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참 더운 여름에 보러갔던 전시회입니다. 이제 4월인데, 16분 후에 5월입니다만, 한여름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흠, 이 전시회는 기억이 남는 점이, 덕수궁 여기저기 쉬엄쉬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작품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요. 기억이 나쁜 탓도 있고, 아래 글에서 언급했듯 종종 봐왔던 작품들이기도 하여서 그랬나 봅니다.
다시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열도 받게하는 미국산 광우병 소사태가 터지기 며칠 전, 고기뷔페에서 2008년 당시가 떠올라 미심쩍었으면서도 배터지게 먹었던 미국산 소고기들이 떠오르는데요. 가난이 죄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꼭 미국에서 뭘 사야한다면 소고기 말고 차라리 미국 미술작품을 사는 건 어떠신지, 진지하게 여쭙고 싶습니다. 캠벨스프 그림이야 먹지를 못하니 적어도 애꿎은 불상사가 벌어질 일이야 없지 않겠습니까?
학교를 졸업한 때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한데 여름 방학 시즌을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이유는, 무더운 날씨에 지하철, 버스마다 시도때도 없이 두루 타고 있는 학생들 때문일 리가 절대 아니다. 다만 대형 전시회가 아이들 방학 숙제를 기다리듯 열린다는 점이다. 사실 작은 미술관 전시를 외면하고 내 관람태도가 -딱히구분하지마는 않지만-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에 다 쏟아 붓는 양 하는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전시작이 사실 그리 수준 높은 작품이 아니라는 식의 얘기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려나 곰곰이 따져 봐도 외국에 나갈 가능성이, 땡빚내는 미친 짓이 아니고서야, 거의 없는 나로서는 외국 초대 전시가 반갑기는 하다.
<이것이 미국미술이다-휘트니미술관>展은 유럽 박물관, 그러니까 한국인들의 시선에 그나마 눈에 익은 유럽 인상파 화가들 위주의 작품이 아닌 미국미술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변방이라는 인식을 주는 정말 드문 경우인 미술 전시회이다. 나라 역사가 짧기도 하니 당연히 현대 전시물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우리 삶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덕수궁보다 20세기 초 뉴욕다다의 거장 만 레이를 비롯한 미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이 더 익숙하거나 친숙하고 심지어 추억의 정서까지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미국식 생활 방식이, 그 오랜 긴간 티비의 전자파를 하루도 쉬지 않고 쬔 탓인지 이런 착각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애써 변명을 하자면 왕족이 살던 왕가가 서민들의 삶과 유리된 이질감과 일상과 '아메리칸 아이콘과 소비문화American Icon and Everyday Life'라는 전시 한 테마에서 보듯 익숙한 소비문화를 미술 양식에 담은 작품이 주는 안도감이 섞이지 않고 한 컵 안에서 따로 노는 혼란을 주는 탓일 수도 있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으나 앤디 위홀의 ‘캠벨 스프 연작’은 마치 지하철 광고를 보듯이 익숙하다. 전시장 외부 포토존을 장식하기도 했는데, 그 세 가지가 경계 없이 다가온다. 이런 게 팝 아트의 매력일 수도 있다. 톰 웨셀만 ‘위대한 미국 누드 #57’는 “노골적으로 선명한 금발, 벌어진 입술, 도드라진 유두 등 에로틱한 요소들이 드러나지만, 이 익명의 여성누드에서는 실질적인 관능미보다는 광고 이미지나 대량생산된 상품의 익명성이 시각적으로 구체화”한다는 설명처럼 섹스, 폭력 등 상업 광고 안에 내재된 선정 광고의 특징을 한 눈에 보여준다. 이 작품이 50년이 넘은 64년 작이니 미국식 소비사회의 확장을 예견한 작품이다.
소비문화American Icon and Everyday Life', '오브제와 정체성 Object and Identity' 그리고 '오브제와 인식Object and Perception' 과 특별 섹션' 20세기 미국미술의 시작American Modernism' 구성에 비해 작품 구성이 좀 부족해 보이기는 하는데, 덕수궁에서 멀지 않은 대형 백화점 본점 두 곳의 풍경과도 얼추 겹치는 등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 사회와 상호 조응하는 재밌는 전시회이다.*
사진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카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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