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국(첫째, 기획/홍보), 이훈진(막내 연기), 이훈제(극작/연출) [사진 왼쪽부터] 삼형제가 만든 (사이좋은 아기돼지 삼형제가 떠오르는 분들입니다.) 스테디셀러 공연 <죽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니, 지금은 대학로에 삼형제극장 죽여주는 이야기 전용관이 있을 정도니까 말입니다. (동화에 빗대자면 큰 형이 벽돌로 지은 집이라고나 할까요?) 이 작품을 2008년에 봤으니 나름 선견지명이 있다고 할지도.
흠.. 그때에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산초 역으로 유명한 이훈진 씨(아래 포스터 참조)가 마돈나 역으로 나와서 정말이지 소극장을 가득 웃음바다로 흔들어 놨습니다. 마돈나 역 더블캐스팅에 남정미 씨도 입담 좋은 개그우먼이시구요. 당시 멤버들이 참 화려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울과 부산 대한민국 양대 도시에서 쉬지 않고 공연 중인데요. 언제 한 번 꼭 다시 보러갈 계획입니다. 써놓은 후기를 보면 참 할 말이 없어집니다. 당시 백수나 다름없는 처지여서 그런가, 뭔가 시니컬한 듯도 하고 그렇네요.
“죽인다. 죽여.”입으로 내뱉지 않으면 의미가 참 아리송하다. 협박일 수도, 자괴감일 수도, 감탄사일 수도 있어, 해석이 극단적이다. 얼굴을 맞대고 직접 듣지 않는 이상 그 본의를 알기 어렵다.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는 기분 죽~이게 재밌는 공연일까, 아니면 기분 축 처지게 돈 아까워 관객을 죽이는 공연일까. 하필 공연을 보러가는 날, 오랜 만에 혹은 난데없이 비가 왔다. 그러고 보니 비도 마찬가지, 미처 우산도 없이 나섰다가 기분 잡칠 수도 있고, 가을 가뭄 끝에 내린 단비라고 좋아할 수도 있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특이하게 ‘두 가지 색깔의 두 가지 반전’을 내세운다. 기본 얼개를 공유하되, 부활팀과 영혼팀으로 나뉜 배우들이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살짝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투 팀의 가장 큰 차이는 마돈나 역을 튼실한 몸매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남자 배우(부활팀, 이훈진 역)인가, 아니면 여자 배우(영혼팀, 남정미 역)인가이다. (성별에 따른 마지막 반전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사전 정보 없이 갔던 터라 부활팀의 공연을 부러 선택한 셈은 아니었다. 또 알고 보니 이날이 부활팀이 프리뷰를 끝내고 정식 공연(시즌 2)을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이 역시도 미처 몰랐던 사항이다.
자살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오프라인에서 유료자살서비스업을 하는 안락사, 뭔가 꿍꿍이를 품고 자살을 하러 찾아온 마돈나, 마돈나가 데러온 사람을 한 번도 죽여본 적 없는 킬러, 레옹. 이 세 사람이 벌이는 코미디극이다. 요즘 들어 자살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는 판이고, 그 수치도 가파르게 상승한다고 하니, <죽여주는 이야기>는 나름 계절 특수(?)를 맞은 셈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로 봐서는 그 영향력이 당분간 죽 이어질 듯도 한데, 아쉬운 건 매표소에서 보이지 않는 그들은 유료관객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연극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을 놓고 죽자는 얘기를 하는 걸까. 설마. “죽지 말고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홍보하는데… 까놓고 얘기해서 희망, 좌절 금지 등등 그런 얘기를 일체 하지 않는다. 허술한 얼개에 황당한 결말을 생각하면, 자살 방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으려는 의지가 있기나 한가 싶다. 방송국 코미티 프로를 보는 인상을 받았는데, 다시 말해 이들이 말하는‘죽여주는’이란 모토는 “웃겨보자! 네가 안 웃고 배기나 보자”는 의미이다. 재미와 감동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선 게 아니라 대놓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해보자는 식이다. 글 처음에 언급한 ‘죽여준다’의 아리송한 의미는 연극을 시작하면서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뮤지컬 버전 '죽여주는 이야기'(2011 / 2012) 포스터
하지만 두어 시간 가까이 웃고 떠들고 말기에는 택한 소재가 무겁다. 게다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도 고민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안락사가 설명하는 다양한 자살 상품은 기발하다기보다는 예측 가능한 자살 방법의 나열 정도이고, ‘미소 속에 비친 그대’라는 상품이 기발해 보이지만 “미친소를 먹고 광우병이 걸리는 방식”운운은 시즌1에서 썼다면 가져오지 말았어야 할 설정이다. 이와 관련해서 약삭빠른 얌체에 거짓말쟁이인 안락사가‘희망교회 집사’였다는 설정도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홍금보를 황금보로 살짝 패러디한 것처럼 만약 대사에도 등장하는 2MB를 겨냥한 것이었다면, 글쎄 좀 더 까놓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뺏어야 옳다.
