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히스토리보이즈The History Boys] 번안극, 귤이 탱자로 변하는 이유

구보씨 2014. 3. 14. 16:20



제목 :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

기간 : 2014/03/14 ~ 2014/04/20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출연 : 이명행, 최용민, 오대석, 추정화, 이재균, 윤나무, 김찬호, 박은석, 안재영, 임준식, 황호진, 이형훈, 오정택, 손성민

작 : 앨런 베넷

연출 : 김태형

기획/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헐리우드 영웅물을 본 따 만든 제 3세계 영화를 볼 때 가끔 실소가 터진다. 이게 무슨 국력 차별 망언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소년의 한 주먹이 네덜란드를 수몰위기를 구했듯 지구 평화는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뚱뚱해 달리다가 혈압으로 쓰러질 백인들보다는 왠지 삶 자체로 독이 오른 듯 몸이 날렵한 그들에게 더 신뢰가 간다. 아무튼 영웅물 영화의 정점이란 게 휘황찬란한 CG로 도배한 코스튬플레이에 있는데 허름한 가면을 쓰고 진지하게 ‘빠는 척’ 하는 걸 보면 그렇다는 게다. 지구멸망을 누가 앞당기고 있는데 왜 원흉(?)을 그대로 따라하냐 말이다. 그 꼴도 보기 싫은데, 영화 전반에 걸친 어설픔의 인플레라니 이는 쥐똥만한 나라에서 거들먹거리는 독재정권들이 백만장자로 유세 떠는 꼴 아닌가 말이다.

 

연극에서야 그럴 일이 없는데, 의외로 외계인 침략처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 발바닥이 맞붙은 문제를 다룬 작품, 주로 외국 작품을 번안한 작품을 보면서 실망할 때가 있다. 무대, 소품, 의상 등 외연을 그대로 따올 수 있는 무대극이 가진 양날의 검이랄까.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방향성에 관한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무대에 오른 인상을 준다. 입시문제라는 게 그냥 다뤄도 쉽지 않는데, 여건이 딴판인 영국 명문대 입시준비반에 얽힌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조율해서 무대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03년 원작이 영국에서 2006년 브로드웨이를 거쳐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올렸고, 영화(2006)가 나왔으며, 영국인이 사랑하는 영문 희곡 1위(3위 햄릿)로 뽑혔다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교사와 학생 혹은 학생과 학생 사이 동성애, 유럽 특유의 민감한 나치 문제, 학생과 교직원 사이 성관계, 교장과 교직원 성관계를 두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사례 등인데, 한국 교육 현실과 사뭇 다르거나, 관심사가 아니거나,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부분을 어떻게 설득시켜 접목할 것인가 말이다.



 

김태형 연출의 선택은 극중 제2외국어 프랑스어 수업을 프랑스어 대사로 연기하는 등 3시간 남짓 원작에 가깝게 재연하기이다. 극은 영국의 역사, 음악, 문학, 외국어 등 실제 수업 못지않은데, 역으로 보면 영국 극장에서 세종대왕, 청록파 시인, 일본 강점기를 두고 토론하는 식이다. 통할까, 히틀러, 영국 시인은 좀 더 보편성을 띄고 있다고 봐야할까. 모를 일이다.

 

아무려나 연출은 ‘표현보다 체험하게 하는 것, 텍스트가 품은 뜻을 재현하는 데 노력’했다고 말한다. 강요하지 않고 ‘노래 한 소절을, 시 한 스푼을 얻어가기만 해도 좋’다고도 했다. 치열하게 진행하는 작품 전개를 보면 다소 의아한 말이긴 하다. 하지만 작품 난이도도 그렇고, 연출이 그렇다면 그렇게 이해하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내용은 재연하되 극중 상황은 그대로 재현하지 않은 듯하다. 영국 공연을 보면 학생 역을 맡은 배우들은 고도 비만 백인, 말라깽이 유태인, 중동인이 등장해 사뭇 분위기 다르다. 실제 고등학생들처럼 생긴 그들은 옷 입은 모습이며 왠지 땀냄새 푹푹 날듯하게-남고에 이런 학생들 많다-생겼다. 국내 캐스팅을 보면 교복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곱상하게 생겼다. 꽃미남 데이킨을 사랑하는 유태인 소년 포스킨은 원작이나 의도와 다르게 꽃미남이다. 굳이 데이킨에게 자격지심을 갖거나, 집착하지 않아도 좋은 짝(?)을 만날 만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극중 무슬림 흑인 소년 악타 역에 손성민 배우가 출연한다. 그는 굳이 비교해서 보면 다른 배우들보다 광대뼈와 코가 커서 강한 인상인데, 혹시 제작사가 무슬림 역할에 생김새를 감안했다면 정말 웃음이 터질 일이다. 그래봐야 고만고만한 학생들 중 하나로 보이고, 극중 관련 대사가 있어나 싶기도 하여-대사를 놓쳤을 수도 있지만 관련한 에피소드는 없었다-구분이 전혀 가지 않는다. 손성민 배우는 눈이 작아 중동계 무슬림과 거리가 멀다. 다른 밋밋하게 생긴 배우보다 선이 굵을 뿐이다. 잘 생긴 젊은 남성배우들을 등장시킨 전략은 여성 관객들에게 지지를 받은 듯 객석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다.

 

동성애를 다룬 장면은 이래저래 에피소드를 남겼다. 관객 중 일부가 퇴장을 하거나, 불만을 쏟아냈다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주로 단체 관람일 때 그렇다고 하는데, 작품을 보기에 앞서 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포스터만 봐서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설정의 화기애애한 고등학교 분위기이기도 하다. 애정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한나 일러스트의 앙증맞은 그림이 영상을 통해 등장하는 정도이다. 문제는 헥터 역 최형민 배우처럼 평소 드라마에서 봤던 피곤에 절은 만년과장 혹은 보수적인 역할에서 연기가 다르지 않거나, 앞서 말했듯 유태인 소년의 갈망이 와 닿지 않거나 하는 식이다.

 


영국 국립극단 2013년 공연 사진. 히스토리 보이즈 장학사 버전일까. 아니면 영국 고등학생들은 정말 이렇게 생긴 걸까. 

양성애, 동성애가 자유로운 분위기도 그렇고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극중 동성애가 사건이 벌어지는 갈등 요소지만 주요 쟁점이 아닌 이상 배우들이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헥터가 교직을 그만두는 쟁점은 동성애자여서가 아니라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유희를 벌였다는 데에 있다. 데이킨처럼 동성애와 양성애를 오가고, 헥터가 오토바이에서 불알을 만지는 정도는 감안하는-오히려 럿지는 자신을 태워주지 않는다고 불안해 한다-아이들의 인식은 한국의 이성애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다. 앞서 말했듯 그럴 수도 있다. 영국 면학 분위기가 그렇다는 데 뭐랄 게 없다.


문제는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연기는 뮤지컬 혹은 코미디처럼 유쾌하고, 교실 분위기는 한껏 들 떠 있다. 배치, 구도, 구성, 연기, 연출 등은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과 흡사하다. 그러다가 극 말미 졸업을 앞두고 데이킨이 젊은 교사 어윈을 두고 “한번 빨아줄래요?”할 때나 머뭇거리는 어윈의 상황은 관객 입장에서 보면 어색하다. 동성애라 낯선 게 아니라, 사랑 얘기를 하려면 사전 정보를 주어야 하는데, 갑작스럽다는 것이다. 이전 둘 사이 토론을 벌이면서 생기는 갈등을 애써 짐작하지 않으면 그렇다. (...)




사진출처 - 노네임씨어터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