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라디오 스타RADIO STAR] 현실로 뛰쳐나온 라디오 스타

구보씨 2008. 11. 18. 17:33
2008년 겨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초연으로 올라간 <라디오 스타>는 제가 처음 본 대극장 뮤지컬입니다. 이 작품을 두고 대극장 공연을 올리기에는 다소 스케일이 작다는 얘기들도 하는데요. 뮤지컬을 거의 본 적이 없었던 저에게는 아주 꽉 찬 공연으로 보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봐서 더욱 기억이 남는 작품이지요. 2008년 이후로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이 작품이 바로  김원준 씨가  재기에 성공하는 첫 발을 내딛은 계기가 되었지요. 작품 내용과 본인 이야기가 얼추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고,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다소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습니다.

뮤지컬 배우로 요사이 많은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면 참 보기 좋습니다. 요새 '잘바'로도 꽤 주가를 올리고 있구요. 아래 리뷰를 보면 (후기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초딩 글 같은데요.) 정준하 캐스팅이 아니고 서범석 캐스팅이라 불만이라는 투로 적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효심이 발로이기는 하나, 내공 깊은 서범석 씨를 모를 때, 철 없을 때 글이라 이해해주시길. 


주말 낮 공연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께서 연극이나 오페라 등 공연을 좋아하시는 걸 그동안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자식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뮤지컬 <라디오 스타>는 어머니에게도 익숙한 ‘스타’가 나오는 데다, 내용 역시 7세 이상 관람(아이들이 보기에는 스타팩토리 씬 등 좀 낯 뜨거운 장면이 있었지만)이 가능할 만큼 이해하기 내용이니만큼 정말 좋은 기회였다. 극장 ‘용’은 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의자나 편의 시설이 불편함 없이 갖춰져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나이 드신 어르신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뮤지컬이란 게, 만만치 않은 가격도 그렇고 아무래도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좀처럼 관람 기회가 적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는 어머니의 첫 번째 뮤지컬 공연으로 기억될 것이다. 좀 일찍 움직였으면 어머니와 국립박물관 관람도 해볼 만했는데, 기회를 뒤로 미루기로 했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으셨다니! 어머니는 또 이 근처로 여고를 다니셨다고 하는데, 참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것저것 부족할 걸 깨닫는 날이었다. 예상대로 어머니는 이날 최고령 관객이었다. 자리를 양해를 구해서 앞쪽으로 잡을 수 있었다. 싫어하는 기색 없이 친절하게 대해준 데스크 여직원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공연이 시작되고 귀에 익숙한 목소리로 영화OST ‘비와 당신’이 들려왔다. 김원준. 어머니는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처음 듣는 노래일텐데 푹 빠져 들으셨다. 한물 간 ‘88년 가수왕’ 최 곤으로 나온 김원준을 어머니는 기억했다. (꽃미남을 향한 나이불문 여심이라니) 분명 사그라졌으나 한 때 가수왕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건 그다. 가수다. 영화에서 박중훈이 이 역을 맡았는데, 88년이라고는 해도 가수왕에 어울리는 외모는 아니다. (박중훈은 실제로 1984년 KBS TV <젊음의 행진>에서 ’대학생 통기타 가수’을 모집할 때 두 달간 강훈련을 했으나 고작 5초만 부르고 나온 일화가 있다.) 

뮤지컬을 볼만한 기회가 많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즐거워 하셔서도 그렇겠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 예술의 전당 공연에 이은 재연인 만큼 영월 시내, 방송국, 동강 근처, 기획사 등 무대 전환도 매끄러웠고(무대 이동을 하기 위해 스텝이 보인 경우는 딱 한 번뿐이었다.) 극 전체를 이끌었던 매니저 역의 서범석을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해 보였다. 또 가수가 극에서도 실제로도 주인공이니 콘서트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이스트 리버의 멤버들이 연기를 할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기자라면 연주를 위해, 음악가라면 연기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게 보였다. 
 
가수와 매니저의 끈끈한 우정을 다룬 스토리가 원체 잘 알려진 탓에 위험 부담이 컸을 텐데, 뮤지컬다운 군무나 새로운 재미를, 아기자기한 무대 연출이 영월의 특징을 잘 살렸다.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이긴 했지만, 영화도 그렇고 스토리가 무난하게 흘러가는 만큼 보강을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휴~ 실망스러울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는 한다. 다행이야.”
“그래, 나도 정말 좋아했는데, 실망스러우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인터미션 때 앞자리에 바로 앉았던 아가씨 둘이 나눈 이야기다. 90년 대 초중반까지 꽃미남 김원준의 열혈 팬이 아니었던 소녀가 있었을까. 당시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랬듯이 그를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좋아하지도 않았던, 그러니까 그는 관심 밖이었다. 김원준/서범식 캐스팅 공연을 일부러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조율하다 보니 왔을 뿐이고, 사실은 어머니가 잘 알만한 정준하가 나왔으면 했다.
 
하지만 이날 공연은 찡한 구석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김원준이 살짝 눈물을 찔끔하는 게 보였다. 다 쏟아낸 후련함처럼도 보였지만, 최곤과 다르지 않았던 삶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서 괜히 좋아 보였다. (앞자리를 주신 직원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저녁 공연을 어떻게 하려고 저리 힘을 다 쏟았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무대극이 영화와 가장 많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이처럼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운 공감대를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라고 본다. 어머니의, 그리고 생각지 않게 가수의 몰랐던 점을 알게 된 공연이었다. *


 

사진 출처 : 뮤지컬 라디오 스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