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라디오 스타>에 이어서 본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요당시 가수 재기 붐이 일었던 걸까요? 박지윤 씨가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역으로 나와 화제를 모았습니다. 재보수를 하기 전 당시 유니버셜아트센터는 바닥이 경사가 지지 않고 평평해서 관객들에게 '저주받은 극장'으로 두루 욕을 많이 먹었지요.
제 앞에서 찌찌뽕을 하던 연인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머리가 큰 남자와 머리가 조막만한 여자였는데요. 하필 50% 확률로 제 앞에 남자가 앉더란 말이죠. 둘이 애정 행각을 즐기면서 머리가 붙고 떨어지는 동안 뒷자리에서 시계부랄처럼 나 역시 머리를 왔다갔다 했는데요.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제 머리통 크기 역시 꼽을만하다는 것이지요. 제 뒷자리 관객은 또 무슨 죄겠습니다. 결국 1막이 끝나고 맨 뒤쪽 빈자리를 찾아갔더랬습니다. 이제는 공사를 하고 바뀌었으니 이 역시도 옛 추억이라 할 만한가 싶습니다.
요즘 잘 나가는 김원준 씨와 다르게 박지윤 씨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마침 어제 영화 시사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가십이 뜨는군요. 너무 말라서 눈물겨운 모습입니다. 활발한 활동 응원합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 스타>에 이어 어머니와 함께 데이트를 하면서 추억을 쌓은 작품입니다. 비교하긴 그렇지만 <라디오 스타>와 달리 이 작품은 2009년 이후 재공연 소식이 없네요.
클레오파트라(Cleopatra)는 정말 어떻게 생겼을까? 실제로는 미인이 아니라고도 하는데, 그녀가 유명한 게 콧대 운운하는 얘기이다 보니 외모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 일어나지만 알다시피 그녀의 매력은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니 “희대의 요부이자, 지략가로 꼽히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라고 소개가 나온다. ‘희대의 요부 + 지략가 + 마지막 파라오’라… 몰랐던 건 아니지만 새삼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로 수없이 재현되는 이유가 짐작되고도 남음이다.
관심은 역시나 누가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느냐이다. 11월에만 <라디오 스타>에 이어 두 번째 보는 뮤지컬인데, 그때도 김도현 대신 김원준의 <라디오 스타>를 봤지만 의도하지 않게 이번에도 뮤지컬 전문 배우인 김선경이 아닌 가수 출신 박지윤의 <클레오파트라>를 보게 되었다. 그 반가운 마음이야 김원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번에도 좋은 기회를 빌어 어머니와 함께 공연을 즐겼다.
어머니는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와 로마의 정치적인 상황까지야 잘 모르시겠으나, 리즈 테일러 주연의 영화 <클레오파트라, 1963>로 기억하고 계셨다. (클레오파트라로 네이버 검색을 하면 가장 먼저 이 영화 소개가 뜨는데, 이 이름이 들어가는 영화만 15편이나 된다.) 가냘픈 외모의 박지윤이 과연 카리스마 만땅인 클레오파트라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더욱이 2시간 이상 집중해야 하는 뮤지컬이고, 더군다나 11월 29일(토) 저녁 공연은 그녀의 서울에서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공연을 코앞에 두고도 연습에 몰두한 배우들의 군무 소리가 밖까지 들렸다. 한 달 반의 서울 공연 마무리를 열심이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공연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유니버설아트센터에는 처음 들어가봤는데, 객석이 좀 당황스러웠다. 공연과 예식을 번갈아 사용하려고 그런가는 모르지만, 고풍스러운 공연장 전경은 보기가 좋았어도, 이른바 객석의 높이가 일정한 예식장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아무래도 앞 뒤 사람에게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뒷자리는 비어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 모르지만) 운 좋게 뒷사람도 또 빈 앞사람도 신경 쓰지 않은 운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앞자리를 연인이 들어와 채웠다. 여자분은 아담했는데, 남자분의 키나 몸이 꽤나 튼실했다. 하필 그가 내 앞자리였다는 게 문제인데, 무대 1/3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배우 동선을 따라, 혹은 앞 관객이 애정 표현을 할 때마다 내가 극중에서 등장하는 뱀이 된 양 그 양반 머리 움직임에 따라 양쪽으로 고개를 좌우로 왔다갔다 하다 보니 영 못할 짓이었다.
