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이 사를 지배할 때
일시 : 2016/01/14 ~ 2016/01/17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박문지, 김수안, 정새별, 염문경, 김시아, 권형준, 이다정, 박창순, 조정문, 류혜영, 임주환
작/연출 : 박 웅
제작 : 극단 파랑곰
후원 : 서울문화재단
극중 천교교주가 무술을 모르는 한낱 서생 위청운에게 무술을 가르치기에 앞서 묻는다.
“내가 내딛는 발 앞으로 귀뚜라미가 뛰어들어 죽었다. 누구의 잘못이냐?”
“나입니다.” “아니다.”
“귀뚜라미입니다.” “아니다.”
”둘 다 잘못입니다. “ “아니다. “
”둘 다 잘못이 없습니다. “ ”아니다. “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교주가 내내 부정하는 동안 위청운은 토끼뜀을 뛴다. 답을 구할 때까지 그의 뜀뛰기는 계속 이어진다. 화두인 듯 대화는 극중 답을 알려주지 않고, 오로지 위청운이 무림 최고 경지의 경공술을 익혔다고만 전한다.
답은 무엇일까? 천교의 교문이 연극 제목인 ‘생이 사를 지배할 때’로 시작해 ‘모든 것은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끝난다. 짐작하자면 세상만사 하늘에 달렸으니 걷고자 하는 의지와 귀뚜라미가 뛰려는 의지는 무관하나, 선하든 악하든 의지는 과욕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고로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비워야 몸이 가벼워지고 몸이 가벼우면 경공이 절로 따라온다는 의미가 아닐까.
무림인이 아닌 위청운이 무술을 배우는 데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죽자고 뛰는 것이다. 그렇게 경공술과 약간의 내공을 얻는 위청운은 그럼에도 날고 기는 정파와 사파의 혈투가 벌어질 한빙동에 과감하게 발을 내딛는다.
극중 위청운이 처한 상황은 수십억 제작비를 들인 뮤지컬부터 배꼽 잡는 코미디에서 영하의 날씨에도 화끈하게 알몸 연기를 펼치는 100곳이 넘는 문파가 난립한 대한민국 공연의 무림의 일번지에 막 발을 들여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으로 이르바 NEWStage에 막 막을 올린 ‘생이 사를 지배할 때’를 비롯해 총 3편의 신인 연출가 무대와 엇비슷하다.
혹시나 풍문이 전하듯 백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무술의 귀체(貴體)를 타고나 단 한 번에 내공 단련에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지만, 극중에서도 그렇고 연극판에서도 그런 방법은 없다. 위청운처럼 화려한 초식에 매달리지 않고 우선 경공 한 가지라도 죽자고 파는 것, 연극도 그렇게 인정을 받고 박수를 받고 차차 내공과 외공을 쌓아가야 한다.
하지만 극중 위청운은 그 욕망을 누르고, 경공을 갖췄으나 정작 연극을 쓰고 연출한 박웅은 그러하질 못했다. ‘대한민국최초순수무협극’이라는 타이틀은 NEWStage와 어울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극중 정파와 사파를 모두 무릎 꿇린 절대고수 대범천왕 위진악 정도가 아니면 편집, 가공, 과장과 Wire와 CG가 필요한 무술 장면을 무대 위에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무협이 단순히 가오, 즉 허세만을 보여주는 쇼케이스가 아닐지나 무협이라는 화려하나 불보다 뜨겁고, 얼음보다 차가운 재료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온몸을 흉터로 도배한 무림고수들처럼 못지않은 경험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
무대에서 최고의 무술 미학을 선보인 연극 ‘됴화만발’(2011)의 높은 완성도 뒤에는 조광화 연출/각색과 정승호 무대디자이너를 비롯해 무림방과도 같은 전문 살수들이 있다. 이후 어쩌다 활극을 봐왔으나 ‘됴화만발’의 아류 정도에 불과했다.
젊은 배우들이 검을 다루는 데에 서툰 부분은 연습으로 극복할 부분이나, 2시간 넘도록 쏟아내는 수많은 대사에 버거워하는 부분은 배우들 보다 작가이자 연출인 박웅이 욕심을 버리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데에 기인한 탓이다. ‘됴화만발’에서는 중극장 무대가 아예 위아래로 들리고, ‘조씨 고아’(‘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이 아닌 다른 작품)는 뒷벽에 영상을 화려하게 쏘아대는데, 이 작품은 소극장을 그나마도 네 부분으로 나눠 쓰고 있으니 동선이 나오기가 힘들다.
허나 기존 질서와 관습을 타파하고 세상에 새로운 정의를 불러일으킨다, 는 무협 정신으로 발을 내딛었다면 이 정도 배짱이 필요하기도 하다. 언제까지 입으로만 떠드는 이념타령, 세상타령, 사랑타령만 연극이 되란 법이 있느냔 말이다. 어차피 관객과 연극인은 오월동주인 게다. (연극인 사이트 관객들의 인색한 별점을 보라.) 3D, 4D영화가 판을 치는 시대에 연극 무대에를 보며 구시렁대는 데에는 또 그만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 기회로 와신상담하여 권토중래하길 기대한다.
극 절정에 이르러 모든 음모가 드러나고 한때 사매지간이었으나 원수로 만난 정파 진묘화와 사파 은초희 사이 절대 고수의 대결을 구역을 나눠 배우가 검기를 구현해 묘사한 장면은 좁은 무대를 아주 잘 활용한 탁월한 연출이다.*
사진출처 -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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