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랜 호흡이 돋보이는 [디너Dinner With Friends]

구보씨 2011. 4. 15. 16:51

작년 봄에 5개 극단이 참여한 '신촌연극제-여기가 진짜 대학로'가 더 스테이지 극장에서 열렸더랬습니다. 대학로를 벗어나서, 대학로를 넘어서려는 기획인데요. "소비 향락가로 변했지만 대학이 밀집한 신촌에 새로운 문화를 심고 싶다"는 취지야말로 환영할 만하지만  첫 번째 작품 '아미시프로젝트'( 극단 C바이러스, 노네임씨어터컴퍼니 공동제작) 외에는 대학로에서 익히 선보였던 작품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기도 했습니다. 


물론 소개하는 '디너'를 비롯해 극단 산의 '짬뽕'(윤정환 연출),극공작소 마방진의 '락희맨쇼'(고선웅 연출),극단 죽도록달린다의 '청춘,18 대 1'(서재형 연출)은 언제봐도 좋을 작품들이지요. 깔끔한 더 스테이지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맛이 색달랐는데요. 흠. 올해로  2회째일텐데, 아직은 소식이 없네요.

 

제목 : 디너Dinner With Friends

일시 : 2011.04.15 ~ 2011.05.08

장소 : 더 스테이지The STAGE

출연 : 이석준, 정승길, 우현주, 정수영

작가 : 도널드 마글리즈 

연출 : 이성열

제작 : 극단 맨씨어터

주최 : 더 스테이지


  

작년 9월에 신촌 산울림 소극장 공연 이후, 박정환, 김영필 대신 정승길, 이석준이 각각 게이브, 탐 역으로 합류한 뒤로 3월부터 5월까지 두 달이 넘도록 배우들은 부부 연기를 하고 있다. 극중 재혼은 아니나, 새롭게 남편이 된 두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다보니  호흡이 척척이다. 케런, 배스 역에는 맨시어터 대표인 우현주와 극단 소속 배우이자 친구인 정수연이 오랜 기간 남편(?)을 바꿔가며 연기를 펼치고 있으니 이들의 연기는 실제인지 연기인지 관객의 몰입도를 한껏 올린다.

 

신촌연극제 두 번째 작품으로 대학로예술극장 3관 공연에 바로 이어 쉬지 않고 공연을 이어가니 완성도 역시 높은 편이다. 다만 대학로 공연 이후 오랜만에 부활하는 신촌연극제 참가는 극단 운영 면에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학로와 차별화된 신촌에서 연극제 부활 취지에 과연 부합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좀 아쉽기도 하다.

 

 

 

짐작하자면 대학로에서 공연에 이은 섭외는 이 작품이 그 만큼 작품성이나 흥행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일 게다. 이제는 부부끼리 오랜 기간 서로 서로 내외 구분 없이 친구로 지내는 4명의 남녀가 중년 이후 결혼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각자 새로운 삶을 찾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날 것인지 각자 다른 선택을 ‘디너’ 즉 가장 편안한 자리 혹은 은밀한 이야기가 오가가거나 혹은 가장 내밀한 자리를 택해 안으로 끌어당긴다.

 

삶 자체에 피로도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 위안을 받으려 만나는 관계가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현실은 익히 가상의 드라마가 아니어도 익숙하다. <디너>가 보여주는 유쾌한 진행 속에 묻어나는 괴리. 보일듯말듯 실금이 사이를 갈라놓는 과정은 가장 편하고 익숙한 친구 사이에서도 엇비슷하게 반복된다. 이들이 다시금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면, 그럼에도불구하고 조강지처가 낫다는 식이 아니라, 그 염증을 익숙하게 견디지 못했을 때 손해보는 몇 가지 실리 계산이 끝났기 때문이다.



  

직장과 가정의 안정에 따른 남들이 부러워하는 중년부부의 이야기가 빈곤츤이 많은 사회 구조상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디너>가 상징하듯 특정 장소, 특정 시간대, 특정인들과 관계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관계도는 연극에 걸맞고, 이성열 연출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잘 풀어냈다. 두 달이 넘게 공연을 올렸음에도 객석에는 빈자리가 드물다. 작품에서 부부 사이 가장 친한 듯 혹은 때로 낯설게만 다가오는 부부의 이야기이나 정작 남남인 배우들 사이 호흡은 부부이상으로 잘 맞는다. 그 기간 동안 각각 체력 관리와 안배를 하면서 공연 긴장도를 놓치지 않는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진출처 - 맨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