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햄릿 아바따Hamlet_avattar
일시 : 2014/10/23 ~ 2014/11/02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배우 : 아스타드 데부, 파르바띠 바울, 황성현, 옥자연, 이경, 김충근, 이재훤, 이미숙, 박신운(박병주), 백유진,
원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각색 및 연출 : 임형택
인도 제작 : Rathi Jasfer
주최, 주관 : 극단 서울공장, INKO Centre
수많은 햄릿이 무대 위에서 주절주절 우유부단하게 고민하다 죽고, 오필리어 역시 덩달아 미쳐 죽는다. 다른 나라 햄릿을 못 봤으니 모르나 한국에서 햄릿이라면 뮤지컬, 연극에서 익숙한 레퍼토리라 조금은 지겹기도 하다. 그래도 햄릿이라면 눈길이 간다. 연극 <라이프 인 더 씨어터Life in the Theatre>를 보면 연극배우로 늙은 선배가 말하길, 배우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역할로 햄릿을 꼽는다. 햄릿을 하기에 연로한 선배는 분장실에 햄릿 대사를 읊조린다.
배우 입장에서 보면 햄릿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배역이라는 데, 정말 그러한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는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의 명대사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 좋더냐?”와 어투가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랑극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비극이라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얼추 통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햄릿을 복수심에 불타는 미스터리 추리물이 아니라 사랑극으로 보면, 햄릿 어머니 거트루드와 삼촌 클로디어스 사이 사랑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족 간 근친결혼이 드문 일이 아닌 만큼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게다.
연극 ‘햄릿_아바따’는 영국을 대표하는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을 바탕으로 한다. 한국의 극단 서울공장과 인도 안무가 아스타드 데부, 가수 파르바티 바울이 함께하는 작품은 인도의 전통 신화와 한국의 전통 예술을 결부시켜 혁신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 연극 ‘햄릿_아바따’를 위해 인도를 대표하는 두 아티스트가 한국을 찾았다. 인도의 전통 춤인 카탁, 전통극인 카타칼라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춤 세계를 개척하며 피나 바우쉬, 핑크 플로이드 등 유명 예술가들과 협업한 아스타드 데부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도 뱅갈 지역의 음유 시인 집단 바울에 속한 가수인 파르바티 바울이 그 주인공이다.
`바람에 취한 자’ `바람을 사로잡은 자’라는 의미를 담은 바울은 인간의 몸에 깃든 신성한 존재와의 합일을 갈구하고, 몸이 신을 모시는 신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신과 인간의 복잡한 교류를 단순하게 설파하며 노래한다. 몸을 신전에 비유해 노래하는 바울과 툭툭 자살 혹은 자살방조 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타살 등등 작품 사이 괴리감이 들 법도 하지만 원작 자체로 욕망으로 피범벅인 작품이니 한편으로 어울리지 못할 이유도 없다.
거트루드와 클로디오스 사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야하지는 않지만 이 연극에서 가장 뜨겁고 몸을 잘 쓴 장면이다. 애무부터 사정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인도 카주라호 힌두사원 벽면에 조각으로 남은 ‘미투나’의 조각과 많이 닮았다. 각각 불완전한 존재인 남녀가 만나 섹스로 완전한 상태에 이른다는 의지를 담은 조각이다. 요가의 나라답게 상상만 했지 엄두를 못 낼 다양한 자세를 새겼는데, 배우들이 나름 잘 소화했다.
미투나의 자유로운 자세와 몸짓으로 인한 분출 혹은 합일의 기쁨은 그 광활한 인도대륙의 웅장한 민속 문화를 모르고 할 말은 아니지만 극중 선보인 전통춤 카탁(kathak)의 손짓, 표정, 발놀림과도 이어져 있는 듯하다. 이 작품을 보고 묘한 이유는 극중 햄릿을 어쩔 수 없이 셰익스피어의 막장드라마답게 불안하고 격렬하며 에너지가 불같이 끌어 오르나, 인도 예술가 둘이 등장하면 착 가라앉는 듯 색깔과 성질이 다른 에너지가 한국 배우들이 남긴 흔적을 지운다.
감싸 안는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뭐를 넣어도 그만인 인도 커리가 그렇듯이 어울리는 듯 내 것으로 만드는 독특한 아우라다. 아무려나 극은 강약을 반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듯 다시 돌아오는 듯 그렇게 흘러간다. 그래서 임형택 연출이 한 “햄릿은 행동을 선택했지만, 그 결과가 승리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육신으로의 햄릿은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하지만, 포티브라스라는 더 나은 미래를 낳은 것이라 볼 수 있다”라는 말은 좀 그렇다. 우리가 알 듯 왕, 왕비, 새 왕, 왕자, 왕세자비의 연이은 죽음은 덴마크 왕가의 단절이고, 그 뒤를 잇는 건 노르웨이 왕자가 되었던 누가 되었던 마찬가지이다.
암울한 비극이지만 숙부가 선왕을 독살하는 방식부터 광대들의 연기로 숙부의 독살을 밝히는 장면까지 내내 진중하고 정석으로 수사(?)를 하는 대신 가볍고 예측하기 힘든 변칙이 난무하는 만큼 작품 전반에 걸쳐 복싱처럼 가볍게 유쾌하게 끌고 간 연출 방식은 장점이다. <두 메데아>로부터 이어진 인연인지라, 무대 앞 물웅덩이, 물 위에 뜨는 양초, 가로로 길게 늘어뜨린 조명 등 그 자취가 엿보인다. <두 메데아>를 볼 때에도 왠지 인도를 비롯해 서역의 향취가 났는데, 카마수트라의 지혜처럼 합일로 완성한 모습을 찾은 듯하다.
재밌는 점은 낯선 한국 대학로에서 연기를 하는 와중에도 자연스러운 인도인들은 몸이 둥글둥글, 서양식으로 보면 비만형인데 반해, 상대적으로 날씬한 한국 배우들은 한국에서 올리는 연기인데도 뻣뻣하거나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오해하지 말 것이 연기를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루 한 번씩 기를 쏟아 관객과 마주하여 몸을 쓰는 연극배우들이 그러하니, 기운이 쪽 빨린 말라깽이 TV, 영화 탤런트 들은 연기가 오죽 어색해 보이는지 말이다. 그냥 내가 볼 때 그렇다는 게다.*
사진출처 - 극단 서울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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