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영웅] 영웅은 다시 살아날 것인가

구보씨 2009. 10. 26. 11:27

제목 : 뮤지컬 <영웅>
일시 : 2009년 11월 29일(일) 늦은 6시
장소 : LG 아트센터    
출연 : 안중근 역(정성화), 이토 히로부미 역(이희정), 설희 역(이상은), 링링 역(소냐) 외
기획 : (주)에이콤인터내셔날

 

 

기억을 해야 하는 이유
일제의 남경대학살 만행을 다룬 <난징 대학살> 저자 아이리스 장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 앞에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가. 1923년 9월, 관동대진재학살을 비롯해 일제와, 이후 군부독재의 광주 대학살 만행은 아픈 근현대사로 남아 있다. 


나치의 만행과 진상을 밝히고, 이후 나치를 옹호하는 경우를 냉정하게 처벌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군국주의에 대한 목소리나 역사를 날조, 왜곡하는 자국 역사가들에 대해 여전히 관대하다. 위안부 문제에서 보듯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사안만 봐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과거가 아닌 현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그러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반민특위는 흐지부지, 친일파가 쥔 기득권이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게 멀지 않은 일이다. 해방 이후 64년만인 올해 11월 8일, 이제야 친일인명 사전이 나왔다. 등재 사실을 두고 사죄하는 친일파 후손들도 있으나, 대부분 사전 자체를 폄하를 하고 핏대를 세운다. 그렇게 망각은 정신 이상을 가져온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기억해야 한다. 올해는 안중근 하얼빈 거사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의사 안중근, 도마 안중근, 장군 안중근
‘안중근 의사’ 우리가 익히 배워 알고 있는 칭호이다. 허나 선비 사(士)를 쓰는 의사라는 칭호는 개인적 울분에 의한 의거를 의미하는 말로, ‘포수가 애국심으로 저지른 무모한 테러’라는 일본 법원의 퍈결에 손을 들어주는 말이다.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독립 전행을 하였고, 또 전쟁 포로 대우해달라고 일본 법정에 정확하게 요구했다.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도마 안중근’은 가톨릭 신자인 안중근의 세례명 ‘도마(토마스)’에서 따온 것이다. ‘네가 벌한 이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는 없는 법.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로 생각지 마라. 작은 의에 연연치 말고 큰 뜻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라‘며 아들의 사형 선고를 받아들인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당당한 처사, 그리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천주교 정신에 기반을 둔 상황으로 볼 때 ’도마 안중근‘ 역시 틀린 호칭은 아니다. 허나 이 역시도 개인 가정사와 사상에 보다 무게를 실은 호칭이다. 안중근이 행한 거사는 분명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전투의 일환이었으므로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 그러니까 안중근 장군으로 불리는 게 마땅하다.




영웅 안중근 

올 한 해, 연극 <겨울꽃>, 소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뮤지컬 <영웅>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안중근을 기리는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되었다. 일본 희곡작가의 눈으로 본, 감옥에 갇힌 이후 안중근의 사상을 다룬 연극 <겨울꽃>과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 안타까운 실화를 다룬 소설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까지 안중근의 ‘거사’ 외에 다양한 시각에서 안중근과 그의 주변을 조명한 작품들이다.


뮤지컬 <영웅>은 뮤지컬 <명성황후>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문을 연 (주)에이콤인터내셔날의 50억 대작 프로젝트다. 공연 문화 가운데  '안중근 다시 알기'의 첨병 역할을 톡톡하게 하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 역사를 기억하기보다 망각하는 시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두고 왈가왈부 하는 현실에서 안중근을 뮤지컬로 올리겠다는 기획사의 결심에는 장단점이 있다. 


한류스타 출연으로 일본 아줌마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여타 작품과 달리, 독립 투쟁을 다룬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한류스타 출신의 배우가 없다는 점도 “일본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뮤지컬 시장 진출에 촉각을 세우고 추진할 예정”이라는 제작 의도가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해를 넘기지 않고 무대에 올린 <영웅>이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흥행을 전제로 한 만큼, 자칫 <영웅>이 다루는  안중근의 모습에 따라 실제 안중근의 이미지가 잘못 고착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공연을 보기 전에 '정성화의 정중근, 류정환의 류중근'이라는 식으로 배우들의 성을 따서 부르는 게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간 멋도 모르고 의사, 열사 안중근이라 불러왔듯 말이다. 뮤지컬을 뮤지컬로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영웅의 무대
역사적 의미를 떠나서 <영웅>의 뮤지컬 완성도는 어느 정도인가. 뮤지컬의 완성도가 화려한 무대 세트로만 좌우되는 건 아니지만, <영웅>세트는 단조로운 편이다. 극 초반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자작나무 숲 단지혈맹 외에, 도시의 건물로 쓰이는 같은 세트의 반복 사용은 중국과 러시아의 여러 도시를 넘나든 역사적 배경으로 삼기에는 다소 힘이 달린다.


