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만리향 - 고양
기간 : 2014/11/28 ~ 2014/12/07
장소 :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출연 : 김현정, 성노진, 천재홍, 김경남, 김지은, 이성순, 백선우, 이교엽, 배소현, 김효선, 황미영, 문학연, 명인호, 최읜경, 심규현
작가 : 김 원
연출 : 정범철
주최 : 고양문화재단, 극발전소301
후원 : 고양시
사장이 바뀐 건지 주방장이 바뀐 건지 맛없어짐. 그리고 카드결제 한댔더니 짜증내면서 전화 끊음. 개어이없다 ㅋㅋㅋ. 엄청 불친절함. 차라리 딴 데서 먹으세요. (myfi****) 2014-07-16 16:15
인터넷에서 연극이라는 단서를 달지 않고 <만리향>을 검색하면 전국에 있는 중화요리점 <만리향>이 우르르 뜬다. 그중 한 곳의 평가인데, 네 단락 짧은 문장 구조이나 직접 가서 먹었다는 건지, 배달을 시키는 과정이 불만이라는 건지 애매모호하다. 짐작하자면 오래 전부터 알던 곳으로 종종 찾아가던 곳인데, 주인이 바뀌었는지 맛이 예전 같지 않고, 전화로 주문할 때 카드로 한다고 했더니 불친절하다는 의미렷다. 뭔가 동종 업계 사이 오가는 암수 대결의 일부인 듯도 하지만, 아무튼 이른바 ‘모바일 배달서비스’라는 거창하지만 알고 보면 대신 주문해주는 정통 아날로그 콜 서비스의 등장으로 세태가 많이 바뀌기는 하였다.
맛이 없든 양이 줄든, 서민 음식인 중국요리는 고급 청요리집으로 투자를 하거나, 짬뽕 전문점으로 바뀌는 등 점차 변한다. 추억의 상징으로 알던 그곳은 점차 손맛이나 인심을 기대하기 힘든 곳이 되었다. 세상만사가 바뀌고 강산이 변하고, 하다못해 짜장 비스무리한 컵라면만 해도 천오백 원씩 하는 요즘에 전국 3대니 4대니 하는 짬뽕이라는 강호의 평가가 어느 정도 허명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애써 추억으로 혹은 전설로 간직하고 싶었던 심정을 적나라하게 후벼 파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참 세상 각박하다, 싶었다. 뭐, 생각보다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는 중국집 사장들이 잘 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 음식점 가운데 갈 데가 몇 군데나 있을 거냔 말이다.
치사한 방송사 놈들, 전국 싸돌아다닐 정성으로 기업이나 정치인 비리만 파면 대한민국이 이 꼴이겠냐, 싶었다. 그 와중에 질긴 생명력으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골목 상권, 아닌 공연 상권에 <만리향>이라는 중국집 간판이 내걸렸다는 소식을 2014년에 들었다.
‘2014년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 희곡상, 신인연기상 수상’ 연극 <만리향>이 맛집(?)으로 등극하기에 손색이 없는 경력이다. 그리고 단박에 극발전소301의 대표 레퍼토리로 솟아올랐다. 요식업 못지않은, 레드오션 시장인 연극판에서 제대로 한 건 건진 것이다. 극발전소301은 그 유명세를 타고 대학로를 지나 고양문화재단의 적극 환대를 받으면서 분점 간판을 열었다. 재밌는 것이 초연 당시 더블캐스팅이 아니었으나, 분점을 낼 즈음에 대부분 역할을 더블캐스팅으로 나눴다. 극발전소301이 그 만큼 규모가 있는 곳인가 하면, 대부분 요식업이 그렇듯 극단도 그러한데, 소규모 극단을 운영하기도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럴지도 않은 주제에 말이다.
사정을 들어보면 배우들 사정이 있어 빠질 수 있으니 이를 대비해 미리 포석을 깔았고, 고양시 공연부터 새로운 시스템을 접목 시킨 셈이다. 게다가 요즘은 신입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까지 내붙였다. 짐작이지만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이 기세를 타고 제대로 <만리향>를 내세울 요량이 아닌가 싶다.
연극 한 편이 가진 저력이 그러하다. 그러한데도, 숱하게 많은 작품들이 초연만 달랑 올리고, 외면 속에 사라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려나 <만리향>은 얼추 중견 극단에 들어서나 싶은, 기실 코밑에 까뭇까뭇 수염이 돋는 중학생쯤이 된 극발전소301에게는 참으로 고시 합격 후 뿌듯함으로 찾아간 중국집 같은 작품이다.
<만리향>이 좋은 평가를 얻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연출가 정범철의 재기발랄함이야 종종 귀동냥으로 듣고 있었지만, 막상 극단 초기 작품 이후 몇 년 만에 본 작품인데, 이 정도 내공을 갖춘 줄을 몰랐다. 이제 사람들 속을 들었다 놨다 울렸다 말았다 웃기기도 엄청 웃기는 신파극으로 거의 정점을 찍은 게 아닌가 싶다. 입에 오르내리길 신파하면 박근형이었으나, 그의 신파는 보고 나면 참 짠한 만큼 무겁고 씁쓸했다. 이후 김은성이라는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아 얼추 비슷한 정서를 이어가고 있다면, 정범철 연출의 신파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줄타기를 좀 더 과감하게 시도한다.
