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셀로_피는 나지만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구보씨 2013. 10. 16. 12:59

제목 : 오셀로 - 피는 나지만 죽지 않는다

기간 : 2013/10/16 ~ 2013/10/27

장소 : 예술공간 서울

출연 : 김귀선, 정성호, 오민휘, 변혜림, 민경희, 장준현, 정민정, 이조은, 이권섭

원작 : 셰익스피어

대본/연출 : 임정혁

주최 : 한국연극협회

주관 : (사)인천연극협회, 극단 동숭무대, 서울연극협회

 


대한민국 연극 네트워크 사업은 각 연극 지회에서 (서울, 인천, 강원, 충북) 교류함으로 인하여 전국적인 연극정보 교류 및 발전 지향적인 공연예술 시장과 예술 콘텐츠 확장을 위해 실력 있는 배우들을 추천 및 캐스팅 하여 매년 공연을 올린다. 10월 10일 인천을 시작으로 서울, 청주, 춘천 순으로 약 한달 가량 지역투어를 하며. 초연부터 각색/연출을 맡아왔던 연출가 임정혁이 각색, 연출을 맡았고 원작을 보지 않아도 쉽고 재미있게 원작 오셀로 작품을 알고 있으면 좀 더 쉽고 심도 있게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다. - 작품소개 중에서

 

<오셀로 피는 나지만 죽지 않는다>(이하 오셀로)를 네트워크 지원 사업 일환으로 서울연극협회가 운영하는 예술공간 서울에서 2013년에 봤다. 그러나 이전에 이 작품은 극단 동숭무대 레퍼토리로, 내가 처음 미아리에서 본 2009년 <청춘예찬>, <고도>  바로 전에 올랐던 레퍼토리 공연이고, 1998년 박근형 연출이 있을 당시 극단 동숭무대 창단 공연이기도 하다. 지금 극단 골목길 대표이자 제법 잘 나가는 박근형 연출 시절 극단 동숭무대를 난 본 적이 없다. 

 

 

1998년, 박근형 연출작. 극단 동숭무대 창단공연. 대학로극장

 

지금 임정혁 연출이 이끄는 극단 동숭무대 이후 미아리 숭인시장 옆에 있는 ‘Studio 동숭무대’는 극단 동숭무대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고, 작품을 얘기할 때마다 다시금 얘기하는 곳이다. 4층 건물 지하실 무대, 객석 구분은 없고 20석 남짓 깔린 간이의자. 대학로 혜화동1번지와 비슷하지만 더 열악한 곳이다. 무대가 좁고 천정이 낮으니 조명도 소품도 무대장치도 큰 역할을 차지하지 못한다.

 

이곳에서 올린 작품이라면 어느 곳이든 극장이라는 간판만 붙어 있다면 공연이 가능하다. 인천, 청주, 춘천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서울 대학로만큼 극장이 많지 않고,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이라도 공연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각본 연출이 임정혁이니 그의 야전성이 그대로 무대 위에 드러난다. 동선이 복잡하지 않아 네 곳 연극협회 소속 배우들이 모여 짧은 기간 연습해서 올리기에도 수월하다. 연기력이 필요하지만 나름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들을 골랐을 것이다.

 


 

공연 시작 전부터 열악한 한국 연극의 현실이 반영된 작품 배경은, 2009년에 본 극단 동숭무대로부터 연장선에 있는듯해 마음이 짠하다. 미아리에서 고작 두어 편을 봤을 뿐인 주제에, 그때도 누굴 동정할 입장이 더더욱 아닌 주제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주제넘게도 미아리에서 본 진정성이 소극장 작은 규모의 연극을 관심을 두고 보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20년 동안 연극만 하고 살아온 순수하고 고지식한 중년 남자배우와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배우’ 사이 사랑과 결혼은 연극 오셀로에서 주인공 부부를 맡으면서 배우로 불안한 현실이 작품 속 무어인, 다시 말해 깜둥이가 주제넘게 귀족 집안 처녀와 결혼하면서 빚어지는 이야기와 겹친다. 이 작품 해석에서는 이야고는 방아쇠를 당긴 꼭두각시라고 봐도 좋다. 작품에서 오셀로는 장군이나 현실의 오셀로는 늙고 가난하고 배나온 가난뱅이 배우이다. 그래서 더 지독한 비극이다.

 

 

2009년, 임정혁 연출작. 극단 동숭무대. 미아리 스튜디오 동숭무대

 

그가 사람대우를 받는 곳은 무대지만, 그 무대 역시 젊고 예쁜 배우들이 차지했다. 연극판에서 선배 대우를 받으나 이야고처럼 이간질을 하는 이가 같은 배우이니 의미가 없다. 그가 빛을 발하는 곳은 오로지 관객이 있는 무대이다. 1시간 30분 남짓 그 위에서 그는 절절할 수밖에 없다. 아내를 무대에서 실제로 죽인다는 발상은 지나치고, 때로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이 작품이 올라오기까지 배경은 대충만 알고 있어도, 또 연극이 끝난 뒤 배우들이 기획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도 그렇고, 가볍게 넘기기 힘들다. 

 


2013년, 임정혁 연출. 대한민국연극네트워크사업단. 예술공간 서울

 

조명이나 연출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명료하다. 무대를 반씩 나눠 암전과 명전을 반복하는 식이다. 뭔가 더 판을 벌일 여지가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같은 방식으로 연극을 하면 같은 자리에서 피가 난다. 누군가는 떠날 테고, 보는 입장도 편치만은 않다. 그러나 ‘피는 나지만 죽지 않는다’는 부제가 자괴나 역설이 아닌 위로이고 공허한 표어가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온 선언이라고 본다. 그래도 피 흘리는 않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연극 네트워크 사업이 그중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2009년 극단 동숭무대 레퍼토리 공연 당시

 

사진출처 - 극단 동숭무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