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상업무지(無知)컬 두근두근 내사랑] 맘만 먹으면 사랑 따위

구보씨 2015. 11. 11. 16:21

제목 : 상업무지(無知)컬 두근두근 내사랑

일시 : 2015/11/11 ~ 2015/11/15

장소 : 혜화동1번지

출연 : 강지연, 김경일, 박미르, 양정윤, 윤성호, 이창현

작가 : 김수정, 김연재

연출 : 김수정

제작 : 극단 신세계


 

소설 잡지 악스트(Axt) 창간호(2015.6)에 실린 인터뷰에서 소설가 천명관은 ‘연극계의 경우 이제 지원금 없이는 공연을 하려고 하지 않아. 국악계도 마찬가지고. 무용이라는 것은 대학에만 존재하는 것이고. 이런 것을 보면 그래도 문학은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 정부에서 주는 창작지원금과 지원금 성격의 상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면, 무엇보다 처신이 중요한 예술이라면, 예술가의 최종목표가 대학교수라면 그런 게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예술계 현실을 냉정하게 짚었다. 99% 맞는 말이지만 천명관 스스로 교수를 할 마음이 없듯, 관객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그렇지 않은 극단들도 있다. 이를테면 극단 신세계이다. 물론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지원 받을 만하면 받는 거다. 쪽팔린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혜화동1번지

‘상업의 사전적 의미는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를 통하여 이익을 얻는 일입니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상품, 상업극을 만들어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상업극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탐구 했습니다. 부디 잘 팔려서 오픈런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하략) 그런데 여기에 더해 전통 있고 유서 깊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존나 실험하고 예술하기 싫다는 내부고발(?)인지 양심선언인지가 나왔다. 

 

기획의도를 보면 괜찮은 작품으로 오픈런을 꿈꾸며 단원들 월급도 꼬박꼬박 주고, 가끔은 찌개 아닌 삼겹살이나 차돌박이로 뒤풀이도 좀 하고, 세트를 그럴싸하게 꾸며보기도 하고 싶은 눈치다. 잘 되면 전용극장도 하나 있으면 좋고…. 요런 소박한 소망을 담아 [두근두근 내사랑]이 5일 동안 무대에 올랐다.

 

허나 대학로에 나름 어깨 힘 좀 준다는 상업극이 없는가, 하면 없지는 않은데, 흔하지는 않은 듯하다. 엇비슷한 꿈을 꾸며 벗는 연극으로 선점을 한 극단부터 거리에 눈 대신 설탕을 뿌린 듯 달달 로맨틱코미디를 한 극장 걸러 한 편씩 올린다. 사이사이 개그맨을 꿈꾸는 웃음사냥꾼(?)들이 배꼽을 잡는 코미디도 만만치 않다. 짐작하건데 상업극이 대학로 지분을 51%이상 은 차지하지 싶다. 그런데 그들 중에 대박 성공했다는 얘기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망했다는 소문은 흉흉하게 들린다. 포스터는 참 로맨틱하고 웃음이 끝이지 않고 달달한데 현실은 쓰디쓰다. 로맨틱코미디는 영화가, 막장드라마는 티비가 양분해서 가져갔다. 그러니 상업극으로 돈을 벌기에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게 아닌가? 차라리 카페를 차리거나 기획사를 차리거나 과외를 하거나 공무원을 준비하거나,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하여 늦었지만 상업극으로 첫 발을 축하해, 라고 하기가 어렵다. 아무려나 공연으로 돈을 벌려면 통계로 보나 추세로 보나 뮤지컬이 대세다. 것도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춰야 가능하지 어쭙잖게 올렸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대학교 연기학과 연습실보다 작으면 작았지 크지 않은 극장 혜화동1번지에서 뮤지컬이라니 코미디다. (그런데 기적처럼 평일 비가 오는 날씨에 좁은 객석은 만석을 이뤘다. 10평 객석이지만 간이 의자를 깔아서 10평 좁은 무대가 더 좁아지기도 했다. 극단 신세계에 대한 기대이거나 한예종 선후배들이거나, 난 전자이다.)

