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2 _ 별이 빛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기간 : 2014/12/16 ~ 2015/06/30
장소 : 미마지 아트센터 풀빛극장
출연 : 승의열, 김민체, 정종훈, 이재훤, 정혜지
대본 : 김정숙
작곡/연출 : 권호성
주최/제작 : 극단 모시는사람들
주관 : ㈜쇼앤라이프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첫 번째 버전을 보지 않고, 두 번째 버전을 보기에 앞서, 잠시 들었던 생각은 영화나 드라마나 대부분 첫 번째 버전이 낫다는 데에 있지 않았다. 그저 앞 서 성공한 버전을 너무 의식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줄거리를 보니 재개발로 동네 경기가 죽자 세탁소에도 불황이 닥쳐 아내는 빌딩청소를 나가고, 고3 딸은 대학 진학 대신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다. 첫 번째 버전보다 나빠진 상황에서 출발이다. 이러나저러나 첫 번째 버전을 보지 않았으니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무대는 실제 동네 골목 작은 세탁소를 그대로 떠다 옮긴 듯 현실적이다. 믿음직하다.
‘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05%를 가져가는 반면 소득 하위 40%의 소득 집중도는 2.05%에 그친다’는 논문을 다룬 기사가 2015년 1월에 나왔다. 갈수록 서민에게 더 고된 현실을 반영한 그래서 대한민국 소시민 대표 가장 쯤 되는 세탁소 주인 강태국이 처한 현실이나 고민은 남 일 같지가 않다. 그의 걱정은 소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 전반의 무기력이나 무력감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데에 있다. 이 와중에 주인공과 같은 자영업자들은 점차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화석화 될 수밖에 없다. 배우 승의열은 오래된 한 폭의 그림처럼 무대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당장 동네 세탁소 사장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1인2역 배우들은 이 작품이 빌린 옷이 아니라 맞춤복이라도 되는 양 호흡이 척척 맞으니 극 전반에 걸쳐 자연스럽고 안정감이 있어 보기 편하다. (요 사이 느끼는 점인데, 자연스러움, 안정감은 연극의 기본이기도 하나,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절묘한 맞물림은 연극배우로 설 자리가 없는 처지하고도 연관이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 극 중 딸은, 과거 젊은 시절 자신이 아버지에게 그랬듯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라고 재촉한다. 프랜차이즈 세탁소로 전환은 동네 골목가게가 편의점으로 바뀌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 와중에 주변에서는 되레 자신을 의지 처로 삼으려고만 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 강태국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연극은 짐작했듯 따뜻하게 마무리한다. 모르지 않았고,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은 심심한 백반 한 그릇 잘 먹은 기분인 듯한데, 자꾸만 아쉬움이 살짝 남는다. 현실감 있는 무대와 초반부 웃픈 상황을 잘 이끌어준 배우들을 두고도 갈등이 생기고, 해결하고, 결말로 가는 중반 이후가 힘이 빠진다. 무능하다고 여겼던 아버지 마음을 새삼 이해하고 깨달았다는 것인데, 자칫 잘못 이해하면 에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중년 버전이 될 수 있다는 게다. 의도가 어쨌든 책 제목 때문에 모질게 욕을 먹었으나 베스트셀러 작가로 떼 부자가 된 김난도 작가도 말하길, 사회구조적 모순을 담은 글을 같이 실을 예정이었다고 했다.
자, 야근을 끝냈는지 새벽녘에 세탁소 문 앞에 손님이 놓고 간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속을 삭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냉정하게 얘기하면 스스로 무능에 자책하다가 인내하고 참아내면서 다시 힘을 내고자 한다. 그가 보여주는 분노는 불같지만 결과는 엉망이 되어버린, 결국 다시 빨고 다려야 할 일거리만 남았다.
시류를 좇지 않는 아버지의 진심이 아들 대까지 이어서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옷 뿐 아니라 삶 자체를 정화하는 공간으로 왔다는 건 알겠지만, 하룻밤 사이 벌어진 해프닝 이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니, 세 번째 버전은 어쩔 것인가? 분노를 터트려 청와대에 화염병이라도 던지게 될까? 글쎄 주인공이 극단의 선택을 한다고 한들 해결될 문제일까? 아니면 딸이 대학 대신 78:1을 뚫고 공무원이 되면 집안이 달라질까? 비정규직을 법적으로 4년으로 늘리자는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은 땡보직인 건 맞지만, 취향이나 의지나 바람과 상관없이 거대한 조직 일부 혹은 관리체계에 속해야 한다는 게 정답인가?
다소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에, 냉정하게 오아시스인지 신기루인지 가늠이 되지 않은 이야기에 위안을 받을 수 없다. 세탁소가 처음 문을 연 2005년과 다르게 더 모질고 황량해진 세상살이에 내 마음이 점점 사막화가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극이 개인차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 봤든 사회에 찌든 탓이 크다.
연극이 결론을 내야할 이유도 없고, 장르로 늘 치이며, 홀딱 벗거나 겁나게 웃겨도 객석이 차지 않는 대학로에서 꾸준하게 작품성을 갖춘 연극을 올린다는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2>가 한국 연극계에 좋은 양분이 되고 좋은 영향을 주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진출처 - 극단 모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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