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괜찮냐]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골 풍경이란

구보씨 2014. 1. 8. 12:34

제목 : 앵콜 괜찮냐

기간 : 2014.01.08~2014.01.26 

장소 : 정보소극장

출연 : 김도균, 차명욱, 차순배, 신문성, 유미란, 김동현, 최지은, 김강현, 장순미, 박윤서

희곡 : 최지은

연출 : 임찬빈

기획 : 한강아트컴퍼니

제작 : 극단 고리


 

시골 마을이다. 마을 이장 선거를 알리는 방송이 울리고, 보건소 의사는 부지런히 회진을 돈다. 동사무소 직원은 다문화가정을 찾아다니며 한글 동화책을 읽어준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귤 한쪽이라도 이웃과 나눠먹는다. 여유롭고 한가롭다. 그냥저냥 이장선거에 단독 출마해 이장 직함을 다니 동네 사람들도 그러려니 한다. 그냥저냥 대단치 않아도 살아갈만하다. 하지만 소극장 좁은 무대 위 한쪽을 재래식 화장실로 반대편을 재래식 부엌으로 설정했듯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누구라도 먹고 또 배설해야한다. 그 한가운데에 작은 방이 하나 있다. 


그렇다. 잠도 자야한다. 먹고 자고 싸는 짓은 축사 동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다르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오락거리가 필요하다. 이 작은 방은 동네 이장, 동사무소 직원, 의사들이 정액을 싸지르러 오는 곳이다. 객석 기준으로 무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먹고(부엌), 싸고(방), 토하고(변기) 나간다(쪽문). 그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난 뒤 마을은 평화롭다. 


“자, 이번에 이장선거가 있습니다….”

 

연극 ‘괜찮냐’의 무대는 흡사 축사와 같다. 우리가 외국종자 혹은 개량종 돼지를 사와 키워서 도축하듯, 도망가지 못하는 동남아 이주여성 숙을 돌보는 공간이라기보다 마을의 암묵적 룰에 따라 성욕배설용으로 키우는 곳이다. 돼지에게 녹차를 먹이고 한약을 먹이듯, 이장은 와서 청결을 요구하고, 의사는 와서 성병이 없는지 진찰을 한다. 그래서일까, 추운 겨울이라 환기를 시키지 않은 혹은 지하실 구조상 환기가 잘 될 리 없는 소극장 안은 숙의 성기를 기름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쑥내가 풍긴다. 매캐하고 지릿한 냄새는 극중 피우는 담배연기와 영하 10도를 오가는 바깥 날씨 영향 탓인가 극장 밖으로 빠지지 않고 돌고 돈다.



 

골치가 좀 아프다. 아무려나 시골집은 보통 농기구 등 넓은 공간을 필요하는 바 아무리 구려도 방이 두어 개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통 화장실이 방 옆이 아닌 스무걸음 쯤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무대 위 세트는 비정상적이다. 장님인 숙이가 화장실을 오가면서 입덧을 하거나, 용변을 보거나 가능한 이유는 무대 세트 정도 짧은 동선이기 때문에 이해할 만하다. 이 공간은 미아리나 청량리 창녀촌 구조와 비슷하다. 창녀촌에서 영업을 위해 화장실은 방 못지않게 중요한 공간이다.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주인공 장씨가 화장실 거적을 걷으며 등장한다. 그는 숙과 사실혼 관계라고 하나, 동네 남정네들을 숙과 주선하고 돈을 받는다. 구데기처럼 배설물에 기대어 사는 그가 화장실에서 첫 등장하는 장면은 복선이다. 그는 마냥 악인이 아니다. 숙이를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의 불안전한 개인사-다소 작위적이다- 등으로 발기불능이다. 그가 숙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면 TV에 나올법한 행복한 이주민 가정의 성공사례가 될 법했다.


숙이가 보이는 자식 혹은 핏줄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은 글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식의 우리의 관습이지 싶은데, 이해는 가나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애초 아이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면 그녀가 축사와 다름없는 이 공간에 있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화장실에 구더기 끓어넘치면 약을 치거나 불을 지른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숙은 장씨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든다. 장씨는 숙의 행동을 말리지 않는다. 둘은 이제 동격이고 갈등은 해소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숙의 입덧은 얇은 거적때기 안 변소를 오물과 토사물로 지저분한 처지곤란한 공간으로 뒤바꾼다. 마을에서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 집 자체가 골칫거리 변기가 되고 만 꼴이다.

 

누구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집은 비로소 부부로 보이는, 부부가 된 장씨 부부가 스스로 지른 불로 마무리된다. 동네 주민들이 달려오지만 불을 끄는 대신 그대로 두기로 한다. 장님에 화상으로 불구가 된 그 누구를 정부(동사무소)도, 병원(보건소)도, 공동체(이장)도, 이웃(이장 아내)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마을의 이기심처럼 연출을 했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장씨 부부는 그렇게 이해하고 죽었다.

 



이들을 악인으로 상정할 수 없다. 사회에서 용납가능한 수준이다. 혀를 차야할 일이나, 누구라도 장님 부부를 위해 나서기 쉽지 않다. 현실 혹은 그 이면을 거울처럼 비추는 연극에서 미담을 보여주는 건 가식이고 왜곡이다. 마을은 평화롭다. 그러면 되었다. 불이난 뒤, 이웃 마을 사람들은 물어볼 것이다. “불이 낫다고 하던디 괜찮은 겨?” 우리는 괜찮다.

 

배우들 연기가 뛰어나 놀랐다. 면면을 보니 다른 작품에서 본 배우들이다. 다만 중심축인 장씨 캐릭터가 잡기 쉽지 않은 바, 필요 이상으로 행동거지가 디테일한 반면, 나머지 배우들은 희화적이다. 누구라고 흠을 잡을 수 없으나 메소드 연기와 자꾸 충돌이 일어 작품이 정돈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모든 역할이 더블캐스팅인데 다시 한 번 봐도 좋을 작품이다.*


사진출처 - 극단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