 

게다가‘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가 쌓아 온 이력이랄지 상징적 의미가 상업극을 하기에는 께적지근하다. 연극의 순수성 혹은 본질을 고민한다는 이 곳의 모토는 자체로 낡았다면 낡았고, 진부하다면 진부할 수 있다. 상징적 의미 따위 굶어죽게 생겼는데 무의미할 수도 있다. 아무려나 ‘상업적 연극에서 벗어나 연극의 고정 관념을 탈피하여 개성 강한 실험극’을 올리겠다는 암묵적 금기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동인 6기에 이르러 깨진다. 1993년 혜화동1번지 출범 당시와 2015년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과 쾌속 인터넷과 롯데리아 천원 커피와 편의점 도시락이 있지만 다들 살기 힘들어졌다고들 한다.

 

심지어 사전 검열까지 한다니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식이다. 동인 가을페스티벌 주제를‘상업극’을 꼽으면서 하는 말이 사뭇 도발적이다. ‘감시의 내면화를 조장하는 모든 검열에 반대한다.’이 문구는 공안시절을 향수가 물씬 풍기는 요즘 공연 사전 검열을 겨냥한 게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동인이 이어져 오면서 고인 혜화동1번지의 성향에 대한 반발일 게다. 그렇다. 검열에 반대를 하려면 모든 검열에 반대를 해야 한다. 입맛에 맞춰 골라 먹는 식의 반대는, 제 3자인 관객이 보기에 더 우습다. 

 

알게 모르게 술자리 얘기와 공식 발언이 생판 다른 정치인들처럼, 장삼이사들도 그렇다. 그리고 검열을 반대하려면 국가 지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데, 벼룩의 간만하든 웅담만하든 지원 없이 연극을 올리기란 참으로 힘들다. 관객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고, 나처럼 다 아는 얘기 풀면서 대충 얼버무리는 식이다.



 

혜화동1번지 6기

그래서 극단 신세계는 정말 지금껏 해왔던 실험극 울타리에서 가뿐하게 벗어났는가? 연극 올리는 자체가 실험이고 모험인 시대, 더 이상 응답하라 시리즈의 카스텔라와 같은 낭만 따위가 적용되지 않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2015년, 상업극의 전환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가?

 

6기 동인의 6편 가운데 꼴랑 1편만 보고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개중 상업극으로 대박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몇몇 작품은 상업극을 차용만 했을 뿐이다.되레 전보다 더 독한 작품을 올렸다고들 한다. 관객 한 사람으로 그간 혜화동1번지 동인들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봄에 연‘총체적 난국’시리즈도 시기적절했고, 8월 ‘세월호’ 기획은 여전히 진행형인 세월호 사태의 의미를 상기한 거의 유일한 공연 기획이었다.

 

지원체계를 벗어나기 힘든 연극 생태계에서 검열에 대한 반발은 양날의 칼 같은 것이다. 지원줄을 쥔 위원회가 정치적일수록 지원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 예술인의 1인 시위 혹은 성명서가 씨알이 먹힐 리 없다. 그러나 세상에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공돈이 있던가. 혜화동1번지 동인들이 지원 따위 흥! 덜 얽매인 이들이 시대를 상업극으로 비틀음은, 어쩌면 단결투쟁해도 모자랄 시기에 내부를 향해 칼을 돌리는 듯한 제스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다망상일 수도 있지만 의미를 확장하자면 국공립극장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한결 나아진 환경에서 연극을 올리는 이른바 중견 연극인들이 시대를 외면하거나 외면에 동의했거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극의 본질, 예술성, 작품성, 완성도 운운하는 자체에 대한 반발이자 풍자라고도 봤다. 요즘 국공립극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공연을 올리는 중견연출가들이 혜화동1번지 동인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혜화동1번지를 향한 이들의 상업극으로 전환 혹은 도발은 선배들이자 동시대 시스템에 젖은 연출가들에 대한 일침이다. 이도저도 아니면서 폼이나 잡느니 차라리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솔직하고 순수하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지만 극단 신세계 구성원들은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극을 하든 시스템이 낳은 자식들이라 나름 사회에서 엘리트들이기도 하고, 예술인 칭호를 받으며 동시대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는 처지, 아니 위치에 있다.