일상적인 중국 거리를 표현하는 대목도 오가는 등장인물이 수가 적고, 마땅한 소품이 없다보니 북적이는 인파 속에 숨는 독립군들의 모습을 간소하게 처리한 느낌이 들었다. 대신 무대를 막으로 삼아 영상으로 처리해 속도감을 높인 추격 장면은 확실히 세련된 맛이 있었다. 일본순사들과 독립군들과의 쫓고 쫓기는 긴박감을 현실적인 구현 대신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한 장면을 보듯 군무를 통해서  표현한 대목도 전체적으로 무거운 데에 비해 다소 이질적이긴 하지만, 느릿한 진행에서 빠른 환기를 시켜주는 효과를 보여준다.


대신, 2부에 등장하는 실물 크기의 기차가 세트와 만주 벌판을 달리는 장면은 <영웅>의 백미다. 하얼빈으로 달려가는 기차라는 설정이 극의 절정으로 치닫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거침없이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가 일제의 동아시아 지배 야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점에서도 초점을 정확하게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영웅과 사람들
안중근의 중국인 친구 왕웨이, 링링 남매, 암살 목적으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한 설희 등은 가상의 인물들이다. 이중 왕웨이는 실제 당시 조선 독립을 비롯해 일제에 저항했던 중국인들 가운데 한 명으로 일본의 고문에 굴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부분도 무난하게 이해하며 볼 수 있다. 다만 안중근을 사랑하고, 우연한 상황에서 일본 순사의 총탄 앞에 몸을 던져 안중근 대신 죽음을 맞는 링링은 좀 작위적이다.

 

극에서는 드러나지 않으나 안중근에게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기도 했지만, 극 내내 영웅다운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역사적 토대를 긴박하게 따라가는 바, 역사적 사실이 하얼빈 거사 전에 링링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상항 예상이 가능하다. 링링의 죽음이나 왕웨이의 죽음은 안중근의 결의를 다지는 의미를 더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사적 관계로 인한 거사의 원인이라는 흐름에서 비켜난 부분이다. 링링을 쏘고 독립군 손에 죽는 와다 형사의 안중근을 향한 독기를 좀 더 살린다면 링링의 죽음이 더불어 부각될 여지는 분명히 있다.
 
설희는 안중근과 대척점에 놓인 이토 히로부미 사이의 연결 고리이자, 이토 히로부미의 인간적 면모를 끌어내기 위한 캐릭터다. 명상황후의 비장한 최후를 기억하는 조선 최후의 궁녀로, 게이샤로 분해 정보를 빼내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접근한다는 설정이 몇 가지 정황을 짜 맞춘 듯한 게 뻔히 보이긴 해도 극 전개를 위해서는 필요한 인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설희가 하얼빈 행 열차에서 암살을 결행했다가 실패한 직후 열차 밖으로 투신하기 전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인간적 애증을 드러내기 전까지, 내내 의문이 들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애첩이 되는 과정이 간단하게 처리된 데 반해, 이후 몇 년간 암살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하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에 비춰도 그렇고, 전개상에도 그렇고, 실패를 해야 하는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토 히로부미의 각별한 애첩이 된 이후 설희의 상황은, 명성황후 시해 장면 재현 등을 통해 설희 결심이 확고한 정도를 보여준 이전 전개로 볼 때, 역시 납득이 쉽지 않다. 


