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피크를 던져라]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구보씨 2009. 3. 2. 14:44

참 이 치기어린 글을 찾아올려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 정리해두지 않으면 언제 다시 찾을 수 없는 글일도 몰라 우선 올립니다. 흠, 이 리뷰로 공연이벤트로 진행한 '기타'를 받았습니다. 통기타였구요. 좋은 기타는 아니지만, 받아서 친구를 줬던 기억이 납니다. 아래 글에 등장하는 친구는 아니고, 몸이 좀 안 좋아 집에 있던 친구였는데... 하늘에서 잘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가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피크를 던져라> 역시 매년 꾸준하게 공연이 올라갑니다.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02 심장을 바꿔봐요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친구가 있다. 고1때 한 반에서 만나 이런저런 풍파를 거쳐서 10여 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 이른. 친구는 고2 때 이과를 선택했고, 나는 문과를 선택했다. 친구는 대학에 가는 대신 장사를 하다가 현역으로 군대를 제대했고, 나는 대학을 간 뒤에 방위로 소집해제를 했다. 그 친구는 철공소에서 꾸준하게 기술을 익혀 이른 나이에 공장장이 되었고, 나는 이런저런 단체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전전했다.


난 직장의 내외부 비리 혹은 부당한 차별 등에 맞서다가 그만둔 적이 두어 번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친구는 “소모적인 상황”이라고 했다. 친구는 나 못지않은 반골이었으나 주위의 모든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만큼 친구는 야근이 끝나고 와서도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고 운동을 했다. 늘 구도자처럼 스스로에게 치열했다. “너한테 남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친구의 질문에 의견 대립에 날을 세우다가, 어느 날 문득 오래 알아왔고 익숙하다고 해서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 나와 친구는 서로 가는 길이 다를 뿐 지향하는 바가 같다고 믿었고, 그래서 각별했으나 오히려 서로 정반대 일수도 있겠다는 데에 결론이 이르렀다. 그 이후 그와 나는 소원해졌고, 연락을 끊었다.


03 아버지는 농부였다

나는 배신감에 때때로 이를 갈고 원망했다. 대충대충 세태에 맞춰 사는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산다고 생각했으므로, 특별했던 만큼 실망감도 엄청났다. 그의 얘기를 귀를 기울이고 그의 조언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그에게 위로를 받았던 자신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속내를 다 내보이지 않았던가. <피크를 던져라>에 빗대어서 말하면 그는, 나에게 열린 길을 밝혀서 보여줄 프리즘이 아니라, 단순히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를 “그저 어쭙잖게 겉멋이 든 이기주의자”라고 단정한 이후 고교 동창생들과 만나면 “그래서 공부는 꼴리는 대로 하는 게 아니다”라던가, “맞춤법도 모르는 새끼가 무슨 글을 쓴다고 지랄이야”라고 상처를 냈다. 남들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그 친구는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서 다들 내 얘기에 수긍을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러고나면 내 상처가 더욱 깊어졌다.




05 당신

<피크를 던져라>를 본 3월 7일 토요일, 공연을 보고 대학로에서 밤 늦도록 술을 마셨고, 집으로 도망치는 선배에게 비겁하다고 소리를 쳤다. 집에 오는 길에 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날 아침, 집에서 나를 찾는 전화를 받고는 어리둥절했다. 여기가 그럼 어디지? 친구가 홀로 사는 지하 셋방이었다. 술김에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친구는 내가 전화로 울먹였다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들였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친구를 만난 게 거의 1년 반 만이었다. 평소 그의 말에 유독 꼿꼿하게 자존심을 세웠던 나였던 걸로 보면 울었다는 게 부끄러울 만도 한데,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아침에 서로 마주 앉아 있자니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익숙했다. 늘 들렸던 곳인 양. <피그를 던져라>의 프리즘 멤버들에게 연습실이 그렇듯이.


“너도 나이를 먹는가 보다. 노래가 전 같지가 않아.” 그래, 난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가 철공소에 짜 맞춘 수제 악보대와 나무를 잘라 만든 발판 위에 발을 얹고서 노래를 불렀다. 역시 1년 반 만에 잡아보는 기타였고, 술에 취해 갈라진 목소리로 노래가가 내 귀에도 듣기 거북했다.


06 해봐도

“버릇도 그대로고 말야.”

친구는 내가 통기타 대신 클래식 기타를 들었다고 했다.  손가락이 두꺼운 데다 둔해지다 보니 난 통키타 대신 지판이 넓은 클래식기타를 잡았다. 이 집에 오면 늘 클래식 기타를 잡고 낡은 악보집을 펴들었다. 친구는 듣는 것 이상으로 부르길 좋아했다. 하루에도 취미삼아 1시간 정도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지만 음치에 박치인 탓인지 실력이 잘 늘지 않았다.


그래봐야 고작 어렸을 때 교회 성가대 정도였던 내 노래가 듣기 좋다면서 흥얼흥얼 따라 부르곤 했다. 그러고 보면 그와 나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길 좋아했다. 친구 집에서 나오기 전에 슬쩍 악보대를 봤더니 김광석의 ‘나의 노래’가 펼쳐져 있었다. 한 밤중에 하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이 노래를 골랐다니. 아무리 친구가 혼자 산다지만 이래저래 난 여전히 폐를 끼친 것이다.난 내 노래를 들어주는 친구가 그리웠던 걸까. 도대체 토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09 Remember

콘서트와 뮤지컬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피크를 던져라>는 120분 내내 흥겹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공연 시간은 90분이지만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연극을 만든 연출, 작곡가, 기획 등 스텝들이 나와 특색 있는 콘서트 형식을 빌어서 분위기를 띄운다.) 다만 노래와 연주의 비중이 높인 탓에 갈등 안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 희망을 찾는다는, 단순해 보이는 서사가 피치 못한 선택처럼 보였다. 