인터미션 때 양해를 구해서 맨 뒤 콘솔박스 옆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행복해하는 커플 잘못이 절대 아니고, 그저 내가 운이 없었을 뿐이지만) 거리감이 확실히 멀어지는 바람에 이래저래 아쉬움 마음이 들었다. 이래저래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빈자리를 찾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객석을 줄이더라도 의자 사이의 거리를 벌리던지, 개선의 여지가 분명해 보였다.
쥬피터와 이시스가 등장해서 막간을 채우고, 극을 연결하거나, 관객의 집중을 환기시키는 등의 다양한 양념 역할을 했는데, 사실 신이라기보다는 등장인물에 대한 여담을 늘어놓는 듯이 보여서 구태여 등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배우들의 군무는 화려한 볼거리이긴 했지만 아직도 동작이 좀 어색하거나, 앙상블 배우 면면에 따라 강약 조절이 맞지 않았고, 낮 공연에 이은 공연인 탓인지 다소 힘이 달려 보였다. (그럼에도 주연 배우들의 두 배 가까이 일인다역으로 등장해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는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박지윤의 클레오파트라는 목소리가 고운 대신에 힘이 좀 달렸는데, 김법래의 느끼한 목소리와 섞이자 삼겹살을 찍은 새우젓처럼 나름 조화롭기도 했다.
공연 앞뒤에서 체코 뮤지컬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화려하고 거대한 무대 스케일 말고도 혹여 클레오파트라의 굴곡진 인생사를 모조리 보여주는 대작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심산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부분이 아닌 전체를 살릴 의도였다면 극 시간을 좀 더 늘리던가, 아니면 한국공연에서만큼은 내용을 줄였어야 했다.
스토리 전개에 급급해 사전 정보 없이는 뮤지컬 공연만으로는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대걔 축약을 하고 신들의 얼렁뚱땅한 설명으로 넘어가다보니 방금 전까지 시저랑 죽고 못 살던 클레오파트라랑 안토니우스의 사랑은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찍은’ 것인양 너무 급작스럽게 보여서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본 <라디오 스타>와 비교를 해보자면, 현대극과 시대극이라는 엄연한 구분이 있어서 단순비교가 어렵지만, <클레오파트라>가 무대와 고증을 거친 의상부터 분장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또 들인 작품임을 분명하다.
하지만 연기보다 노래와 군무에 치중해서 진행하다 보니 관객의 이해라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놓쳤던 게 아닌가 싶었다. 주제가 격인 '난 이집의 왕' 혹은 '난 왕이 될거야'는 서로 비슷한 곡처럼 들리는 데다, 극의 하이라이트마다 계속 부르는 바람에, 클레오파트라의 일관된 권력에의 의지를 보여주는 효과를 주었지만 이집트의 파라오, 시저와 낳은 아이들의 엄마, 안토니우스의 불륜 상대, 자살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그녀의 삶을 너무 단순화한 감이 없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김원준보다 박지윤을 이집트에서 영월을 뺀 넓이 만큼이나 좋아히지만 <라디오 스타>에 점수를 더 주었다. 다만 나와 함께 두 편의 공연을 같이 본 어머니는 무대며, 연기며, 노래며 <클레오파트라>가 나았다고 하셨으니 호불호가 반반으로 갈린 셈이다. “어머니, 무슨 내용인지 아시겠어요?” 궁금해서 묻자, 의외로 정확하게 이야기 맥락을 짚으시고선 “그게 남자 둘이 요부를 만나서 인생 망친 거지, 뭐니” 하셨다. 뭐, 그럼 된 거다. klopatra는 영어 Cleopatra의 체코식 표기다.
사진 출처 :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홈페이지, 흥덕님 블러그 http://30dholic.tistory.com
'음악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제는 용감했다] 봉봉 형제, 금덩어리로 다시 태어나다 (0) | 2008.12.01 |
---|---|
[라디오 스타RADIO STAR] 현실로 뛰쳐나온 라디오 스타 (0) | 2008.11.18 |
[햄릿 월드버전The New Musical HAMLET World Version] 바꾸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0) | 2008.08.21 |
[교복 속 이야기] 누구나 한 번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0) | 2008.07.22 |
[사랑한다면 춤을 춰라_2008 / 2009] 어떻게? 신나게! (0) | 2008.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