 

하여 이런 시도에 박수를 보내지만, 뚝심 있게 치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제작비가 후한 국공립극장 제작 기회는 상상력을 근접하게 재현할 수 있는 자체로 연극인이라면 누구라도 욕심을 낼 무대이다. 선배들이 이제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도 되었다. 극단 신세계의 작품을 중극장 이상 좋은 무대에서 볼 날이 머지않길 바란다.



 

무지(無知)컬

<두근두근 내사랑>은 상업 무지(無知)컬이(라고 한)다. 무지는 ‘1. 아는 것이 없음 2. 미련하고 우악스러움’을 의미하는 명사다. 청춘로맨스로 시작해 익숙한 막장드라마에 걸쳐 전생을 지나 남북분단 문제까지 자유로이 진단하고 넘나드는 작품은 미련하고 우악스럽고 유치하다. 하지만 이들이 차용한 것들은 연극, 드라마,영화에서 4대강 큰빗이끼벌레처럼 상업 장르로 성공을 위해 자리를 지키는 클리셰다. 엇비슷한 상업 뮤지컬 자체가 무지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비꼼인가.

 

티비 드라마에서 청순하고 착한 여주인공은 더 이상 참고만 살지 않는다. 청순녀들의 악녀 연기를 두고 열연이라고들 엄지를 치켜세운다. 모델 비슷하게 팔등신의 잘생긴 남자주인공들은 연기도 그렇고 역할도 그렇고 그냥 등신이다. 악녀와 등신이 만났는데, 알고 보니 어릴 때 헤어진 친남매였다던가, 이복남매라거나 할 때 사람들은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자극적일수록 드라마에 몰입하고 그 조합을 사랑하게 된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나 <나무빠리로망스>(2013)를 비롯해 설핏 광기를 드러내는 배우들 연기가 상업극의 전형적인 코드와 만나 독이 바짝 오른 드라마의 절정을 선보인다. (만약 오픈런이 실현된다면 배우들의 성대 및 체력을 지키기 위해 필히 더블캐스팅을 해야만 한다.) 김치 싸대기를 날리는 순간, 작은 극장 안에는 젓갈 내음이 퍼지고, 알게 모르게 고춧가루가 관객들 얼굴에 튀며, 배우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들 미처 닦고 지우지 못한 김치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쯤 되면 웃기다고 깔깔깔 대기도 어렵다. 허..허..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이런 악다구니를 보면서 어떻게 웃으란 말인가. 




이 상황은 대학시절 여자 후배를 떠올리게 한다. 절친 동기 둘이 방 하나를 구해 자취를 시작하였는데, 인기가 많은 A가 남자를 사귀었다가 헤어졌다가 금세 다른 남자를 만나는 통에 툭하면 방을 비워줘야 했던 솔로녀 B가 하루는 술에 만취해 방문을 박차고 들어가 자신의 더블 침대(동기와 같이 쓰는 것이지만) 위에서 뒹굴고 있던 커플을 향해 “나도 맘만 먹으면 연애할 수 있어! 내가 쟤보다 몸은 더 좋다구!” 울부짖으며 옷을 찢었더랬다.

 

황당하면서도 웃긴 장면이다 싶지만 알고 보면 슬프고 괴로우며 절로 숙연해지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두근두근 내사랑을 보고 있자니 10년도 지난 후배의 이야기가 오버랩 된다. 몇 년 전에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까맣게 잊었던 일이다. 맞는 비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안 해서 그렇지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니들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이 감히!’라는 의지가 엿보였달까. 그렇다. 가끔 본때를 보여줘야지 안 그러면 변두리 단칸방(?)에서 공연한다고 우습게 보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는 화염병이라도 들고 나서도 본때를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 광고탑에 올라가고, 휘발유를 바르고, 배를 가르고, 몸에 불을 붙이고, 차를 타고 돌진해도 좀처럼 알아주지 않는다.

 

전통이니 시대의식이니 형식이니 따지는 게...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의지는 작품으로 구현되었을 때 의미가 있지, 팸플릿 포스터로 남는 무엇은 아니다. 여태 혜화동1번지 동인으로 극단 신세계를 봤다만 언제까지 동인을 할 일도 아니고, 하란 법도 없다. 흩어지고 만나면서 이합집산을 할 것이다. 다만 이 바닥에 있으면서 나서야 할 때가 있는데, 남들 모른 척하고 피할 때 떳떳하게 나설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사진출처 - 극단 신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