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택배상자] 치유 공간으로의 무대

구보씨 2011. 4. 22. 15:01

연극을 보러 다니다 보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작품을 올리는 극단이 있다. 남에게 들은 얘기가 아닌 직접 겪어봐야 아는 연극은 실망할 때가 더 많은 편이지만, 가끔 연극을 넘어서 그들의 삶마저 궁금해지는 극단이 있기 마련이다. 


극단 예휘는 거품이 없다. 기획사도 초대권도 없이 오로지 내공으로만 작품을 만들고 관객을 만난다. 무대부터 소품 하나까지 손때 묻은 공연은 늘 정성이 가득하다. 이는 곧 그들의 연극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늘 재기발랄한 작품을 만드는 그들을 보면 더불어 힘이 난다. '장 루이 바로'의 공연을 본 탓이기도 하나 그들을 보면 늘 유랑극단이 떠오른다, 조건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늘 행복한 공연을 올리는. 티켓 가격도 저렴한 편이지만 이번 공연은 홈페이지 관극 회원으로 등록하고 홈페이지에서 예매를 하면 50% 할인을 해준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http://club.cyworld.com/yehui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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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택배상자

기간 : 2011/04/22 ~ 2011/05/08

장소 : 대학로 소울 소극장

배우 : 하하나, 전광영, 박세기, 강다혜, 한관희, 송윤석

작/연출 : 송윤석

극단 : 예휘http://club.cyworld.com/yehui2007



취향

공연을 보다 보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작품을 올리는 극단을 만날 수 있다. 남에게 들은 얘기라고 한들 참고사항일 수밖에 없는 무대 예술은 대부분 직접 겪어봐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대형 공연 기획사, 관객 평가, 관련 기사로 어느 정도 짐작을 한다지만 매번 다를 수 있는 무대가 가진 찰나의 아우라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갈수록 점점 감흥이 전 같지 못하다. 공연을 보는 횟수, 햇수를 더할수록 극장을 나서는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공연이 생각보다 많다. 홍보에 끌려 본 뮤지컬에서 종종, 작품으로나 상품으로나 그 만한 가치를 해내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 집으로 가는 길이 참 멀기도 했다.

 

문제는 공연의 질에만 있지 않다. 제작팀의 노고는 물론이고 당장 코앞에서 땀 흘리며 열연하는 배우들을 생각하면 객석에서 존다는 건 가장 매너 없는 태도라고 여기지만, 종종 코만 안 골았다 뿐,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가 점점 늘고 길다. 벌써 무대를 두고 권태에 이른 걸까. 하지만 오랜 만에 만나면 반가운 친구가 있듯, 작품 관람을 넘어서 그들의 삶마저 궁금해지는 극단이 있어 즐겁다. 내게는 소극장 음악극을 주로 올리는 극단 ‘예휘’가 그렇다. 공연을 선택하는 기준이 두루 있지만 원작, 연출, 배우, 제작사가 아닌 극단을 눈여겨 볼 때는 때에는 특유의 개성을 주목하게 마련이다.

 

체계가 잡힌 시스템을 갖춘 기획사와는 분명 다른 선택 기준이다. 구조적 차이에서 기인한다기보다는 프랜차이즈 체인점과 골목길 맛집이 다른 점이라고 하면 얼추 맞는 비유일까. 시각이나 미각으로만 평가하는 게 아닌 특유의 감수성이 어울리거나 코드가 잘 맞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하다.

 

  

  

소울소극장

영화적인 상상력이 섞이고 소설을 무대로 옮겨 오면서 대형 뮤지컬처럼 복잡하고 사실적인 무대를 선보이거나 상징적인 설치 미술로 대치하는 경우를 본다. 지난 4월, 천명관 장편소설을 옮긴 극단 뚱딴지는 연극 <고령화 가족>에서 의자를 활용한 이동식 오브제로 빈 무대를 채웠고, 고연옥 작가 특유의 축약과 비약이 많은 희곡 <주인이 오셨다>를 무대에 올린 김광보 연출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도그빌(Dog Ville, 2003)’처럼 낮은 블록으로 구획만 설정한 무대 미술을 선택했다. 장단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극장은 곧 상상력의 크기일 수밖에 없다. 형태와 크기의 제한을 두고 상상력을 풀어내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무대 미술은 사각형 빈 공간을 최대한 유기적으로 활용하면서 관객에게 환상이나 감동을 주거나, 미니멀한 구조로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거나, 드러낸 뼈대로 형태로 무대바깥 현실과 혼용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 사이 즈음, 극단 예휘의 색깔 있는 무대 미술이 있다. 적은 인원으로 제작/기획/홍보까지 도맡은 이상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앞서 골목길 맛집이란 표현을 썼는데, 좋은 시설이나 값비싼 재료가 아니어도 ‘손맛’이라 부르는 정성을 찾아간다. 예휘가 꾸민 무대와 소품 역시 수작업을 통해 완성된 정성에 있다. 말이 꼬이나 싶은데, ‘정성을 담은 무대 완성도’가 아니라 완성된 정성이란 표현이 이들에게는 맞다.

