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리동물원
기간 : 2014/10/30 ~ 2014/12/21
장소 : 아리랑 아트홀
출연 : 이상희, 김정윤, 홍대성, 이성재, 손서율, 김현우, 이효재
원작 : 테네시 월리암스
연출 : 박정의
제작 : 극단 초인, 극단 사과
후원 : 성북구
극단 초인의 무엇은,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무엇과 비교할 만하다. 이 두 극단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도드라지지만, 극단 이름을 앞에 붙이고 나온 고전을 비틀고 재구성하는 데에 있어 여느 극단과 다르게 손 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조심성은커녕 극단 초인 박정의 연출은 <유리동물원> 연출의 말에서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들의 악마다. 어미의 자궁을 찢고 세상을 항해 걸어 나가라”고 한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암스 작품 가운데 차분하고 애잔한 비극에 속한다. 가족을 두고 나와야 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작품은 가족, 특히 누나 로라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난다고들 한다.
올해 8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한태숙 연출의 <유리동물원>이 그랬다. 아만다 역 김성녀는 김성녀 자체로 한국식 아만다를 보여줬다. 보다 대중적이었으나 기대보다 심심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해석하기 나름이라, 박정의의 아만다는 자식들 손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녀가 보인 집착은 원작과 달리 딸 로라를 하룻밤 섹스 상대 정도로 여긴 아들 톰의 친구 짐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고, 톰 역시 그런 아만다를 결국 쏴 죽인다.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 아슬아슬하지만은 않은 한태숙의 혹은 김성녀의
http://blog.daum.net/gruru/2087
‘다른 작품과 달리 잔잔한 작품 저변에 표현하지 못한 무엇이 가라앉아 있다’는 드라마투르그 서지영 평론가의 분석처럼 짐작하자면, 꾸밈을 제거한 작품의 본 해석은 이러할 지도 모르겠다. 극중 톰은, 그러니까 작가가 되기 전, 젊은 시절 테네시 윌리암스는 얼마나 수도 없이 상상의 방아쇠를 당겼을 것인가 말이다. 민폐 캐릭터인 아만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도 민폐를 끼치기는 마찬가지인 블랑쉬의 훗날 모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블랑쉬는 동물적 본능을 지닌 동생 남편 스탠리에 의해 허위를 간파당하고 파멸에 이른다.
흔히 견주어 비교하는 해석과 박정의 해석 사이 거리가 그리 멀어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에 더 나아가 박정의는 짚고자 하는 부분은 한 가정 내 권력 관계, 혹은 기생 관계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고자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경제대공황은 자본주의가 한 번 잘 갈듯하다가 고꾸라지는 시기였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여기저기 노사분규, 전 세계적으로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대립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화두가 되던 시기다. 하지만 ‘유리동물원’을 보면 그런 혼란과 무관하게 너무 조용하다. 시위가 있지만 잠시 일어나는 흔들림일 뿐이다. 작은 불만의 목소리만 낼 뿐이다. 뭔가 일어나야 할 것 같고 터져야 할 것 같은데 너무 조용하다. 거센 저항이나 몸부림이 안 펼쳐지는 답답한 시간들이다. 저는 그런 점들까지 우리 시대와 너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꼭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극단 초인의 대표 배우 이상희 ‘어느 무명 배우의 슬픈 멜로 드라마, 맥베스’ 연기 장면
정작 아리랑아트홀의 좁으면서도 그리 효율적이지 않은 무대 탓인지, 우화로 꾸민 작품에서는 이런 의도가 잘 엿보이지 않지만, 그의 시대 해석은 유효적절하다. 사실 원작의 지리멸렬한 분위기와 다른 우화식 연출만 봐서는 가족 내에서 점차 커지는 불안 혹은 불만을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려나 삶의 질이나 불만지수는 높고, 자살은 세계최고 수준이라는데 왜 이리 조용한가? 차라리 자포자기해버리는 심정이 이해가 충분히 가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현실로 얘기하자면, 관객이 스무 명 남짓 찾아온 극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들은 더블캐스팅으로 열심히 무대에서 선다. (하필 아리랑 고개에 있는 아트홀은 주위에 이렇다 할 제반시설이 없고, 을씨년스럽다. 선선한 봄 가을이면 모를까, 겨울철에는 관객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다.)
택해 보지 않고, 편한 날짜를 골라 본 바, 극단 초인의 대표배우인 이상희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후배들 공연인 듯하다. 그럼에도 데뷔작이라는데 아만다 역 이효재 배우를 비롯해 로라역 손서율 배우, 톰 역 이성재 배우, 해설자 역 김현우 배우까지 연기가 꽤 ‘초인’스럽다. 배우들 에너지가 넘치는 점은 극단 초인 작품다워서 만족스럽고, 언제고 또 봐도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공간 서울 공연 당시 연습 장면
시원시원한 대신 거칠기도 하여서 직설로 내뱉는다고 해답은 아니고, 또 원작의 아슬아슬하면서 세밀한 불안한 결을 걷어내기도 하여 단순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 말하는 세상 모든 부조리와 결별이라는 해석은 극만 봐서는 알 수 없거나 넘겨짚어야 한다. 또 내 판단에 연극 한 편에서 그 모든 모순을 담아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좀 더 세분화해서 관객에게 던져줘야 소화시킬 수 있다.
“엄마를 벗어나지 못했던 톰이 과거의 영광에만 사로잡혀 자신들을 구원해줄 방문객만 기다리는 엄마를 죽이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엄마를 살인하는 것은 생물학적 살인을 뛰어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모든 부조리, 모순, 잘못된 집착과 애정 등과의 결별이라는 표현이 옳다.” *
사진출처 - 극단 초인, 서울신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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