왜냐하면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안락사의 대사로 처리되는 자살의 이유를 보면 실연, 가출, 인기추락 등 개인적인 부분을 들고 있고, 또 사회적치적인 자살을 전태일의 분신에 빗대어 “자기 자신을 위한 자살이 아닌 자살은 아름답지 않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적(?)인 자살이 아니면 서비스업을 하는 안락사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아니더라도 이미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그분과 그분 주위에서 훨씬 강력하고 입이 확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죽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광우병 운운은 순발력이 생명인 코미디에서 써먹기에는 너덜너덜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죽여주는 이야기>를 쇼프로 취급해도 될까. 그렇다면 인터넷 자살 사이트 회원을 서로 뺏고 뺏으면서까지 돈을 앞세우는 물질만능주의와 자살조차도 남의 도움이 필요한 찌질한 군상들을 꼬집은 블랙코미디?
하지만 돈과 찌질함으로 치환되기에는 자살이라는 게 자체만으로도 파급력이 너무 강하다. 실제 종종 들리는 온라인을 통한 오프라인 자살만 해도, 정황을 떠나 그 속내가 원체 무거우면서도, 또 진지하게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극단 ‘틈’이 정신과 의사들 모임은 아니라지만, 자살에 대한 고민보다는 연극에서 경계하듯이 세태의 흐름에 따라 쉬운 선택을 한 게 아닌가, 라는 혐의를 두게 된다.
단편 영화 죽여주는 이야기 (Suicide Story, 2012). 이훈국 연출, 배슬기, 신담수 주연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원인은 마지막 반전으로 드러나는 마돈나의 여장 비밀을 처음에는“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여장을 웃기기 위한 설정이라고 관객을 속이는 들어가는 것까지는 용납이 되지만 극 전개상 개연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연극 시점 이전의 안락사와 마돈나 둘 사이의 얽힌 관계를 바탕으로 한 실제 만남(공연)이 연극의 핵심 얼개인데, 어쨌건 안락사와 마돈나가 서로 처음 본다는 설정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황금보가 과거 부실한 자살 서비스(아무튼 다시 살아났으니까)를 받은 적 있는 안락사를 속이기 위해 여장을 했다는 건데, 여장을 해서 속인다? 그게 과연 납득할 만한 설정인가?
차라리 복수심에 못 알아보도록 살을 찌웠다는 게 설득력이 있는 설정이겠지만, 그래봐야 안락사가 ‘죽여주는’ 일에 전문가라는 설정에다, 자살 후 시체처리를 겸한다고 한 만큼 서비스가 부실했다는 설정도 앞뒤가 맞지 않고, 이리저리 짜 맞춰 봐도 아쉽기만 하다. 허나, <죽여주는 이야기>가 부조리극(?)을 노린 게 아닌 이상 논리를 따지는 건 시답지 않은 짓거리다. 너무도 많은 걸 포기한 셈이지만‘쿵푸 팬더 + 황금보 + 여장 = 웃음코드’인 게다. 그렇다면 웃음코드는 성공인가? 명품남녀로 이름을 떨친 노련한 개그우먼 남정미와, 어쨌거나 더블 캐스팅인 셈인 이훈진이 그 역할을 해냈을까.
이 연극이 어설픈 설득이나 감동은 아예 접어뒀다고 단정 지었는데, 자꾸만 ‘자살’이 맘에 걸린다. 리플렛의 “자살을 뒤집는 살자”는 얘기이자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죽여주는” 소개가 뻔뻔한 걸까. 극에서도 나오지만 실제 ‘죽고 싶은’ 그들이 자살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 이유도, 또 실제로 동반 자살까지 이어지는 이유도 나름 그들끼리의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자살의 원인이야 만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끼리 모이면 우울함의 제곱근이랄까, 사는 의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이 연극이 정말 역전극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공연 내내 배우는 더위를 참지 못해 (극 중에서는 옷차림으로 봐서 가을 즈음이고, 밖에서는 비가 온다는 식인데) 에어컨을 열댓 번을 껐다켰다 할 정도로 ‘죽을 둥 살 둥’연기를 펼친다. (마돈나가 쿵푸 동작을 펼칠 때에는 저러다 정말 심장마비가 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오늘은 아쉽게(?) 못 봤지만 배우가 공연 중에 코피를 터뜨린 일화도 있단다. (소소하지만 나름 액션극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들이 출출할 때쯤 협찬 받는 음식을 소품이랍시고 내와서 관객 앞에 떡하니 차려놓고 맛있게 먹는다. 딱히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이게 또 사람을 ‘죽인다’. 저녁 8시에 시작해서, 먹기 시작한 게 대략 9시 20분경이니, 한참 뭔가 당길 시간에, 야식계의 지존격인 만두, 짬뽕 등등은 정말 사람을 반쯤 ‘죽여주는’레어 아이템이 아닌가 말이다. (팥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을 판 형 에서의 얘기가 괜히 성경에 실린는 게 아니다.)
