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냐_희동이의 고백
일시 : 2015/12/29 ~ 2016/01/03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출연 : 이수인, 이길, 이춘희, 황은후, 김누리, 윤대홍
작/연출 : 신해연
기획 : 아트플래닛
제작 : 떼아뜨르 봄날
2명의 둘리와 2명의 희동과 2명의 길동이 등장한다. 각각 한 인물을 연기하는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성별도 나이도 생김새도 다르다. 허나 둘리와 희동과 길동 사이 관계는 우리가 익히 아는 명랑만화 <아기공룡 둘리>에서 보여준 관계, 인간관계라면 인간관계이고, 권력관계라면 권력관계인 세 인물 사이 온도 차이를 현실적인 잣대에 빗대 풀어냈다.
갑자기 나타나 더부살이하는 둘리, 턱하니 떠맡은 친척 아이. 강북구 어디쯤 소시민 가장 고길동의 시선에서 이들은 짐이다. 다만 희동이 부모의 경제 사정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희동과 관계는 특별하다. 그러므로 모든 갈등은 둘리 사이에서 비롯된다. 일방적 시혜를 받는 희동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둘리가 좋다. 친구이자 형이자 애인이다.
극중 젋은 여성들로 등장한 희동과 둘리 관계는 애인이랄지 친구랄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는 관계망이다. 어린 시절 의탁했던 집의 또래 혹은 동생, 그러나 그 집안에서 가장 귀한 존재이기도 했던 아이와 나, 어른이 된 이후 구질구질하기도 한 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그러나 여전히 아이의 시선에 머물고 있는 희동에 의해 발목이 잡힌다.
30대 여성과 20대 청년으로 등장한 희동과 둘리 관계는 또 어떠한가. 앞선 커플과 거의 다르지 않은 동선과 대화와 연기를 하지만 이 관계 역시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다. 연상녀와 연하남 사이 시작이 어떠했건 연상녀는 그가 떠난 삶이 두렵다. 만화보다 드라마에서 익숙한 패턴이나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기도 하다.
불완전하나마 성인이 된 둘리와 희동에 비해 길동은 여전히 기성세대인 모습 그대로 40~50대 중년남성으로 등장한다. 여전히 소시민이거나 혹은 부유층으로 등장한 길동은 둘리와 희동의 관계에 회의적이다. 만화 속 상황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연극은 분절화되어 사실 각각 연기하는 주체 별로 각각 다른 개별 상황을 연기하는 듯도 하다. 다시 말해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가 싶은 관계는 다시 여섯가지 상황으로 나뉘고, 이는 또 다시 시간 별로 혹은 상황별로 다시 파편화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아기공룡 둘리>를 차용하는가. 작가의 말을 빌어 유추하자면 20~30대 들이 어린 시절 자연스레 봤던 만화영화가 단순한 명랑만화가 아니라 몇 가지 코드를 걷어내고, 관점을 어찌 보는가에 따라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티 극이라는 식이다. 그래서 극중 주인공들이 굳이 둘리, 희동, 길동일 필요가 없다. 둘리가 아니라 <영심이> <2020 원더키드> <달려라 하니>여도 다르지 않다.
각박하고 외롭고 불안정한 현실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만화는 사실 경고라는 것이다. 이른바 그래픽노블로 불리는 미국식 영웅물이 더 이상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닌 복잡한 현실의 반영이라는 데에서, 이 연극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으나 어른이 되어버린 세대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작품이 무대, 소품, 의상보다 배우가 우선인 바, 혜화동1번지의 작은 무대 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의자 1개뿐인 미니멀한 연출은 극단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직은 소품이라는 인상이 강하고, 좀 더 사유를 밀어부치지 않는 이상 진단 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역으로 이야기에 주목하는 요즘 나름 스타일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출처 - 떼아뜨르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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