박근형이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앞세운 완고하고 고집불통이며 집안에는 무심하고 또 바람을 피워 애새끼를 달고 오는 격동의 시절 아버지를 술병에 따른 객사로 보내버리고, 대부분 희생의 아이콘인 어머니를 앞에 세워 형제들 사이 끊으려야 끊을 수도 없는 가족이라는 끈을 겨우 붙잡고 후일담으로만 다루고 있다. 원래 서울을 와본 사람보다 들은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이라고 했다. 적어도 재밌기는 그러하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식들이 그렇듯이 큰 아들만 죽자고 밀었으나 사업에 실패하고, 둘째 아들은 집을 나가 오리무중이고, 딸들은 엄마를 닮아 부지런하지만 뭔가 답답하다. 그 와중에 정신이 모자라게 태어난 딸자식까지 있으니 전형적인 가족 갈등극의 구색을 맞춘 셈이다. 정신연령이 낮은 막내가 마저 홀연히 사라진지 어언 5년, 아버지의 손맛을 이어받지 못한 책상물림 큰 형이 하는 <만리향>은 맛있는 냄새가 만 리는커녕 십리도 못 간다. 그 와중에 길에서 막내 딸을 봤다는 어머니는 치매기마저 있는가, 굿을 하겠다고 나선다.
이러면 정말 사면초가이다. 가장인 큰 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갈 것인가?, 이후는 궁금하면 극장에 와서 봐라. 보면 후회하지 않는다. 엄마아빠랑 같이 와도 좋다.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팀 공연을 봤음에도 환장을 하고 봤다. 더블캐스팅이라고 하나, 이 정도면 어느 팀 공연을 봐도 재밌고, 심지어 다른 팀 공연을 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이 연극이 영리한 데에는 여러 가지인데, 보통 중국집을 배경으로 한 연극하면 등장하기 마련인 몇 가지를 뺐다. 중국요리와 손님이다. 배경이 이탈리아 해변 혹은 아프리카 숲속 음식점이라면 우리가 보고 먹지 않고는 상상할 길이 없지만, 중국집이라면 다르다. 더욱이 골목 어디에나 있을 법한 허름한 음식점이라면 그 맛을 더더욱 알고 있다. 연극에서 요리는 불기도 쉽고, 대사 치는데 먹기도 힘들고, 까다로운 소품이다. 그렇다고 빈 그릇을 놓고 연기하자면 명색이 요릿집 배경이라 아쉽다. 그래서 이 작품은 콩나물국이 나올망정, 짜장면 한 그릇 나오지 않는다.
중국집이 먹고사는 터전이니 그들에게 짜장면 등등 ‘제품’이지 ‘음식’이 아니다. 어머니의 혼미한 정신상태가 부른 긴급 상황은 손님이 등장하는 않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짬뽕 몇 그릇 팔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단역이라도 써야하는데, 자연스럽게 해소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전화 몇 통화 장면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끝이다.
이제 연극은 극 초반 익숙한 공간인 <만리향>을 활용해 가족 관계를 자연스럽게 이어 붙인다. 이후 <만리향>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해 안달이거나, 벗어나고 싶으나 벗어나지 못하거나,벗어나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가족의 애증이 서린 장소로 바뀐다. 굿판 장면은 다소 전체적인 흐름이나 결에 비해 좀 과한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과정이 어쨌거나 막내가 다시 돌아와 비로소 한 가족을 완성하는 대목은 훈훈하다.
이 과정을 통해 아버지에게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요리를 전수받은 진짜 요리사인 둘째가 돌아와 주방을 맡을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만리향>이 손님을 대접할 준비, 아버지의 성격이 지랄 맞든 어쨌든 손님들의 사랑을 받았던 <만리향>으로 되돌아 갈 예정이라는 점을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면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은 미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의 다른 단면을 알아갈 것이다.
관객은 <만리향>이 재개점을 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으므로, 이제 마음 놓고 <만리향>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이 눈과 코와 귀로 요리를 보여주면서 포만감을 채워주지는 않는다. 단무지를 씹어 먹는 정도만 나오니 말이다. 하지만 뭔가 비슷하면서도 각자 추억 속 기억을 되살리거나 채워주는 작품인 점은 분명하다.
국내외를 떠나 요릿집을 중심에 둔 작품으로 가장 우리 정서에, 적어도 고양시민들이 편히 즐길만한 가족 정서에 잘 맞는 수작이다. 자칫 억지 울음 혹은 억지웃음을 자아낼 수 있으나,요리조리 잘 피해 누가 봐도 박수를 보낼 작품이다. 다시 말하지만 음식 고발프로 담당 피디는 알아야 한다. 냉동 새우를 쓰면 어떻고, MSG가 들어간들 어떠냔 말이다. 우리가 중국집을 가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값싼 음식이기도 하지만 진한 중독의 맛, 그 맛을 즐기러 우리는 간다.
주연 조연 단역을 떠나 오랜 만에 극발전소301의 초창기 작품 때 봤던 배우들이 여전히 건재해 반가웠다. 추운 날 더욱 생각나는 작품이다.*
사진출처 - 극발전소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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