열차 밖으로 투신 하기 전, 한 여인으로서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인간적 애증을 절절하게 노래로 표현하고, 이를 위한 설득 장치로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나 노래에서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그들 사이의 애틋함이 역사적 무게에 눌려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영웅 VS 반 영웅
이토 히로부미. 극이 하얼빈 거사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상, 안중근과 동격으로 놓은 그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가장 호기심이 인 인물이다. 뮤지컬 <영웅> 공식 블러그(http://blog.daum.net/acommusical/)를 보면 ‘충성심 깊은 군인이며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슨 짓도 서슴지 않지만 1인자의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며 다가온 황혼을 아쉬워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그가 고독한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짐작을 해보자면  설희를 극에 삽입하기 위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혐의가 든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간 이유는 나들이가 아니었다. 대국 러시아와의 대치를 앞두고 동아시아 대제국의 기틀, 만주국의 기반을 닦는 중요한 방문이었다. 그런 자리에 설희의 암살 계획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서도 애첩을 대동했다? 더욱이 설희의 정체가 발각된 이후로도 배후를 캐려는 노력도 없이 자결을 하게 두었다? 설희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하얼빈의 경비 강화 등이 필연이지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무대극이어서 가능한 장치로 죽은 이토 히로부미와 감옥에 갇힌 안중근이 대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 한 짓은 일본을 기반으로 세계열강으로부터 동아시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항변에, 독립군 장군으로 행한 일일 뿐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는 안중근의 대답이 이어진다.


그리고 안중근은 사상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신의 평화론을 펼쳐 이토 히로부미의 평화론을 가장한 군국주의를 지적한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이토 암살의 15가지 이유 등은 영상을 통해, 배우의 진술을 통해 자세히 설명한 반면, 사상가 안중근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임에도 '가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라는 식으로 보편적 평화론 설파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요지는, 러시아의 동아시아 장악 우려에 이토 히로부미와 입장을 같이 하나, 일본의 독선이 아닌 한중일 3국의 공조를 바탕으로 하였고, 그 방안도 막연한 이상이 아닌, 3국 공동 출자 은행 설립 제안 등 구체적이었다. 



 

영웅은 살아날 것인가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역설적 제목의 단편 소설은 '호부견자(虎父犬子)' 소리를 들는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의 삶을 다룬다. 안중근 거사 이후, 일본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안준생의 어렸을 적 삶은 비참했다. 안준생의 형은 일곱 살 때 누군가가 준 과자에 먹다가, 배고파할 동생과 나눠 먹을 심산으로 집으로 가지고 오는 길에 죽는다. 독살을 당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식으로 사과를 하고, 죽음 대신 삶을 택한 안준생은 한때 임시정부의 암살 대상이었다.

 

안중생의 삶은 역사적 환호 뒤에 가려진 단면의 일부일 뿐이다. 안준생을 약재상을 돈을 벌어 그의 아들은 미국에서 의사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영웅의 이야기는 뮤지컬의 장엄한 결말과 달리 감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는 좀 더 많은 부분에 대해 외면했거나 무시했거나 왜곡해왔다. 독립군 가계의 비참한 대물림, 친일파 자손들의 득세는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이다. 일제의 의해 훼손되어 함부로 다뤄진 안중근의 유해는 어디에 묻혔는지도 여전히 찾지 못했다.



거사 이후, 가족의 비참한 미래를 안중근이 짐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안준생에게 아버지 안중근이 영웅일 수 있는가. 이면의 진실 때문에라도 우리가 안중근을 새롭게 다룬다면 보다 촘촘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 얘기들이 현실이 되지 않는 이상 일제 잔재 청산을 비롯해 반쪽짜리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이상,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에서 안중근이 법정에서 자신이 독립군 장군임을 거듭 밝히는 대목은 (주)에이콤인터내셔날이 이 작품을 나름 역사 바로잡기에도 신경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극장 밖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기금 모금’ 배너에 버젓이 의사라고 쓰인 것도 그렇고, 극 도입부 7발의 총탄이 북두칠성을 그리는 인트로 영상은 그렇고  못내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띈다. 실제 안중근은 6발을 쐈고 "나는 일본군국주의는 증오하지만 일본인은 결코 어떤 사람도 미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토를 쏘고 난 뒤 나머지 총부리를 거둬들였다"고 하여 남은 1발은 그의 사상과 맞물리는 중요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안중근 장군 하얼빈 거사 100주년‘은 자칫 몇몇 단체의 행사 그쳤을지 모를 일이다. 창작 뮤지컬이기 때문도 그러하지만 안중근 장군을 비롯해 앞으로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그들이 되살아나길 바란다. 며칠 남지 않은 2010년은 안중근 순국 100주년이다. 내년에는 이 작품이 보다 치밀한 얼개를 가지고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사진출처 -(주)에이콤인터내셔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