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두산인문극장 2016 모험 -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The Internet is Serious Business
일시 : 2016.05.24 ~ 2016.06.25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출연 : 박찬호, 박기원, 이정호, 이동영, 임정희, 강병구, 박근영, 김효영, 박민우, 박하늘, 정양아, 최문석, 곽동현, 박하, 최지연
작가 : 팀 프라이스 Tim Price
번역 : 권혜림
드라마터그 : 장해니, 전성현
연출 : 윤한솔
기획/제작 : 두산아트센터
“질문이 없으면 관객과의 대화를 이제 그만 할까요?” “예!” 큰소리로 대답을 하고 급하게 나가는 그녀를 두고 다른 관객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예의 없게…. 하지만 질문과 대답이 공허하게 오갔고, 어색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억하기로 그녀도 질문에 동참했었다. 질문 수준이 어떠했건 그녀는 남들이 침묵할 때 나름 역할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작품을 보고나서 채 이해가 되지 않거나 납득하기 어렵거나 더 복잡해진 심정이 풀릴까 싶었던 자리치고는 싱겁게 마무리가 되긴 했다.
그러나 네트워크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정보)를 얻고 바로 로그아웃하는 방식이 익숙한 공간으로 꾸민 이상 그녀의 행동은 극과 안성맞춤이다. 침묵하면서 의견을 내지 않는 다수의 심정을 알아야 될 이유도 없고, 지엽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말이다. 참 어나니머스하지 않은가.
그간 스페이스111의 공간이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봐왔다. 기획 작품의 관객 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아트센터 정책에 구현하기에 무대가 좁기도 하였다. 이 작품에서 본 이른바 가상의 네트워크를 현실로 끌어온 듯 의자를 흩뿌리고 관객과 배우가 섞여 각자 자유로이 앉을 수 있도록 배치한 구조는 개중 꽤 그렇듯 하다. SF영화나 만화의 한 장면처럼 인상적이다. 어나니머스(Anonymous) 엠블럼을 보면 몸은 있으나 머리가 없듯 리더가 없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혹은 공동의 공평한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편한 공간은 아니다. 단 차이가 없어 앞 관객인해 시야가 방해되거나 사각이 생기는 배치 때문만은 아니다. 동선이 어나니머스의 특징이 그러하듯 자유롭게 치고 빠지는 듯하나 배우나 옆에 앉은 관객 사이서이 동선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결국 좁은 무대 중앙 외에 허비하는 공간이 심하다. 마당놀이식 극장 구조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린 만큼 쉽게 공감대가 형성될 때 유효한 구성인데, 이 작품에서는 작품 외적으로 소극장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의도 외에 공감대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한편으로 일간베스트나 메갈리아로 통칭되는 극단적 주장을 담은 사이트가 사회문제가 되어 뉴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데다, 스마트폰을 24시간 끼고 사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어나니머스 변천사를 담은 연극은 익숙한 패턴일 지도 모르겠다. 드라마터그 전성현은 이들의 일련의 행동을 영웅서사라고 하지만 그보다 애초 만화·애니메이션 게시판인 포챈(4chan)이 모태 역할을 했듯 가상의 게임서사라고 보는 게 맞다.
이 둘 사이 차이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목적 혹은 가지관의 무게일텐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보다 더한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돈보다 재미를 택한 그들의 행보가 영웅일 수도 있을 것이나, 돈과 재미가 서로 상반된 가치가 아니니 영웅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극중 등장하는 18세 소년 제이크는 보석으로 풀려났고,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만큼 이후 행보를 보면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영웅서사에 충실한가. 흔히 유저가 동일한 게임 내에서 여러 영웅을 키우듯 진영을 넘나들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1인다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나니머스가 집단지성이라는 의미로 개별성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걸까. 극 초반과 후반부를 제외하면 복장에서 보듯 인터넷에서 오가는 익명성에서 정체성을 단정 지을 정보가 없다. 극중 노래 가사로 나오듯 여자인척 하는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다.
가상에서 익명이 보장되지 않는 한 그들의 행동반경은 제약이 있고, “고작 트위터 계정을 털 뿐.”이라는 현실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웅이 아니라 ‘과장이 만들어낸 실속 없는 허세’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극중에서도 나오지만 룰즈섹(LulzSec)의 리더 사부(Sabu)가 2011년 6월 FBI에 의해 검거된 이후, 뉴욕의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무직자이자 두 아이의 가장인 29살 청년은 어나니머스와 룰즈섹의 주요 단원에 대한 신원을 FBI에 밝혔고, 약 9개월 간 FBI에서 해킹과 시스템 소프트웨어 보안 업무를 담당했다. 어나니머스 예가 아니더라도 가상이 아닌 현실 세계와 조우했을 때 나약하고 순응적인 모습은 낯설지 않다.
북한 해킹 사례로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들의 얘기를 어떻게 희곡으로 썼고, 또 연극으로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서양 고전 재현 혹은 변주에 충실한 연극계에서 따끈따끈한 신작, 것도 시의성을 담은 동시대 신작을 올리는 작업이 두산아트센터 기획의 남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아날로그와 먼 정서를 가진 이들의 얘기를 가장 고전적인 소통 방식인 직접 몸으로 표현했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작년 스페이스111에서 윤한솔이 연출한 <1984>를 떠올려보면 지하 소극장을 음침한 공간으로, 조명의 적절한 통제로 작품의 암울한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드러냈다. 소설이나 여타 다른 매체를 통해 상상하거나 봤던 <1984>보다 훨씬 짙은, 비유하자면 배트맨 영화 시리즈 중에 ‘다크나이트’ 버전에 견줄 만 했다.
<인터넷 이즈…>는 윤한솔 연출이 작가의 의도를 따르려고 했다는데, 아무려나 작품을 확실히 휘어잡고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솔직히 네트워크 공간을 구현(했다고 보는)했다고 하나, 의상이나 인터넷 용어를 새긴 판을 소품으로 들고 연기하는 동안 의도치 않게 아동용 특촬물 코스프레 분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빙으로 구분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은 재밌는 아이디어지만 더빙 외화처럼 뭔가 따로 노는 듯하다.
무대, 영상, 의상 등등 다양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넘쳐나지만 비빔밥에 참기름이 빠진 듯 중심으로 잡아주는 뭔가가 허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연극을 보다가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원작 희곡을 구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원작이 나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지만 걷어내고 보면 좀 더 명확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싶다.
연극이 정보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연출이 연출의 말에서 툭툭 던진 몇 가지 정돈되지 않은 인용구들을 통해 대충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논의 안으로 관객을 끌고 갈 건 인지에 대한 대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컴퓨터 해킹을 정치적, 사회적 투쟁수단으로 사용하는 핵티비스트(Hacktivist)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질문했다면서 이를 전달하겠다는 게 이 연극의 의도라면 ‘수단’이 논의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건 ‘칼’ 한 자루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인터넷에 비난과 비방이 오가는 우리 사회에서, 선거철마다 국가기관이 대놓고 언론 조작을 해대는 검열과 감시의 사회에서 어나니머스의 일화는 통해 던지려는 질문은 다소 앞선 듯도 하고, 덜 익은 듯도 하다. 스스로 작년 <1984>가 낫다고 보는 데에는 단순히 연출의 완성도만을 두고 판단하는 건 아니고, 어떤 화두가 더 와닿는가에 좀 더 방점이 있지 않나 싶다. 두산인문극장2016을 관통하는 주제인 모험이라는 점에서 인터넷이야말로 그 대상으로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상이 아닐까 싶어 화두로 적절했다고 본다.*
사진출처 -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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