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2인의 성난 사람들
일시 : 2016/10/13 ~ 2016/10/30
장소 : 마지 아트센터 물빛극장
원작 : 레지날드 로즈
번역 : 김용준
연출 : 류주연
배우 : 홍성춘, 강진휘, 남동진, 이종윤, 유성진, 신용진, 한상훈, 현은영, 김애진, 박시유, 반인환, 홍현택, 서유덕
주최/제작 : 극단 산수유
좋은 연극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괜찮은 작품을 볼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결국 좋은 배우들인가 싶기도 한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좋은 배우들의 합일이다. 카메라 앵글과 상관없이 주조연이 동등하게 무대에 서는 점이 연극의 강점이기도 하거니와, 주연 배우 몇몇에 끌려가는 연극에 비해 참여한 배우들이 고루 힘을 보태 합을 이루는 연극이 주는 감흥은 확실히 남다르다.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소극장 공연치고 12명의 배우가 등장하니, 오히려 과하다면 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법원교도관 역할을 하는 단역 배우까지 총 13명의 배우들이 배심원이라는 역할과 극중 만장일치를 이뤄야만 법원을 떠날 수 있다는 설정이 그러하듯 비슷한 비중으로 대화를 나눈다. 최초의 1인이 반대를 하고 나서면서 팽팽한 구도를 점차 쌓아가지만 각자 다른 역할, 다른 성격, 다른 입장이라 초반부터 난삽해질 우려가 없지 않기도 하다. 동선은 어떻게 할 것이며 빠르게 치고받는 대사 가운데 겹치는 대화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러나 제약을 극복하고 완성도를 높인 작품은 내용이나 의도나 결말과 상관없이 꽉 찬 아우라를 뿜는다. 1957년 고전외화를 원작으로 법정 배심원들이 등장하는 전개가 상투적일 수도, 이후 전개가 다소 뻔하게 흘러 지루할 수도 있다. 국내 초연은 아니지만 도전 자체로 모헙이다. 13명의 배우라니, 공연 기간 내내 관리 역시 쉽지 않을 것이며, 결국 어렵사리 올렸다고 해도 소극장 객석을 꽉 채우지 못한다면 여러모로 감당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극단 산수유의 류주연 연출은 이런 우려를 세심함으로 극복한다. 시민배심원들이 유죄와 무죄 사이 만장일치를 봐야만 판결이 끝날 수 있는 상황에서 11대 1에서 1대 11로, 결국 만장일치 무죄를 끌어내는 과정을 매끄럽게 이어가기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저마다 한 표를 가진 동등한 자격의 12명 배역마다 각자 개성을 살리면서 살인사건을 두고 의견을 점차 바꿔나가는 과정을 2시간 안에 관객들에게 납득을 시켜야 한다는 과정 역시과제였을 것이다.
결국 좋은 배우들과 배우들의 개성을 잘 조율한 연출의 능력이 오랜만에 완성도 높은 소극장 연극 한 편으로 돌아왔다. 더욱이 이 연극이 겨냥하는 지점은, 사회문제를 다룬 대부분 연극이 그러하지만, 2016년 대한민국이고 매우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극중 다수의 의견은 곧 소수의 의견에 의해 반강제적인 분위기에 이끌리는데 이 역시 요사이 소수 권력자, 자본가들의 행태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극중 중요한 포인트는 이른바 먹고 살기 바빠 자기 일 외에 관심이 없어 몇몇 이른바 사회 리더들의 판단에 의존하는 대중들의 변화이다. 극중에서는 논리적으로 던지는 의문점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지만, 이는 법정드라마의 특성,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이나 이성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으나 점점 그 속내를 드러내는 바 피로도가 높게 올라간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많은 분들이 실천하고 있지만, 주말 세종로 광장 나들이를 추천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이나, 배심원실을 빠져나가는 배심원 10번-혹은 8번, 익명성 안에서 번호는 중요하지 않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연극 외적으로 보면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현실 인식에 기반을 두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극 안으로 들어가면 그가 이끌어낸 무죄가 자칫 살인자를 풀어주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을 지도 모를 우려이기도 하다. 허나 어떤 대가를 치르든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것이 이른바 불법파업 형태로 권력에 대한 저항하는 방식이었을 때도 그러하다.*
사진출처 - 극단 산수유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카소 훔치기] 저급한 예술가들은 베낀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가들은 훔친다 (0) | 2016.11.05 |
---|---|
[진홍빛 소녀_제3회 종로구우수연극전] 불타오른다, 소녀 (0) | 2016.10.19 |
[그 여자 억척어멈_원로연극제 2016] 한국정서가 잘 담긴 새로운 어멈의 등장 (0) | 2016.06.03 |
[The Internet is Serious Business_두산인문극장 2016] 네트워크 오류 혹은 에러 (0) | 2016.05.24 |
[세자 이선_2016년 인권연극제] 이 말도 저 말도 전해라 (0) | 2016.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