 

소극장인데다 무대 절반을 연주를 위해 악기를 전면에 배치한 구조이다 보니 배우들의 동선 역시 단조롭다. 무대 후면과 전면을 나눈 막의 활용 등 고심한 흔적이 보이자만 좁은 무대에서 더욱이 악기 사이를 오고 가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공간 활용을 위한 재치가 돋보이는 술집 테이블 등 소품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싶다. 그 장면은 극 전개상 심각한 갈등 상황을 알리는 상황이지만 감정이 이어지지 못하고,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식으로 풀린다.


프리즘이 락을 연주할 때보다 돈을 벌기 위해 서윤(박진희 분)이 홀로 트로트를 부르는 장면에서 비로소 안정감을 찾는데, 이는 가난 때문에 피치 못한 상황에다 김사장의 때문에 돈마저도 벌지 못하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서윤의 상황과 비좁은 무대가 호흡이 맞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갈등을 두고라도 아픈 어머니를 둔 집안의 가장인 서윤은 비중있게 다뤄지지만, 정규직으로 쫓겨나 노점상을 하는 후니(이승훈 분), 어머니가 홀로 농사를 짓는 인하(최승열 분)라는 인물들의 고단함 역시 서윤 못지 않을까 싶다. 성민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약자층인 프리즘의 상황과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명밴드라는 현실적인 고민이 좀 더 절실하게 와닿았으면 한다.



 

10 I`m Dreaming

후니가 징역을 살고 지우(홍성민 분)가 군대에 가 있는 2년 동안 피아노 학원이라는 현실을 택한 서윤, 버클리음대로 유학 준비를 한 성민, 어머니를 대신해 감자 농사를 짓는 인하(최승열 분) 등 각자의 삶을 살기 바쁘다. 그러나 땀과 꿈이 밴 연습실을 2년 동안 묵묵히 지킨 지아로 인해 이들은 프리즘이라는 공동체로 다시 묶이고 인화의 대사에서 언급하듯이 “무지개를 만드는 밴드”답게 멋진 조화를 이루며 무대를 달군다.


하지만 무명이든 유명이든 실제로는 밴드마다 멤버 교체가 많은 현실에서 이들의 프리즘으로 회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음악이 가진 힘’라는 설득은 ‘그렇다면 꼭 프리즘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막힌다. 결국 서사의 모든 갈등을 푸는 역할을 담당한 지아라는 캐릭터로 쏠리는데, 막 밴드 멤버가 된 새내기가 2년을 견딘 세월을 밴드에 대한 애정이라고 이해하기도, 또 지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아쉽다.


어쨌거나 이런 생각은 굳이 따져보자니 든 생각일 뿐이다. <피크를 던져라>가 롱런을 할 수 있는 데에는, 그 매력은 역시나 작은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완성도 높은 창작곡에 뛰어난 연주, 그러니까 음악의 힘이다.  지아가 작은 몸으로 드럼을 치는 그때만큼은, 정말 뭔가 해소되는 기분이다. 음악의 시작이자 틀을 잡는 드럼이라는 악기가 가진 장점일 수도 있지만 ‘대학생이라서 세상 힘든 걸 몰라’가 아니라 ‘난 내가 믿고 느끼는 대로 산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는 그만이다.

 

<피크를 던져라>는 배우들이 펼치는 연주라고 보든, 뮤지션들이 펼치는 연기라고 보든 탄성이 나온다.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는 배우들 역시 대단하고 또 많지만, 이들처럼 직접 연주를 하는 다재다능한 배우들을 본 적이 없다. (같이 본 선배는 지금도 MR을 틀었다고 믿고 있다.) 다만 콘서트와 뮤지컬 사이의 세밀한 조율만 남은 셈이다.


11 널 밝혀줄게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난 친구에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고 났더니 맥주병과 바나나 등등이 널려 있는 걸로 보아 기억은 나지 않으나 술을 샀을 것이고, 그 술을 나눠 마시면서 또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속내를 다 얘기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튼 제 정신이었다면 하지 않을 짓을 한 것이다.

 

아무튼 그날 새벽 생각지도 않게 "피크를 잡았다!!’


친구가 빌려준 책을 읽고 있다. 내 취향은 아닌데다 꽤나 두껍고 또 지루하다. 그러나 성실하게 읽고 친구와 얘기를 나눌 작정이다. 친구와 나 사이를 조심히 이어줄 책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이제는 친구가 부르는 ‘나의 노래’를 들어볼 차례인 것도 같고 그렇다. 대단하지 않을 일일 수도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꽤나 무거웠던 짐을 털은 듯 홀가분하다. 그렇다고 그 친구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지도 않았고, 그러지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깟 거”라고 별 일 아닌 듯 치부했던 게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피크가 단순히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듯이 역시나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건 작고 세심한 것들이다. 술김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공연을 본 날 내 주머니에 피크가 들어왔다고 믿는다. (소제목은 피크를 던져라 OST 제목 중에서 뽑은 것이다.)* 


사진출처 - 뮤지컬 제작 집단 PE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