 

이들이 터를 잡은 소울 소극장은 작은 건물 지하, 대형 뮤지컬 집 세트만한 40석 남짓 작은 극장이다. 공연에 앞서 앞자리 관객에게 다리를 조심해달라는 안내를 잊지 않는다. 다리를 뻗으면 배우가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말이 괜한 농담이 아니다. 배우와 관객의 옹기종기 밀착한 소극장은 아늑한 다락방 분위기이다. 대학로 소극장을 두루 다녀봤지만 소울 소극장이 가장 작지 않나 싶다. 하지만 꾸민 무대를 보면 예사롭지가 않다.

 

1인극을 하기에도 넉넉지 않다면 그렇겠으나 극단 예휘의 연극에는 제법 많은 배역이 등장한다. <택배상자>에도 헝겊인형(하소울), 뱀파이어(전광영), 늑대인간(박세기), 정신과 의사(강다혜), 택배기사(한관희), 폭력배(송윤석)까지 각양각색의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게다가 액션도 있으니 무대 활용의 달인이라 할만하다. 무엇보다 다락방에서 손때 묻은 익숙한 물건들 그리고 신기한 물건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듯이 바로 코앞에 있는 무대, 세트, 소품은 어른이 봐도 눈길을 끌만한 물건들로 채웠다. 무대와 객석이 가까우니 작은 소품 하나에도 특별함이 엿보이는데, 우선 무대를 이루는 뼈대인 창문, 벽, 그네는 잘라낸 나뭇가지를 그대로 살렸다. 



2010, 조선땅 집시로소이다

  

택배상자

작품 배경은 신경정신클리닉이지만 의사(강다혜)가 걸친 흰 가운이 아니면 병원의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의자 역시 기성품을 가져다 쓰는 법이 없이 가지치기한 나무를 엮어 만들었고, 나무속을 파낸 연필꽂이에는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연필이 들어 있다. 모니터는 일회용 플라스틱 도시락을 재활용한 듯한데, 설정은 영화 마이너리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에 등장하는 최첨단 방식이라 공중에 가상 모니터를 띄운다.

 

병원 입구도 조각천을 이어 붙여 커튼을 쳤고, 주인공 헝겊인형이 입은 옷이나 가발도 일일이 천을 재단하거나 말아 만든 수제품이다. 기성품 혹은 계량화된 재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재료가 가진 고유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무대는 자체로 재사용, 재활용 공예 전시장이다. 아기자기한 무대로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뱀파이어 춘배(전광영)가 햇빛을 피해 신경정신과에 오려고 만든 택배상자, 즉 이동식 관은 작은 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세트의 백미이다. 


사과상자 판자를 잘라낸 듯 덧대 만든 택배상자는 작은 창문에 수납공간 등을 갖췄고 크기는 담당 배우 즉 춘배 혼자 들어가 앉기에 딱 알맞다. 극장 무대와 잘 어울리는 아이디어는 수공예에 능한 극단 장인 배우(?)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치해도 그만인 작은 소품까지도 직접 깎고 다듬고 칠해서 만든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톰과 제리

극단 예휘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친화적인 무대 미술(미술감독 LAKI)은 <장 루이 바로, 소녀의 이야기>(2009), <조선땅 집시로소이다>, <니나의 스탠드마이크>(2010) 등 필모그래피에 올라간 작품에서 확인한 바 있다. 체홉의 갈매기를 각색한 <니나의 스탠드마이크>부터 소울소극장에서 공연하면서 세트대신 소품에 좀 더 주력을 하고, 주로 사용하던 목재도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는 등 작은 변화가 눈에 띈다.

 

무대와 작품이 서로 겉돌지 않고 하나로 녹아드는 데에는 극단 대표이자 작가이고 연출가인 송윤석이 쓰고 연출하고 자르고 박고 칠하고 붙이는 노고에 있다. 배우로 무대에도 서는 그는 깡패나 동네 건달처럼 악역을 도맡는다. 이기적이고 무뚝뚝한데다 남들 눈치나 살살 보는 험악한(?) 악당이지만 어수룩한데다 마음 한구석에 여린 부분도 있고 순정파 연기가 잘 어울린다. 가끔 전유성 식 유머랄지 무표정한 얼굴로 구사하는 깨알같은 유머를 보면 섬세한 내면의 소유자이지 싶다. 


아담하지만 눈이 크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말괄량이 소녀로 딱인 하소울은 극단 전속 주연이다. 성숙한 여인까지 두루 넒은 연기 영역을 소화하면서 노래도 부르는 재주꾼이다. 대표와 부대표로 극단을 이끄는 이 둘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딱 영화 <레옹>의 두 주인공, 레옹과 마틸다 커플이자 톰과 제리이다.


