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동화의 관] 무대는 배우면 족하다

구보씨 2015. 2. 13. 17:57

제목 : 동화의 관

일시 : 2015/02/13 ~ 2015/03/15

장소 : 소극장 시월 (구 배우세상 소극장)

출연 : 황경하, 조희정, 오민휘, 이계영

원작 : 요코우치 켄스케

번역, 각색 : 김문광

연출 : 김영록

제작 : 소극장 시월



가난한 극단의 가난한 연극은 첫 인상이 좋을 수 없다. 기획 마케팅을 따지기 전에, 홍보의 가장 중요한 포스터부터 변별점이 없다. 1950년대 화가 마가렛 킨이 자신의 이름을 찾는 과정을 다룬 전기영화 ‘빅아이즈’에서 봤을 법한 눈이 큰 인물화 형태는 포스터 등 당시 팝아트 대량 생산 이후 필통, 가방부터 일본 만화까지 변주에 변주를 거듭해 흔한 싸구려 이미지에 가깝다.


극중 타국인인 ‘다즈’의 이미지인가 싶지만, 얼굴 형태가 배경인 통일신라시대 당시 여성보다 서양인에 가깝다. 대한민국 현실에서 보면 이유 없이 차별을 받는 타국인 콘셉트가 동남아 여성들을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욕을 해댄다는 필리핀계 한국인 이자스민이 그러하다. 



일본 공연 


 ‘동화의 관’이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들, 동화 속 세계관이 가진 한계를 다룬 작품이 아닌 만큼 적절한 제목인지 잘 모르겠다. 원작 제목(お伽の棺)이 그러한데, 제목만 봐서는 무슨 작품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김갑수 배우가 운영하다가 파산한 이후 시월로 이름을 바꾼 극장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4층에 있으니 관객에게 편한 극장이 아니다. (올라가면 계단에서 대기해야 한다.)


여러모로 소극장 시월에서 올리는 ’극단 시월‘의 작품이 자본을 갖췄거나 홍보기획사를 끼고 올리는 작품에 비해 예비 관객층에게 매력으로 보일만한 장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냉정하게 극단 홈페이지(네이버 카페)가 있으나 그다지 운영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극단 필모그래피를 봐도 내가 보기에 맥락이나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내 취향이 아니다.


지인의 손에 끌리지 않았다면 ‘동화의 관’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극단 소유 혹은 장기대관 극장이라 공연 기간이 한 달 가까이 된다. 마지막 공연을 3일 쯤 앞두고 봤으니 배우들도 지칠 법하다고 짐작했다. 향내로 가득한 무대는 예상했던 대로 단출하다. 의도라기보다는 극단 재정 형편이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좁은 계단으로 세트를 옮기는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고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극단 공연. 촛불로 조명을 대신했다.


향이 꺼지고 조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배우들이 향연을 열기 시작했다. 극과 상관없이 관객들이 차분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켜두었다는 향의 의도와 달리 난 공연 직전까지 오랜만에 만난 동행과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굳이 말하자면 제목과 연관 지어 괜한 사족을 달 수 있는 향을 굳이 피우지 않아도 배우들이 객석을 제압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네 명의 배우, 그중 한 명은 극 초반에 죽고, 한 명은 간간히 등장한다. 겐지(황경하 분)와 다즈(조희정 분)가 펼치는 연기는 과히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열연을 펼친다. 극중 연기가 보이고 나서야 ‘그 배우가 누구지?’를 찾게 되기는 오랜만이다. (스타마케팅은 정 반대로 배역이 보이지 않고 배우만 동동 떠다니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연극의 장점이라고 할지, 좁은 공간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밀도를 미친 듯이 올리는 방식을 종종 본다. 즉 무대 전환이 많지 않고 무대 설정 자체에 집착하듯이 세밀하게 풀어내는 형국이다. 더도 덜도 아닌 소극장 무대만한 일본 산골 오지 가난한 마을의 낡은 오두막을 그대로 옮겨와-왠지 4층 계단도 산골마을다운-그 안에서 소수의 단순한 인물이 펼치는 단순한 이야기를 두로 이 만큼 긴장감 있게 엮을 수 있다니 완성도가 높은 희곡이다. 각자 절박한 입장에 따라 거짓말이 빚어내는 결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1950)에 비유할 만하다.




김영록 연출이 말하듯 “배우, 그 자체로 힘이다”라는 하나마나한 당연한 얘기가 제작 환경이 열악한 극단이 내뱉는 ‘신포도’(의 비유)가 아니라는 걸 간만에 느꼈다. ‘<동화의 관>을 통해 ‘배우’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낌과 동시에 흙속의 진주 같은 젊은 배우들의 탄생도 지켜보길 바란다‘ 는 말에도 동의한다. 좋은 배우들이 아니면 좋은 희곡은 의미가 없다…고 단락을 쓰고 보니 허 참, 기가 막히다. 유치원생도 할 만한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단순한 설정에 짐작 가능한 결말이다. 형식이랄 것도 없고, 이렇다 할 연출 기법을 쓰지도 않았다. 극 중 겐지가 화자가 되어 설명을 하는 대목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봤지만, 황경하 배우는 끊어지는 흐름을 우직한 연기력으로 돌파한다. 모자란 듯 순박하고 착하지만  동물적 본성을 드러내는 산짐승 혹은 노총각으로 연기가 탁월하다. 작은 몸피도 그렇고 순종적이고 가녀린듯 하만 악이 받친 인생으로 독이 서린 다즈 연기를 야무지게 펼치는 조희정 배우도 주목할 만하다.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극단 시월 배우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은 말로 길게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다. 혹독한 겨울 산골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냉혹한 사실과 별개로 본성에 충실한 인물들이 서늘하고 오싹하게, 안쓰럽고 절절하게 객석을 넘나든다. 어머니의 시체를 집 근처 밭에 버렸다는 다소 어수룩한 설정도 그렇고 몇몇 한계는 그대로 연기력 안에 녹아든다. 감정에 충실한 작품은 ‘은혜 갚은 학’에서 따온 익숙한 장르적 한계를 가볍게 넘어선다. 희곡이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와 왜 다른 장르이고, 연극이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환기시켜주는 작품이다.  


과장이 좋은 연기가 아니지만, 연기력이 받쳐준다면 과장이 매우 좋은 연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일본 공연 포스터


사진출처 - 극단 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