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에쿠우스 EQUUS
기간 : 2014/03/14 ~ 2014/05/17
장소 :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출연 : 안석환, 김태훈, 지현준, 전박찬, 유정기, 차유경, 이양숙, 이은주, 김지은, 노상원, 은경균, 김동훈, 장찬호, 신선관, 권형준, 김태완, 인규식, 김시유
작 : 피터 쉐퍼
연출 : 이한승
기획 : 동국아트컴퍼니, 극단 실험극장
제작 : 극단 실험극장
일전에 <에쿠우스>를 봤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3년 전 일이다. 2010년 1월 즈음, 연신 기침을 터져 나와, 주변 객석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공연 시작 전에도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공연 시작과 더불어 기침이 나오니 미칠 지경이었다. 건조한 날씨, 먼지가 많은 지하 극장, 몇가지 경우의 수가 딱 맞았다. 객석 앞뒤 좌우가 좁아 기척만 해도 신경 쓰이는 극장이었다. 관객 몰입을 제대로 방해한 꼴이다.
공연 도중에 일어서자니 뒷자리 관객들한테도 민폐다 싶다가 못 있겠다 싶어 일어나려는데, 앞자리 아가씨가 뒤로 획 돌아 내 손에 목캔디를 쥐어줬다. 무대 위에서 근육질의 말들이 춤을 추고, 긴장이 한참 오를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운 일이다. 쉬는 시간에 관객이 드문 뒷자리로 옮겼다. <에쿠우스>는 작품보다 미안한 감정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이후 난 습관처럼 껌과 물을 챙긴다.
강태기는 6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알런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극중극을 보여주듯 간결하게 사방 기둥만 세운 무대나 배우들이 무대 좌우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구조를 보니 그때 앨런(정태우)과 다이스트(송승환)이 떠올랐다. 주연은 바뀌었지만 극단 실험극장 중견 배우들은 그대로이다.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는 75년 초연 이후 그들이 세운 작품 해석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강태기,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정태우, 유덕환에 이어 올해 지현준까지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는 늘 알런 역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장르를 떠나 젊은 배우들이 해보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이제는 1인극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한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건 근육질의 몸매가 아니다. 근육질은 코러스로 등장하는 배우들만으로 충분하다. 근육질의 말과 대비를 이루는 깡마른 알런이 작품과 맞는 셈이다. 앞서 정태우는 열연과 별개로 말에 어우릴 법 했다.
故 강태기의 <에쿠우스>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75년도 낡은 포스터와 사진 속에서 57kg을 50kg으로 줄여 불안정한 17살 소년을 연기했다. 정신치료를 위해 약을 먹고, 전기 치료를 받은 뒤 강태기의 멍한 눈빛은 본성을 비정상적으로 거세한 소년을 통해 당시 사회의 억압, 안개가 낀 듯 정체가 불분명한 뿌연 기운을 포착 가능한 실체로 보여준다. 이후 알런은 강태기에 다가가는가, 그렇지 않는가로 나뉘지 않을까. 보지 않고 판단하는 건 웃기는 일이지만 강태기 이후 알런은 왠지 힘이 바진다. 노력한다고 해서 그 역할이 꼭 맞을 수는 없다.
지현준이 좋은 배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실험극장의 산 역사인 이현승이 연출을 맡으면서 작품에 온전히 다가가려고 한 점은 맘에 들었다. 앞서 언급한 연극열전 공동기획 당시 배우 마케팅의 한계에서 벗어나 알런은 깡마르고 헐벗은 알몸으로 연기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알런이 꽁꽁 숨겨두었던 과거를 드러나는 장면인 이상 성기 숨기기에 급급한 연기는 웃기는 짓이다. 사실 굳이 벗을 필요도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에쿠우스는 적어도 몸을 통해 피폐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데에 일정부분 성과를 낸다. 질 메이슨 역 이은주는 <논쟁> 이후 오랜 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좋은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지현준이나 이은주가 성적 호기심으로 가득한 17세로 보이지는 않는다. 배우 역랑 문제라기 보다는 원작이 무겁기도 하지만 덜어내는 대신 늘 무게를 유지하거나 더하는 쪽으로 연출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말이 꼭 근육질 필요는 없다. 조재현은 눈빛이 강렬하다. 두 경우 모두 양날의 검인듯
이해랑예술극장 구조상 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기는 하지만, 앞서 연극열전 기획보다 자체 기획이 나아진 건 분명하다. 무대 배경도 그렇고, 작품 주인공은 알런이 아니라 알런의 사례를 소개하는 정신과 의사 다이스트일텐데, 안석환은 신경질적이고, 경박해 보인다. 그의 연기 특성일수 있지만 맘에 든다. 공연 일정 초반이라 그런지 조급하고, 대사가 입에 익지 않아 안정감이 덜하지만 예민한 정신과 의사-극중 시골의사 이미지는 아니지만-2014년 현대인의 표상에 어울린다.
<에쿠우스>는 코러스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 말은 신성을 띤 존재로 등장하는 만큼, 근육질의 몸매나 세밀한 연기가 중요하긴 하다. 다만 극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암말도 있고, 거세마도 있고, 시골마을 마굿간에 꼭 경주마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반라의 젊은 남성으로 구성한 코러스는 자칫 오해를 줄 수도 있다. 알런이 말에 집착하는 이유가 근육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 켄싱턴 반란 스튜디오(2013.01.11) 에쿠우스 공연
한편으로 주변 역할을 걷어내고, 알런과 다이스트로 2인극을 꾸미면 어떨까 싶다. 작품이 하려는 의도도 그렇고, 여운이 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군더더기가 많다는 생각을 4년 차를 두고 두 편을 보면서 했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알런을 좀 더 지독하게 밀어붙이는 데에 집중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치료 과정 이전에 알런처럼 무엇 때문인지 원인도 모른채 극단을 선택하는 경우가 빈번히, 너무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볼거리 혹은 한국연극의 역사를 되새김질 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사진출처 - 극단 실험극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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