 

 2009, 장 루이 바로, 소녀의 이야기

  

어른동화

안톤 체홉 각색, 장 루이 바로 재현, 창작극 등 극단 예휘의 작품을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외연은 아동극에 가깝다. 무대도 그렇지만 유쾌한 전개, 복잡하지 않은 인물 구도, 노래 삽입, 해피엔딩 등이 그렇다. 관객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고민의 산물인 동시에 극단의 성정으로 보인다. 예휘는 삭막한 세상에서 가끔 어린 시절의 상상력과 시선으로 되돌아보길 의도하는 듯하다. 휴대폰 무선통신 속도가 4G라고 선전하는 요즘, 가속기를 늘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시대에 멈추는 순간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서행도 못 견디는데 과거로의 회귀라, 현실에서는 힘들지만 연극에서 구현하는 셈이다.

 

관객 입장에서 다작이 아닌 공들인 수작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반가운 이유는 예휘의 작품마다 일관되게 저변에 공동체 안에서 이룬 삶에 향한 향수와 믿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부 삶을 중심에 놓고 다루는 방식은 예술의 사회적 가치로 연극에서도 흔치 않게 보지만, 때로 구호인양 강요를 하거나 한쪽 이념으로 치우치는 경우를 본다. 예술이 감성과 이성의 복합적 체험이라고 보면 과정이나 단계가 필요할 때가 있다. 예휘의 작품은 밖으로 드러내는 대신 자양분으로 삼아 부드럽고 풍성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쓸쓸하고 스산한 호숫가가 먼저 떠오르는 체홉의 갈매기를 다룰 때도 모닥불을 쐬는 듯 위안의 정서를 잃지 않는다.

 

 

 2007, 뮤지컬 헝겊인형의 꿈 

  

택배가 온 뒤

<택배상자>에는 인간계에 살고 있으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자연을 상징하는 괴물과 환원가치는 없으나 소중한 가치인 추억을 상징하는 낡은 인형이 등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가치한 것들이지만 정신과 병원에 오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환자와 의사(혹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간호사) 관계로 맺어진다. 부정당한 존재를 치유할 수 있는 건 죽지 않고 오래 살려는 악다구니가 아니라 추억을 담을 만한 공유와 나눔이다.

 

정신과 의사는 이미 인형을 조수로 두고 있으니 그 가치를 알지만, 사람 대신 인형에게 관심을 쏟는 의사에게는 좀처럼 손님(인간)이 따르지 않고 빚 독촉을 하러 나타나는 조폭이나 꼭 착불로 받아가면서 염장을 지르는 택배기사뿐이다. 작품은 흡혈귀에게 물려 생명 연장을 꿈을 실현한 조폭과 택배기사가 과거를 회상하는 극중극 형식이다. 마지막 조폭의 행복한 죽음이 가능한 이유는 조폭으로 남들을 괴롭히며 살았던 과거 대신 헝겊인형을 사랑하면서 동화된 마음과 정신과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배경을 정신과로 둔 작품은 정신없이 벌어지는 사건사고나 쉬지 않고 서로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려니 실제 정신병원 한 장면을 옮긴 듯하다. 스스로 인형, 흡혈귀, 늑대인간, 조폭, 택배기사, 의사라고 설정한 환자들이 모인 세상 기준으로 보아 미친 사람들이 모인 병동의 해프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병실(극장) 밖으로 나가자마자 강바닥을 파헤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요상한 미친 짓들을 정의, 도덕, 규칙, 애정, 보호라는 명목으로 마치 당연하다는 듯 벌어진다. 


황급히 다시 병실로 되돌아가야 할 판이다. <택배상자>가 현실의 정신병원과 다른 점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현실의 정신병원과 개념이 좀 다를 수 있으나, 연극 무대 역시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다. 병원과 다른 점은 배우와 관객이 더불어 치유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관람료든 박수든 후기든 그 몫은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극단 예휘

극단 예휘에는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배우들이 많다. 누구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현실에서 소극단에서 극장을 꾸미고 연기를 하면서 꿈을 키우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연극배우들 삶이 얼추 비슷하게 고달프겠으나, 여기에 더해 타협하지 않고 고유의 작품관을 유지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 차지 않는 객석, 혹은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고 보면 더욱 힘이 빠질 수 있다. 관객 입장에서 북적이는 객석이 때로 불편하기도 하나 빈자리가 많은 객석을 보면 한편으로 서글프다.

 

좋은 글이란 가장 쉽게 쓰는 글이라는데, 동감을 한다. 어줍지 않는 후기를 쓰면서 늘 하는 고민이다.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극단이 여럿이지만 남녀노소가 같이 즐길 수 있되 핵심을 놓치지 않는 극단으로 예휘를 꼽는다. 기획사도 초대권도 없이 오로지 스스로 갖춘 내공으로만 작품을 만들고 관객을 만난다. 그들이 연극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진정성이 보인다. 그런 점을 공감한다면 영화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대신 연극에 애정을 갖는 관객의 마음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항상 다음을 기약하곤 했는데, 다음이라는 기대감이 이상하게도 심장을 두드리질 않아요.” 그들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 그저 안타깝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감회를 적는 일이나, 극단 예휘를 주목하고 위안을 받는 관객들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극단 예휘의 작품은 웃음코드가 곳곳에 있으니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야 더욱 신나는 작품이다. 다음 작품이 두루 입소문을 타고 많은 관객들이 객석을 채웠으면 한다. 30~40석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사진출처 - 극단 예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