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그냥 왔다갔다는 식으로 썼군요. 2년 전이긴 하지만 지금 거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대영박물관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도 말이지요. 참... 후기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정말 본 지도 몰랐을 듯 합니다. 점점 가물가물, 이 기억력이라니. 보고온 주제에 딴죽을 걸자면 조선일보 창간 기념으로 주최한 전시회인데, 이때만 해도 이들이 세상 두려울 게 없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2년 사이 참 많이 변했지요. 변해야했고, 더 변해야지요.
안티고네,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상징인 오이디푸스의 딸.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저주받은 운명의 집안, 오이디푸스의 딸인 동시에 여동생이기도 한 그녀의 이야기가 현재 대학로 극장에서 한창 공연중이다. 그리스 최고의 악녀라 불리는 <메데아>는 어떤가. 연극 무대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진득한 피가 마르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새롭게 해석한 혹은 정수를 뽑은 그리스 로마의 이야기에 혼이 빼앗긴다. 오래되었기도 하거니와 낯설고 먼 타지의 신화는 왜 여전히 세계의 신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한편으로 불만이면서도 신들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 수많은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에서 눈을 떼기란 쉽지가 않다. 이후 모든 이야기의 진즉 말라버린 탯줄을 타고 올라가면 만나는 그곳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다.
비록 낯설고 먼 타지에서 탄생한 이국의 신들이라고는 하지만, 주말 막장 드라마마저도 빚지고 있는 그리스 로마의 흔적 <대영박물관展, 그리스의 신과 인간>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어쩌다 이곳에 박제된 이들은 로마에서 영국 섬나라까지 갔다가 이리 떠도는 광대 신세가 되었을까 싶다가, 한편으로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속 그들이라면, 세계유람을 누구보다 여유롭게 즐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전 세계의 모든 이야기의 모태이자, 동양인에게는 말도 안 되는 팔등신이라는 기준을 세워 2천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는 부동의 미적 기준을 세운 그들이다. 직접 본듯이 수없이 등장하는 신들과 그들을 조각하고, 붓질하고, 새기고, 빚은 그리스 로마인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작품이라니,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고는 하나 왠지 설레기도 하고 긴장이 된다.
국제 전시회가 보통 그렇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그들이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1부 신, 영웅 그리고 아웃사이더>이다. 그중에서 당연히 제우스가 먼저 나선다. 그러나 메달 부조와 작은 청동상으로 만난 제우스는 비록 당시 그리스인들의 놀라운 손재주를 엿볼 수 있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다소 아쉬웠다. 총 136점을 들여온 이번 전시회 규모로 보아 어느 기대치 이상은 힘들다고 봤지만, 적어도 앙증맞은 제우스와 동전 속 제우스라니, 다소 씁쓸하다.
하지만 곧 이어 문화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듣기 시작한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라스의 일대기는 실로 늠름한 것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적어도 헤라클라스 관객을 압도하는 두상이나 그의 활약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암포라(항아리)는 돌림판에 올려 놓고 휙 돌리면 마치초기 영화처럼 살아 숨쉴 듯한 영웅담이 잘 담아냈다.
<2부 인간의 모습>에는 1부에서 등장한 스핑크스 조각상과 안티고네 암포라의 아버지, 작가 소포클레스의 두상이 있다. 사실 많지 안고, 작은 장식품이 반 정도를 차지하는 전시회에서도 신들의 이야기와 그로부터 비롯된 영웅들의 웅장한 이야기는 그 줄기와 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전시회의 대표작인 '원반 던지는 사람'이 등장하는 <3부 올림피아와 운동경기>는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으로 보인다. 1:200 축척으로 당시 올림피아를 그대로 옮긴 미니어쳐와 영상, 그리고 암포라에 등장하는 당시 선수들의 모습이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여성을 관람객으로도 절대 참여하지 못했으며, 남성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서로 자랑을 했다는 것과 당시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은 전쟁마저도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암포라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원반이 날아가는 방향이 아닌 아래를 보는 '원반 던지는 사람'은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듣고 보니, 오른손과 오른발이 같이 나가는 어색한 형국이다. 이는 조각을 할 때, 관객들로 하여금 보다 잘 보이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몇 가지 어색하기는 해도 그의 원반은 익히 하늘을 날고 있는 유성이 되지 않았던가. <4부 그리스인의 삶>은 기원전 유물이니만큼 화려하다기보다는 아기자기한 부장품이 대부분이지만, 역시 당시 삶을 다이내믹하게 보여준다. 그녀들의 멋진 복색은 지금 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여체를 누드로 드러내는 대신, 몸에 달라붙어 흐르면서 떨어지는 드레스는 농염하고, 익살스러운 희극인을 묘사한 인형은 제법 친숙하기도 하다.
유물로 만나는 그리스 로마와 책으로 만나는 그리스 로마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야기로, 그러니까 전설이 되어, 책으로 남은 그리스 로마의 모든 정취를 유물 몇 점으로 만족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의 삶이 어제인듯, 손에 잡힐듯 가까이 당겨진 느낌이 드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고요한 박물관에서 신들의 떠들석한 연회와 올림픽의 흥미진진한 경기, 그리고 그 밖에서 그리스 인들의 삶을 한 자리에서 만났으니, 과히 너무 욕심을 낼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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