이 집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혼이 억울해서 떠나지 못하니 몸이 썩는 냄새가 난다는 식의 작품 의도와 상관없는 상상은 영화가 줄 수 없는 부분이다. 어두컴컴한 하늘, 부슬부슬 내리는 비, 오늘 날씨와 연극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구나 싶었다.




홍어는 흑산도 무녀의 딸로 아비 없이 자라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는 중졸의 시골처녀가 서울의 잘나가는 집안 출신 대학생을 만나 결혼한 이후, 그 이질적인 결합으로 인해 죽는 순간까지 내내 그녀를 옭아맨 흔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그 냄새는 그녀가 좋아하는 고향의 정취지만, 그녀의 속내가 썩어문드러져 고름이 흘러넘치는 냄새이기도 하다. 열심히 살려고 한 죄밖에 없으나, 딸은, 남편은, 시댁은, 세상은 그녀를 떠나거나 외면하거나 이용하기만 한다. 마치 그물에 속절없이 끌려온 홍어 신세이다. 딸에서 딸로 무녀 집안의 내력이 이어진다는 설정도 연순의 지박령에 대한 설득을 더한다. 


연순의 혼령은 쌓인 억울함을 풀고 무녀인 어머니의 인도를 따라 무사히 저승으로 떠난다. 이는 연순의 딸이 아기를 낳는 순간과 겹치면서 태어난 아기가 연순을 닮았다는 전화로 그녀의 모진 삶 앞에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는 가능성을 엿보인다. 허나 역으로 무녀의 기질이 대를 잇는다는 설정은 일말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순환으로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