극에서도 종종 하는 말이지만 귀신도 먹고 죽은 게 ‘님좀짱’인 거다. 역으로 말해 열심히 일하고, 맛있게 먹는 배우들의 실제이자 극중 상황이 자살을 살자로 바꾸는 우직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배불리 먹고, 시원하게 싸고… 인간의 3대 욕구가 채워졌는데, 자살이 웬 말이냐 말이다. 지들은 수십 번씩 왔다갔다하는 일명‘제4의 벽’으로 관객을 막아놓고는 지들끼리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보면 뭐, 콧구멍만 벌렁벌렁 대다가 약이 올라서라도 먹고나 죽자는 마음이 절로 들겠다는 얘기다. (달랑 한 장짜리 리플렛을 돈 받고 파는 게 수상했는데, 공연장 인근 음식점 할인 쿠폰을 겸하고 있다. 또 먹으면서 도장을 받으면 연극 티셔츠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1석2조다. 그러다보니 리플렛을 버리지 않고 갖고 다니게 된다. 알찬 기획력에 박수를!)
삶의 욕구, 좌절 금지, 이훈진이 그 역을 맡는다. 난, 그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쿵푸 팬더를 흉내 낼 때보다, 에어컨을 끄고 키면서 연기를 펼치다가 허기져서 리얼하게 만두를 먹는 모습에서 꿈틀! 감동을 먹었다. 이 연극이 만약 자살방지효과가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무대를 휘어잡는 역동적인 연기가 아무래도 여자 배우인 남정미와는 다른 매력일 것이다. 뭐, 영혼팀 공연을 못 봤으니 추측이지만 남정미의 포스 역시도 기대된다. (굵은 목소리라 더욱 박력이 넘쳐 효과 만점이나 갈수록 반감되는 고함치기 및 애드립이지 싶은 대목이 좀 많은 점은 약간 다듬을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 연극은 어쨌거나‘죽여주게’웃기는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고 보는데, 내가 이상한 건지, 가벼운 부분에서도 신나게 웃었지만 뭔가 진득한 게 묻어나오는 부분이 북두신권에 당한 마냥, 아침 저녁마다 떠오르면서 실실 웃음이 터진다. 레옹이 다리 위에서 애절하게“씨발년아~”외칠 때는 그 절절하면서도 웃기는 게,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등장인물 중 레옹(박송권 역)은 연극이 시작하고서 반이 지나고서 등장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더 일찍 나와야 한다고 본다. 집사 겸 사이트 관리자나 배우 겸 여장 남자보다 구구절절한 마장동 킬러라는 캐릭터가 제일 탄탄한 만큼 좀 더 비중을 높였으면 한다. 극 중심이자 카리스마 만점인 이훈진도 그렇고, 어디서 이런 알토란 같은 배우를 모집했을까 싶다. 애드립이나 위기 상황에서도 상황을 능청맞게 넘어가는 안락사, 장석진의 훈남 외모가 한 개도 부럽지 않은,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다.
마지막으로, 공연이 부활팀과 영혼팀으로 나뉘는 만큼 각각의 공연 중에 팀 별로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연결 짓는 고리가 넣었으면 한다. 무대에 엑스트라로 등장해 서로 비방하거나, 홍보를 해도 좋고, 뭔가 기대가 될만한 소품이나 사진 등으로 실마리를 남기거나, 이야기를 열린 구조로 해서 두 편이 서로 상충 작용을 할 수 있다면, 관객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을 주면서도, 색다른 기획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안락사나 황금보의 과거 혹은 킬러의 첫 번째 죽이지 못한 실패담이 영혼팀의 이야기라거나 하는 식의…) 공연 전 간략한 설명을 하는 시간도 충분히 활용할 만한 여지가 있다. 생뚱맞은 비유지만 메이저리그 신생구단 템파베이 레이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래저래 극단 틈의 재기발랄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사진출처 - 뉴스컬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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